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고치 청년실업률이 꺾일 줄을 모른다. 인구론·낙바생·화석선배과 같은 자조적 신조어는 청년실업의 심각성을 반영하고 있다. 더욱이 정년 60세 제도까지 의무 도입 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우리사회에는 임금체계 개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현행 연공서열식 임금체계(호봉제) 하에서 정년연장 의무화는 인건비 부담을 불러오고, 이는 청년 신규채용의 감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연공서열식 임금체계를 가진 국가는 한국과 일본뿐이지만 일본은 정년 60세 제도를 도입하기 이전에 임금체계 개편을 추진하여, 노사협력 하에 자동승봉을 폐지했다. 이에 연초부터 고용노동부와 기획재정부는 임금피크제와 성과연봉제 도입을 주문하며 임금체계 개편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했다.
하지만 임금피크제 도입은 강제사항이 아니어서 도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성과연봉제의 경우, 현재까지 성과연봉제 도입 대상 기관(공기업·준정부기관)의 50% 이상이 노사합의 또는 이사회의결을 완료한 상태이지만 이에 따른 노조의 반발이 심상치 않다. 민노총과 한노총은 공동 투쟁돌입을 선언하며 한국정부를 국제노동기구(ILO)에 제소한다고 밝혔으며 금융노조는 오는 18일 여의도 총궐기를 예고하였고, 9월을 시작으로 총파업에 돌입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임금체계 개편을 놓고 정부와 노조의 갈등이 극대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바른사회시민회의는 15일 임금체계 개편이 미룰 수 없는 과제라는 문제의식에서 향후 임금피크제 도입 및 임금체계 중장기로드맵에 대해 각 분야 전문가와 함께 논의했다.
이날 바른사회시민회의 2층 회의실에서 개최된 ‘연공서열임금제, 어떻게 개선해야 하나’ 토론회에서 패널로 나선 박주희 바른사회시민회의 사회실장은 “청년실업 장기화는 그만큼 인적자본의 축적이 늦어져 한국의 잠재성장률을 떨어뜨리는 결과로 이어진다”며 “임금피크제는 한시적 치료제일 뿐, 임금피크제와 임금체계 개편이 공동 추진되어야 청년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 실장은 “임금체계 개편은 장년층 고용창출을 높여, 정년연장 실시가 ‘아버지가 아들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오해를 풀 수 있다”며 “고령화에 대응하고 청년실업 해소하는, 두 마리 토끼 잡는 길은 임금체계 개편밖에 없다”고 밝혔다. 아래 글은 박주희 실장의 토론문 전문이다. [편집자주]
‘고령화 대응’ ‘청년실업’ 둘 다 잡는 길은 임금체계 개편밖에 없다
노동시장의 구조를 들여다보면 어디서부터 해결의 실타래를 풀어야 할지 찾기가 힘들다. 고학력자들은 넘쳐나는데 갈 곳이 없어 헤매고 기업현장에서는 마땅한 인력을 구하기 못해 아우성이다. 취업난 속 일자리 미스매칭이 심각하다. 대학진학률은 세계 최고수준으로 치솟지만, 대학교육과 직무의 연계가 약해 기업은 신입직원들의 직무교육에 많은 비용을 투입한다. 그만큼 신규 채용에 대한 부담감을 느끼게 된다. 일부 대기업의 대졸신입사원 보수는 선진국을 앞서지만, 다수의 청년들은 열악한 근무환경과 저임금이라는 낮은 처우를 받고 있다. 연공성 임금체계로 안정적인 생활이 유지될 것 같지만 50대 초반만 넘으면 고용불안을 느끼게 된다.
노동시장에서는 당사자들의 이해관계가 엇갈리고 갈등의 뿌리도 깊다. 그래서 노사간 자율 협상보다는 일률적으로 법 또는 규칙으로 노동시장을 규제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노사 보다는 정치가 앞장섰고 주로 대기업이 주축이 된 노조가 자신들 집단의 기득권 수호를 위해 노동운동을 벌였다. 지금까지 노동시장의 개혁은 경제사회 문제가 아니라 정치이슈로 귀결되었다. 하지만 정치에 맡겨진 개혁이 진짜 개혁일 리 없다. 노동시장 개혁은 여론과 강성노조의 압박에 떠밀려 차일피일 미뤄지고 그렇게 노동시장은 일부 기득권 노조에 초점을 둔 구조로 점철되어 왔다. 지난 한 해 동안 정부, 노동계, 재계가 공들여 논의했던 노동개혁 사안들도 야당과 한국노총에 의해 한 순간 물거품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여러 노동시장의 잠재 여건들을 보면 한국은 노동개혁을 손 놓고 기다릴 만큼 여유롭지 못하다. 저출산․고령화가 급속히 심화되고, 60세 정년연장법 적용대상 범위가 점차 확대될 예정이다. 정년 연장으로 증가하는 노동시장 잔류 근로자는 3년간 30만 명 수준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베이비부머 자녀세대인 에코세대들이 2015~2018년 동안 노동시장에 약 10만 명 더 진출하게 된다. 청년들이 향후 3~4년간은 고용절벽에 부딪힌다는 의미다.
정년연장으로 인한 인건비 부담은 임금피크제 도입만으로 해소되지 않아 청년 일자리를 좁히는 결과를 낳는다. 지난 5월 대한상공회의소가 정년연장 적용 기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정년연장이 기업의 신규 채용에 미치는 영향을 묻는 질문에 응답기업의 42.3%는 '정년연장으로 신규 채용 축소가 불가피하다'고 답했다./사진=미디어펜
그 동안 한국의 인적자본은 경제성장을 이끄는 동력이며, 기업의 경쟁력도 바로 훌륭한 인재 확보와 인재 관리에서 나온다. 하지만 청년실업이 장기화되면 산업현장에서 새로운 기술과 지식을 습득할 수 없어 그만큼 인적자본의 축적이 늦어지게 된다. 이는 인적자본력의 수준이 저하되어 결국 한국의 잠재성장률을 떨어뜨리는 결과로 이어진다. 청년실업과 성장동력 저하, 경기침체는 서로 꼬리를 무는 악순환을 거듭해 한국경제 도약을 저해하게 된다.
지금 대한민국은 노동주기가 짧던 시대에서 노동주기가 길어지는 시대로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그러면서 청년들의 일자리 문제를 시급히 해결해 미래 인적자본으로 양성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합리적인 임금체계 개편이 현재로선 최선의 방법이다. 한국의 임금체계는 근속년수에 따라 임금이 상승하는 연공성 임금체계이다. 근로자의 생산성과 무관하게 근속년수가 증가하면 임금이 자동으로 상승한다. 문제는 다른 나라에 비해 한국의 연공성 임금격차가 지나치게 크다는 점이다. 20년 이상 근로자 임금수준은 1년 이하 근로자의 2~3배에 이른다. 스웨덴, 프랑스, 영국, 독일 등이 1~1.5배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한국의 연공성 임금격차는 현격히 높은 수준이다.
이러한 자동적 임금인상은 기업의 인건비 부담으로 돌아오고 기업의 새로운 사업의 투자․확대를 주저하게 만들어, 결국 청년 신규채용을 감소시키는 이중 유인이 된다. 채용문제뿐 아니라 한국의 성장동력 인적자본과도 연결된다. 연공성에 따른 임금 결정은 직무경험이나 숙련도, 성과를 반영하지 못해 근로자의 업무에 대한 동기부여 효과를 떨어뜨린다.
연령별 임금과 생산성 관계를 보더라도 어느 기점이후는 받는 임금만큼 생산성이 따라가질 못한다. 공공부문 전체 인력(20~65세)에서 연령별 월평균 보수 수준과 보수 수준 상승률을 보면, 25~54세까지 상승 추세를 보이다가 57세 이후 급속히 하락하는 모습을 보인다. 연령-생산성체계는 50세에 생애생산성이 최대가 되는데 이는 생애임금 수준이 최대가 되는 54세에 선행하며, 임금과 생산성이 일치하는 연령은 45~46세로 나타난다.1)
이런 이유로 정부는 임금피크제 도입에 박차를 가해 공공기관 60%(191/316개 기관)에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상시근로자 300인 이상 기업 40%도 도입을 마쳤다. 하지만 임금피크제 도입만으로 정년연장 시행에 따른 기업 인건비 부담과 채용급감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다. 어찌보면 임금체계 개편에서 가장 시급하지만 반면 간편한 해결책이 전체 연공성 체계를 건드리지 않고 정년연령에 대한 임금피크제만 도입하는 것이다. 정부입장에서도 노동개혁의 단초를 풀었다는 실적으로 생각할 수 있고, 노동계에서도 일말의 노동개혁 협상에 양보했다는 제스처를 보일 수 있다는 면에서 임금피크제는 그들에게 좋은 대안일터다.
그림2. 임금피크제 도입과 임금체계 개편2). 임금피크제 도입시 기업은 총 □bcef 중 △egf 만큼 절감. 그렇다면 정년연장과 임금피크제로 □bcge만큼 추가 인건비 발생. □bcge=△dge가 되도록 임금곡선 dg기울기를 조정해 임금체계 개편을 실시.
그러나 임금피크제는 한시적 치료제일 뿐이다. 임금체계 개편의 핵심은 임금피크제 도입과 연공성 임금체계 개편의 공동추진이어야 한다. 정년연장으로 인한 인건비 부담은 임금피크제 도입만으로 해소되지 않아 결국 청년 일자리 창구를 좁히는 결과를 낳는다. 지난 5월 대한상공회의소가 정년연장 적용 기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정년연장이 기업의 신규 채용에 미치는 영향을 묻는 질문에 응답기업의 42.3%는 ‘정년연장으로 신규 채용 축소가 불가피하다’고 답했다.
물론 기대수명이 길어진 사회에서 정년연장은 필요하다. 입사와 퇴직 시기는 과거 기준인데, 자녀들의 독립시기와 결혼시기는 많이 늦어져 퇴직 후 부양을 받을 형편이 될 수 없을 듯하다. 만 55세 정년을 마쳐도 인생의 반 이상이 남을 정도로 100세 시대를 맞이했다. 정년을 무작정 늘린다면 좋지만 문제는 생산력과 높은 임금의 격차다. 한국은 상대적으로 늦은 나이에 높은 임금으로 취업해서 빠르게 정년퇴직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이런 구조에서 임금체계 변화없이 정년만 늘린다면 기업의 인건비 비중이 높아져 기업 생산력은 떨어지고 결국 신규채용을 미룰 수밖에 없다. 또한 기업 입장에선 정년이 되기 전 빨리 퇴직시키려는 유인이 발생한다.
임금체계 개편 논의가 청년 일자리 창출만 연계된 건 아니다. 장년층 임금이 높지 않다면 기업들도 숙련기술과 현장경험을 겸비한 장년층의 고용에 적극 나설 수 있다. 그런 분위기가 정착된다면 퇴직이 영원한 퇴직이 아니게 된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기업이 있다면 자존감을 되찾고, 고용에 대한 불안이나 퇴직이후 노후 걱정도 사라지게 할 것이다.
또한 전반적인 임금체계 개편은 정년연장 실시가 ‘아버지가 아들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오해를 풀 수 있다. 정년연장 논의가 한창 공론화됐을 때 ‘세대갈등’을 촉발시킨다는 우려도 높았다. 지금의 연공성 임금체계를 계속 고집한다면 아들의 일자리가 사라지는 현실을 직면할 것이다. 하지만 정년연장과 함께 임금피크제를 비롯한 임금체계 개선을 서두른다면 아버지와 아들의 일자리 둘 다 만들어진다. 고령화에 대응하고 청년실업을 해소하는 이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길은 임금체계 개편밖에 없다. /박주희 바른사회시민회의 사회실장
1) 안주엽, 산업관계연구 제24권 제1호 ‘합리적 정년연장과 정책과제’ p96~104. 2014.
2) 한국경제연구원, 이지만, ‘임금체계 개선을 위한 노동 현안’ 토론회 자료집 p23. (2013.11.27.)
[박주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