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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임금 대란, 기형적 임금체계 수술로 풀어야

2014-01-29 10:08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 이동응 한국경영자총협회 전무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통상임금 산정범위에 대한 논란이 큰 방향에서 가닥은 잡혔지만 그 여진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말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개월을 넘어 지급되는 정기상여금도 정기성 일률성 고정성이 인정된다면 통상임금이라고 판단하였다. 다만 노사 합의의 오랜 관행에 따른 신의칙을 적용하여 과거 소급분의 추가임금 청구를 인정하지 않았고, 정부도 이러한 판례의 취지에 따라 <통상임금 노사지도 지침>을 올해 1월 마련하였다. 법원과 정부의 이 같은 판단를 두고 일각에서는 노사의 이해관계를 반영한 정치적 결정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통상임금 범위에 대한 법적 논리와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노사간 소모적 분쟁을 줄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노사가 여전히 대법원 판결에 상이한 시각을 보이고 있어 임금및 단체 협상 시에 노사 갈등이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당사자는 아무래도 기업이다. 과거 소급분이 어느 정도 해소되었지만, 당장 올해부터 퇴직충당금을 포함하여 약 14조원을 추가 부담해야 하며, 이후 매년 9조원에 달하는 부담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정년연장과 근로시간 단축 압력이 그것이다. 정년연장은 이미 관련 법이 개정되어 기업들에게는 발등에 떨어진 불을 진화해야하는 상황이다. 지난해 4월 국회는 60세 정년 의무화를 주요내용으로 하는 정년연장법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300인 이상 대기업은 2016년부터, 300인 미만 중소기업은 2017년부터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설정해야 한다. 또한 정년연령을 60세보다 낮게 설정하더라도 60세 정년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60세 미만 정년을 근거로 근로자를 해고할 경우 부당해고에 해당하게 된다.

다만 기업의 급격한 부담 증가를 감안하여 60세 정년 의무화 시 임금체계 개편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하도록 법에 규정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임금체계 개선을 법에 명시했기 때문에 부담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는 하지만, 기업들은 현장을 모르는 소리라고 한다. 실제 노사현장에서는 60세 정년이 법으로 강제되었기 때문에 노조에서 굳이 임금조정에 협조할 이유가 없어져 기업들만 인건비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통상임금 범위 확대와 정년연장으로 근로자는 가만히 앉아서 임금이 높아지는 반면, 기업 부담은 그 만큼 더 증가한다는 이야기다.
 

   
▲ 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가중시키는 통상임금과 정년연장, 근로시간 단축 등의 대형이슈를 해소하려면 기형적인 임금체계를 서둘러 개편해야 한다. 단순 연공급을 직무및 성과중심으로 개편하고, 정년연장도 임금피크제와 연동시켜야 한다. 김대환 경제사회발전노사정 위원장이 임금체계 개편 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근로시간 단축 압력도 거세지고 있다. 지난해 10월 당정은 근로기준법을 개정해 현재 주당 최대 68시간까지 허용되는 근로시간을 주52시간으로 줄이기로 합의했다. 당정안은 사실상 휴일근로를 제한하는 것인데, 이 경우 한 주 동안 일할 수 있는 시간이 지금보다 16시간이나 줄어들게 된다. 근로시간을 지나치게 줄여, 기업 부담만 가중시키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 당정은 규모별 단계적 시행과 노사가 합의할 경우 1년에 6개월은 주60시간까지 근로를 허용하고 있어 큰 문제가 없을 거라고 한다. 그러나 기업은 시간당임금 상승, 휴일근로수당 가중 등의 비용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특히 휴일근로수당에 연장근로수당을 중첩해서 지급할 경우 기업들은 상당한 추가비용을 부담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물량을 맞추기 위해 불가피하게 휴일에 일하고 있는 다수의 중소기업은 인건비 부담이 높아지고, 인력난이 심해져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에 내몰릴 수 있다.
 

이 같은 현실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정치권은 이들 주요 이슈가 일자리창출에 미칠 부정적 파급효과는 생각지도 않은 채, 규제의 잣대로만 노사관계를 재단하려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통상임금 문제로 인한 추가비용 부담은 약 14만~16만개의 일자리를 줄이고, 정년연장에 따른 부모세대와 자녀세대의 일자리 충돌은 청년실업률만 높일 우려가 크다.
 

근로시간 단축도 마찬가지다. 현재 근로자의 근로시간을 줄여 남는 시간에 다른 근로자를 채용한다는 것은 일부 전문가의 산술적 계산일 뿐 노사의 현실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 기업은 노동비용 상승을 방치할 수 없으며, 근로자는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소득감소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제기되는 이슈들로 인해 현장의 노사갈등이 증폭되는 시점에서 일자리창출이 손쉽게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노동시장 이슈로 제기되는 통상임금, 정년연장, 근로시간 단축 등의 공통된 연결고리는 바로 기형적이고 복잡한 임금체계이다.
우리 임금체계의 연공성은 유럽국가 뿐만 아니라 이웃의 일본보다도 높다. 신입사원 대비 20~30년 근속자의 임금수준이 유럽은 1.1~1.9배, 일본은 2.4배인 반면, 우리나라는 3.1배에 달하는 실정이다.
생산성과 괴리된 연공서열형 임금체계는 수량적 유연화에 대한 유인을 강화시켜 비정규직의 확산을 가져오고 청년, 여성 등 신규진입자의 고용기회를 제약할 뿐만 아니라, 고령자의 조기은퇴 압박을 가중시키는 등 노동시장에 더 많은 부작용을 파생시킬 수 있다.
 

상여금 및 각종 수당의 확대로 복잡다단한 임금체계를 만든 것은 현장의 노사와 정부의 책임이 크다. 현행 임금체계는 정부 행정지침과 임금 가이드라인을 준수하면서 노사 갈등을 줄이기 위한 고육지책의 산물이었다. 기업은 정부의 가이드라인을 지키고 높은 초과근로 할증률에 따른 가산수당 부담을 줄이기 위해 기본급 인상보다는 새로운 수당을 만들었고, 노조도 임․단협에서 가시적 성과를 내기 위해 상여금․수당 신설에 합의했기 때문이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생산요소 투입에 의존하는 양적성장이 한계에 봉착하면서 연공서열형 임금체계도 다양한 문제점을 노출하게 되었다. 생산주기가 단축되고 기술변화 속도가 빨라짐에 따라 임금과 생산성의 괴리가 심화되었으며, 급속한 고령화로 인해 기업에 과도한 인건비 부담을 초래했다. 또한 근로자간 공평한 보상이 어려워져 동기부여 측면에서도 약점을 보이며, 직무만족도와 사기를 저하시키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생산성과 괴리된 연공서열형 임금체계가 노동시장 구조를 왜곡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 경제의 재도약을 위해서는 양적 성장의 한계를 넘어 생산성 향상이 주도하는 질적 성장 단계로의 전환이 시급하다. 이에 다수의 기업이 외부환경 변화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고 신속한 의사결정을 위해 조직 슬림화, 직무 재정비 등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임금체계는 시대적 조류에 뒤쳐져 있는 실정이다. 여전히 기업의 70%가 호봉제를 유지하고 있으며, 50%의 기업이 성과와는 무관한 성과배분제를 시행하는 등 무늬만 연봉제, 성과급제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현행과 같은 임금체계는 더 이상 지속가능성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통상임금 문제에서만 비롯된 것은 아니다. 최근 제기된 이슈로 인한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현 제도에 대한 보완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기업 투자를 위축시키고 일자리창출을 저해하는 포퓰리즘적 노동입법 중단과 과도한 규제정책 완화가 필요하다.

일례로 정년연장과 모호하게 연계된 임금체계 개편 방안을 명확히 해야 한다. 정년연장으로 인한 기업부담 완화에 그 취지가 있는 만큼, 정년연장과 임금피크제 연계를 명확히 규정하여 노동시장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해야 할 것이다.
 

이와 더불어 합리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방향으로 임금체계를 개편해야 한다. 우리 임금체계는 연공성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이를 완화하거나 탈색시키지 않은 상태에서 통상임금 범위 확대, 근로시간 단축, 정년연장 등을 강제한다면 기업은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인건비 부담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노동시장 비효율, 세대간 갈등, 양극화 심화 등으로 우리 경제 활력을 더욱 저하시킬 수 있다.
 

단기적으로 정년연장의 경우 임금피크제 연계를 통해 인건비 부담을 최소화하고, 직무·성과중심의 임금체계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형태로 활용해야 한다. 통상임금의 경우에는 고정적인 성격의 정기상여금 일부는 고정성이 없는 금품으로 전환하고, 지급방식을 재직자에게만 혹은 일정근무일수를 충족시킨 근로자에게만 지급하는 형태로 전환하여 고정성을 최소화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통상임금의 기준을 1임금 산정기 내에 지급되는 금품으로 명확히 규정하는 내용의 제도적 개선이 이루어져야 향후 법 해석상 논란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임금체계의 과도한 연공성을 타깃으로 삼는 보다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연령·근속 같은 속인적 요인과 임금상승의 연결고리를 차단하거나 최소화하는 대신 성과나 직무가치 등과 임금의 연계성을 강화시키는 임금체계 개편을 시도해야 한다. 또한 복잡하고 기형적인 체계를 간명하고 투명하게 개편해야 한다. 분쟁 예방적 차원에서도 논란이 있는 여러 금품들을 통폐합하거나, ‘기본급+성과급’으로 단순화할 필요가 있다. 특히 조직과 개인의 성과를 반영할 수 있는 효율적 임금체계로 전환해야 한다.

우리 기업은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이 일상화되는 가운데, 무한경쟁으로 내몰리고 있다. 통상임금, 정년연장, 근로시간 단축은 우리 노동시장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주요 사안이며, 이에 따른 임금체계 개편도 필수적이다. 노사는 기업 발전과 이윤을 공유하는 공동체이기 때문에 경영성과를 공정하게 배분하는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임금수준이 직무가치, 성과와 긴밀하게 연계되어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이다.
 

임금체계 혁신은 단순히 임금 구조의 변화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에 부합하는 소통과 화합의 수평적 조직 문화도 동시에 일구어내야 한다. 복잡하고 기형적인 임금체계를 합리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방향으로 개편하여 우리 노동시장이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는 디딤돌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동응 한국경영자총협회 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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