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한국사회의 가장 큰 특징은 이념적 합의가 깨졌다는 점이다. 헌법 제4조가 규정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마저 희미해졌고, 체제 수호에 필요한 정치사회적 힘이 남아있는가부터 걱정이다. 최악의 경우 북한보다 우리가 먼저 체제붕괴(regime collapse) 로 이어질 수도 있는데, 집권여당 새누리의 혼란부터 참담하다. 리더십의 위기도 전례없지만 그들은 '이념적 백치집단'에 가깝다. 그래서 터무니없는 중도(中道)타령만 반복하는 저들을 위한 해법은 무엇인가? 야당도 마찬가지다. 전향을 하지 않은 운동권 출신이 50~70명이니 항상 여의도 정치가 출렁대고 제정신이 아니다. 사회 분위기도 그러해서 탈북 여종업원 12명을 공개 법정에 세우겠다는 민변의 움직임이 '위험사회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말해준다. 이런 상황에서 미디어펜은 '이념적 합의가 깨진 위험사회 대한민국을 묻는다' 연작 칼럼 3회 분을 통해 이념문제에 대한 균형 잡힌 성찰을 진행한다. [편집자 주]
이념적 합의가 깨진 위험사회 대한민국을 묻는다 연작 칼럼- <상>
7월 6일 오후 서울 마포의 자유경제원 리버티홀 토론회가 썩 특별했다. 이미 이 공간은 한국사회 주요 현안에 대한 대중적 논의의 명소(名所)로 등장한 지 오래인데, 홀 앞에 내걸린 현수막부터 강렬했다. 정곡을 찔렀기 때문인데, 이렇게 써있었다. '다시 묻는다:우익은 죽었는가?-좌익은 활보하고 우익이 고개 숙이는 시대'.
그 자리는 28년 전 양동안 당시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가 <현대공론> 8월호에 발표했던 글 '우익은 죽었는가?'를 기념하는 자리였다. 이후 한국사회가 어떻게 바뀌고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를 가늠하는 자리인데, 당초 가늠했던대로였다. 3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 한국사회는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시절보다 더 나빠졌다는 진단이 토론회 진단의 주류를 이뤘다.
28년 전 그 가슴 철렁한 경고
그동안 우리 사회는 어떻게 변했을까? '좌익'은 '진보'로, '무장 투쟁'은 '민주화'로 포장되며 반(反)대한민국 세력이 추앙받는 시대가 됐다. (연초 통혁당 간첩 출신 신영복 추모열기만도 그랬다.) 상황이 더 나빠진 것이다. 이날 발제 겸 강연을 진행했던 양 교수는 이렇게 털어놓았다. 28년 전의 경고는 학생운동권의 움직임이 민주화 투쟁이 아니고 좌익혁명운동이라는 걸 정확히 짚어주려던 것이었는데, 결과는 사뭇 엉뚱하게 번져갔다.
그 경고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사람들 자체가 거의 없었고, 외려 문제제기자인 양 교수를 미친 사람으로 몰았다. 이 호시절에 이미 끝난 이념-사상 타령을 늘어놓아 세상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식의 반응이었다. 당시 학생운동권이 조직적으로 반발한 것은 물론 언론계-법조-학계가 총동원돼 "피해망상증과 착란에서 비롯된 글"이라며 그를 짓밟았다.
소속 대학은 물론 다른 학교에도 비난 대자보가 붙었고, 서울 시내에도 "도저히 용서 못할 학문의 이름을 빈 양동안의 범죄행위"를 비난하는 유인물이 뿌려졌다. 교수직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정치권에서 들려왔을 정도다.
그랬다. 그게 문제의 글 발표 직후만이 아니고 지난 30년 전후 내내 그래왔다. 대한민국을 위한 의인(義人) 양동안 교수를 극우 학자라며 박해했다. 그를 한국 우익(右翼) 사상의 은사로 떠받들어도 시원치 않은 마당에 엉뚱한 짓을 해온 것이다. ('우익은 죽었는가?'가 명문으로 추앙 받고, 양동안 교수가 재평가되는 분위기는 최근 들어의 일인데, 의미있는 변화다.)정말 우스운 일은 우리가 모두 안다.
<전환시대의 논리>, <8억 인과의 대화> 등을 쓴 지식 사기꾼 리영희를 두고 상당수 사람들은 우리 시대 사상의 은사(恩師)라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지난 30년 내내 그랬다. 그가 은혜에 넘치는 참스승이라는 소리가 얼척 없고 가소로울 뿐이다. 실제로 1999년 '연세대대학원신문'이 20세기 국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학자로 그를 선정했고, 지금도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6일 자유경제원 리버티홀에서 열린 '다시 묻는다:우익은 죽었는가?-좌익은 활보하고 우익이 고개 숙이는 시대'토론회에서 양동안 교수가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자유경제원 제공
종북주의자 리영희를 스승으로 떠받드는 바보들
이런 사실 자체가 지금의 한국이 얼마나 이념적 합의가 깨진 사회, 가슴 철렁한 위험국가인가를 드러낼 뿐인데, 반면 오늘 '우익은 죽었는가?'를 다시 읽어보며 오늘을 가늠해보자는 뜻이 우선이겠지만, 양동안 선생을 우리시대 사상의 스승으로 재평가해야 하는 당위성도 절실하다. 28년 전 그때와 2000년대 초반 지금이 크게 다르지 않다.
'우익은 죽었는가?'직후 쓰여진 '좌익이 너무 세다'란 글에 나오는 양동안 고백에 따르면 당시 그는 "긴장과 분노와 고독감 때문에 밤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헌법에 명문화된 대한민국의 이념을 지키려는 지식인을 제대로 평가하고 예우하기는커녕 집단박해를 했다는 건 도저히 용서 못할 망동이었고, 한국사회만의 병리증후군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 병든 풍토는 거의 체질이 다 돼서 소설가 이문열의 책에 대한 장례식(2001년), 논객 지만원에 대한 법원 집단폭행(2016년)등 집단 히스테리 형태로 잊을만 하면 한 번씩 발작을 한다. 명백하게 유사(類似) 적색 테러에 다름 아닌데, 놀랍게도 누구도 이를 견제하지 않으며 쉬쉬할 뿐이다. 이와 별도로 한국사회는 엄연히 반역지식인에 불과한 리영희에게는 무한찬사를 보내는 얼빠진 행태를 연출해왔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냉전시대에 짧고 파편화된 지식과 정보를, 그것도 매우 선동적인 방식으로 불어넣어 지식사회에 해악을 끼친 최악의 선동꾼을 떠받들고, 그 대척점에 서있는 외로운 참지식인 양동안을 포함한 우익 지식인들을 표적 삼아 인격살해를 서슴치 않고…. 이런 미친 엽기의 풍토를 대체 어떻게 바꿀 것인가?
리영희에 비해 양동안의 지적편력과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에 대한 옹호 활동은 예사롭지 않다. 실은 이 둘을 동일선상에서 맞비교해야 하는 것조차 유쾌하지 않은 노릇이다. 다만 대한민국의 건전한 사상-이념 유지에 해악이 되었느냐, 도움이 되었느냐를 잣대로 한 번은 따질 필요가 있는데, 리영희의 경우 '사상 오염의 원흉'이 맞다.
그 점 단언할 수 있으며, 그를 아직도 우상으로 삼는 바보들에겐 당신들이야말로 시대착오적인 지식 불구자라고 기꺼이 지적해주려 한다. 반면 양동안이야말로 우리 시대 사상의 스승이 맞다. 그 점은 주저(主著) 몇 권만 추려도 드러난다.
6일 자유경제원 리버티홀에서 열린 '다시 묻는다:우익은 죽었는가?-좌익은 활보하고 우익이 고개 숙이는 시대'토론회에 참석한 패널들이 열띤 토론을 하고 있다. /사진=자유경제원 제공
양동안 외에 스타 지식인 복거일-이영훈도 있다
<대한민국 건국사>(1998년 건국대통령이승만박사기념사업회출판사업부 펴냄), <사상과 언어>(2011년 북앤피플 펴냄), 그리고 오늘 음미해보는 명문(名文) '우익은 죽었는가?'가 수록된 정치평론지 <한국의 정치현실>(삼화출판사, 1989년)을 당신은 만나보셨는가? 여전히 팽팽한 긴장감이 도는 그의 글을 읽어 보긴 하셨는가? 유감스럽게도 그게 널리 보급되지 않은 게 우리 현실인데, 그건 양동안의 개인적 한계가 아니다.
심각하게 '기울어진 운동장' 한국사회의 구조적 문제점이 그대로 반영된 비극적 사태에 다름 아니다. 때문에 이념이 붕괴되고 사람조차 없는 이 황량한 사회 속에서 양동안 이름 석 자를 대중화하고, 지식사회에 전파시킬 필요성은 너무도 절박하다. 절대적으로 불리한 이념싸움이 맞겠지만 고맙게도 우리에겐 미친 좌익과의 맞비교를 허락하지 않는 진실된 맹장(猛將)그룹을 더 보유하고 있지 않던가!
양동안과 비슷한 시기에 시장경제를 중심으로 깊이 있는 문명적 성찰까지 보여온 우리시대의 진정한 뇌섹남 복거일(특히 '우익은 죽었는가?'를 집필할 시점에는 그는 <현실과 지향>이란 괄목할만한 정치사회평론집을 펴냈는데, 그 또한 별도의 조명이 필요하다.), 경제학을 중심으로 대한민국 역사를 바로 잡으며, 한국사회의 고삐 풀린 민족주의 문제에 견제구를 날려 온 뚝심의 서울대 교수 이영훈 등만 해도 보배롭지 않은가?
양동안 선생을 포함한 스타 지식인들을 우리시대 사상의 스승으로 보다 더 띄우고 재평가를 하자는 오늘 이 자리 토론자의 이런 제안은 "당해왔으니 되갚자"는 차원일 리 없다. 맞불 놓는다는 경쟁심리도 아니다. 이런 종류의 '지식정보의 홍보전', '우익의 권토중래'없이 대한민국의 치유란 없다는 절박하고 현실적인 판단 때문이다. 대한민국, 이념적 합의가 깨진 위험사회가 맞다. /조우석 주필
[조우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