[미디어펜=정단비 기자] 금융감독당국의 강력한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자살보험금 지급과 관련해 대형보험사를 중심으로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자 금융감독원이 고심에 빠졌다.
1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ING생명, 삼성생명, 교보생명, 알리안츠생명, 한화생명 등은 14개 보험사는 지난달 31일 금융감독원에 미지급 자살보험금과 관련해 지급 이행 계획서를 제출했다.
금융감독당국의 강력한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자살보험금 지급과 관련해 대형보험사를 중심으로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자 금융감독원이 고심에 빠졌다./미디어펜
앞서 지난달 17일 금감원은 생보사 관계자들을 모아 같은달 31일까지 미지급 자살보험금 지급 이행 계획서를 제출하라고 한 바있다.
보험사간 입장이 다소 엇갈렸다. 대다수 보험사의 경우 대법원의 판결이 나오기 전 지급이 진행될 경우 주주, 배임 문제 등을 이유로 대법원의 판결을 기다린 후 지급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반면 하나생명, DGB생명 등 건수가 많지 않고 금액이 크지 않은 등 일부 중소형보험사들은 소멸시효 여부와 상관없이 미지급된 보험금을 모두 지급하겠다는 입장이다.
하나생명은 지난달 말께 미지급된 자살보험금을 이미 지급했으며 DGB생명은 오래된 계약의 경우 연락이 안 닿는 곳이 있는 등으로 인해 지급을 준비 중이지만 미지급된 자살보험금을 모두 지급하기로 정했다.
하나생명은 자살보험금 미지급건이 총 1건으로 소멸시효 건이 1건이며 DGB생명은 총 16건 가운데 소멸시효 건이 13건이다. 소멸시효 건 금액은 각각 1억원, 2억원 정도다.
당초 자살보험금 문제가 불거지게 된 것은 약관에 명시된 내용 때문이다. 문제가 되었던 약관에는 특약 책임개시일로부터 2년이 경과된 후 가입자가 자살할 경우 일반사망보험금이 아닌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해야한다고 되어있다.
이에 보험사들은 이는 표기 실수로 자살은 재해가 아니라며 일반사망보험금만을 지급, 또한 약관대로 보험금을 지급할 경우 자살을 조장할 수 있다는 등의 이유로 지급을 하지 않았다.
특히 최근 대법원에서 미지급 자살보험금 지급을 해야한다는 판결이 나오면서 쟁점이 된 것은 '소멸시효' 건이었다. 일반적으로 보험금 지급 사유가 발생한 뒤 2년이 지나기 전 청구를 하지 않으면 소멸시효가 끝나 보험금을 받을 수 없게 된다. 이에 보험사에서는 소멸시효가 지난 것에 대해서는 지급을 해주기 어렵다는 것이다.
올해 2월 26일 기준 자살관련 미지급 보험금은 2980건에 2465억원이며 이 중 소멸시효 기간 경과건은 2314건(78%)으로 2003억원(81%)에 이른다.
이같은 보험사들의 태도에 금감원에서는 '보험회사가 약속한 보험금은 반드시 정당하게 지급되어야 한다'는 확고한 입장을 가지고 보험업계가 높은 수준의 신의성실의 원칙을 지키도록 요구, 이번 자살보험금 사례에서도 일관되게 보험금을 지급하여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해왔다.
지난달 24일에는 브리핑을 통해 "금감원은 '약관은 지켜져야 한다'라는 대법원의 판결취지와 부합하게 소멸시효와 관계없이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입장"이라며 "보험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은 보험업법 위반행위에 대해 권한에 따라 검사․제재 및 시정조치를 일관되게 취할 것"이라는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금감원은 이번 지급 이행 계획서를 받고 고심에 빠졌다. 각 보험사별 사정에 따라 입장이 다소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 하지만 앞서 고객들의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보험사인만큼 약관에 따라 지급해야한다고 강경한 태도를 보여온만큼 제재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또한 지난 2014년 금감원에서 자살보험금 미지급과 관련해 검사에 착수, 제재조치 결정을 내렸지만 ING생명의 행정소송으로 인해 미뤄진바 있는 제재조치는 조만간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이우석 준법검사국기획팀 부국장은 "이행 계획서를 받아본 결과 대법원 판단을 기다리겠다는 등 다소 입장차이가 있었다"며 "이행 계획서와 관련해 향후 검사, 제제 계획이나 공식 입장은 아직 정해진 바는 없다. 다만 소멸시효 건과 관계없이 미지급 건은 보험금을 지급해야한다는 입장에는 변화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2014년 검사를 통해 내려졌던 제재절차는 진행할 것"이라며 "제재조치 수위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법위반과 관련된 사항이므로 과징금이 부과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디어펜=정단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