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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 워크숍, 혁신 실종...상임위 자리 다툼 전락

2016-06-10 21:46 | 한기호 기자 | rlghdlfqjs@mediapen.com
[미디어펜=한기호 기자]본격적인 20대 국회 시작을 앞두고 당 혁신과 화합을 다짐한다는 취지로 10일 열린 새누리당 첫 의원단 워크숍은 상임위원장 자리다툼의 장으로 전락, 계파청산과 당 혁신·정책 논의는 실종됐다.

새누리당은 이날 경기도 과천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에서 '다함께 협치, 새롭게 혁신' 구호를 걸고 워크숍을 진행했다. 워크숍 마지막 당 소속 의원 전원이 "친박·비박 등 계파 용어를 쓰지 말자"는 '계파청산 선언문'을 낭독했지만, 이날 워크숍은 '속빈 강정'이었다.

오전 9시부터 장장 12시간을 넘는 빡빡한 일정 가운데 혁신 지향점이나 계파청산 등에 대한 논의가 전무했다. 계파 청산 방안을 연구해온 것으로 알려진 김용태 의원은 "오늘 말 꺼낼 생각이 없다"고 혁신 방안 발표를 일찍이 접기도 했다.

오전 중 특강을 듣고 오후엔 청년·일자리·금융·교육 등 주제별 분임토론이 이어졌다. 저녁 식사 후 또다시 특강을 들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특강만 3개를 듣고 북한 주민의 실생활을 고발한 다큐멘터리 '태양아래' 감상도 소화하는 가운데 계파 해체와 무소속 복당 문제는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하지만 '알맹이 없는' 워크숍을 초래한 주 원인은 정작 빡빡한 일정이 아닌, 상임위원회 배분 그리고 3선 이상 중진들의 상임위원장직을 둘러싼 논란이 워크숍 대부분을 잠식하면서였다.

새누리당 의원들이 10일 오전 과천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에서 열린 2016 정책워크숍에서 파이팅을 외치며 단체사진을 촬영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앞서 정진석 원내대표는 워크숍 초반 "표대결(경선)까지 가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후보군인 중진들에게 상임위원장직의 자율적 조정을 당부했다.

당내에선 3선 22명, 3선 때 위원장을 맡지 않은 4선 2명 등 총 24명이 상임위원장 후보군이다. 이들 중 위원장에 뜻이 없는 몇몇을 제외한 대다수 중진은 이전보다 2석 줄어든 자당 몫 상임위원장 8석을 두고 경합해 왔다.

이들은 오전 이후부터 삼삼오오 모여 관련 협의를 했지만, "내가 적임자"라며 신경전만 벌였다. 후보군 중 비교적 고령인 의원들은 선수 다음으로 나이를 우선 배려하는 국회 관례를, 젊은 의원들은 여소야대 국회에서 위원장이 야당의 공세를 방어할 강단이 있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안전행정위원장 경쟁이 가장 치열했다. 강석호·박순자·유재중·이명수·이학재·조원진·황영철 의원이 안행위원장 후보군이다. 이들은 안행위 경력, 당직 여부, 나이 등을 들어 서로 적임자를 자처했다.

국회의장직을 야당에 내주고 가져온 핵심상임위인 법제사법위원장직을 둘러싼 경쟁도 만만치 않다. 율사 출신인 3선 권성동·여상규·홍일표 의원이 모두 희망했다. 조정도 쉽지 않았다.

기획재정위원장을 두고 경합 양상인 이종구·이혜훈 의원도 워크숍 도중 조정을 시도했으나 합의에 이르진 못했다. 

국방위원장은 김영우 의원이 유력한 가운데,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장에 도전하려 했던 김학용 의원이 국방위원장으로 선회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상임위원장 배분 논란이 종일 계속되자 정 원내대표는 "조정이 어렵다"며 "상임위원장 배분 때문에 화가 난다"며 자신의 고충을 털어놓기도 했다.

또한 다수 의원들이 관례상 2년인 현 상임위원장 임기를 1년으로 줄여서 후보군 의원들이 두루 맡도록 하자는 의견을 원내지도부에 전했다.

김무성 전 대표는 자신의 측근들을 포함한 중진들이 이전투구 양상을 보이자 적극적으로 중재에 나서기도 했다. 정 원내대표, 김 전 대표가 후보군 의원들을 한 자리에 불러 모아 거듭 조정을 시도했다.

이 자리에선 '화합'을 명분으로 경선을 최소화한다는 방침 하에 상임위원장 임기를 단축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힌 것으로 전해졌다. 임기를 줄여 나눠 맡는데 당사자들이 합의가 되지 않는 상임위원장에 한해서만 경선을 치른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경선은 피할 수 있으나, '보직 나눠먹기'와 상임위원장의 직무 연속성 불안 등에 대한 당 안팎의 비판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안행위원장처럼 희망자가 많은 경우 임기 단축이 무의미하다는 한계도 있다.

일부에선 특정 상임위원장을 원했던 의원이 돌연 다른 위원장으로 눈을 돌리면서, 경쟁이 덜했던 후자를 둘러싼 경쟁이 과열되기도 했다.

한 중진 의원은 "절차적으로 공정하게 경선을 치러야지 당사자들도 깨끗이 승복하고 뒷말이 없지, 이렇게 인위적으로 자리를 갈라먹으면 나쁜 선례가 될 뿐"이라며 "국민적 비판은 비판대로 받고, 일은 더 꼬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논란은 상임위원장 후보 선출을 위한 의원총회가 이달 13일 열리는 만큼 후보자 등록이 내일(11일)부터 시작된 데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 원내대표는 "오늘 중 결론이 안날 것 같다"고 말했다.

중진들 뿐 아니라 초·재선 의원들의 관심도 자신이 속할 상임위 배정에만 쏠렸다. 국토교통위·교육문화체육관광위 등 인기 상임위에 희망자가 몰린 가운데 비인기 상임위로 가겠다고 양보하는 이가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20대 총선 참패 원인을 진단하고 당 혁신 방안을 치열하게 논의할 것으로 기대됐던 워크숍이 당장 직면한 '밥그릇' 문제인 자리싸움으로 점철되면서 본래 취지는 빛이 바랬다.

전체 토론 시간이 마련되지 않아 복당 문제 등 당 현안에 대한 토론도 없었으며, 따라서 의원들의 총의를 모을 기회조차 없었다.

의원들의 마음이 상임위 배정이라는 '콩밭'으로 간 채 진행된 워크숍 말미에는 계파 청산 선언문 채택이 진행됐다.

김현아 대변인과 민경욱 원내대변인은 공동으로 계파 청산 선언문을 낭독하며 "앞으로 계파라는 용어를 쓰지 않겠다. 분열과 작은 정치를 넘어 대통합을 실현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말뿐이 아닌 결과와 행동으로 보이겠다"며 ▲계파 청산을 통한 대통합 정치 실현 ▲민생 경제를 살리는 20대 국회 구현 ▲박근혜 정부의 성공적인 국정 운영과 정권 재창출을 결의했다.

또 "새누리당은 특히 민생 경제‧외교 안보 분야에 있어 집권 여당으로서 주어진 역할을 또박또박 실천하겠다"면서 "국민만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일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결의문 낭독에는 전체 의원 122명 중 73명만이 참여해 진정성을 의심케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질적인 논의 없이 선언문만 채택하는 것은 요식적 행위에 불과하다는 당내 비판도 제기됐다.

당의 한 관계자는 "상임위 배분 얘기만 할 거면 국회 밖으로까지 연찬회를 왜 왔는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한 주류 중진 의원은 "자유토론 등 당 상황에 관한 논의를 할 수 있는 자리가 없도록 의도적으로 일정을 짠 것으로 보인다"며 "워크숍에서 계파간 갈등이 드러나면 '아직 정신 못차렸다'는 비난이 나올 수 있어 이를 의식한 것"이라고 평했다. 

[미디어펜=한기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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