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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현상의 진실과 '아메리시트'를 꿈꾸는 미국

2016-07-27 10:21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트럼프 현상의 진실: 유럽식 사회민주주의를 거부한다

영국의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이 최근 방송 인터뷰에서 선동꾼에 불과한 트럼프가 미국과 같은 민주국가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사정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발언을 해서 화제에 올랐다. 그의 발언은 트럼프 현상에 대한 유럽인들의 시각을 그대로 드러낸다.

미국과 서방의 주류 언론들은 연일 그를 편협한 인종주의자, 보호무역주의자, 고립주의-국수주의자라든가, 미국의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는, 형편없는 인물로 그려내고 있다. 한국의 언론들이 이런 편견과 그의 거친 언행을 주로 소개하고 있기에, 트럼프는 정치적 속물이며, 트럼프 열풍은 한심하고, 그는 선거에서 참패할거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다. 

트럼프 지지가 주로 저학력의 백인 흙수저 계층에서 나오고, 일종의 우파 포퓰리즘이라는 인식은 뉴욕타임즈나 워싱턴 포스트과 같은 주류 언론이 퍼트린 데 기인한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크게 다르다. 실제로 그에 대한 지지는 언론 보도나 정치엘리트층의 진단과는 달리, 전통적 보수 계층 뿐 아니라 다수의 중도계층과 소수인종 계층에서도 적지 않게 퍼져 있다. 그의 언동이 이민 배척, 소수인종 폄하, 여성비하를 부추긴다는 비난도, 그의 주장이나 연설 내용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전후 맥락을 무시한 선정적 보도의 탓이라는 점은 금방 알 수 있다. 

천박하고 과격해 보이는 언동에도 불구하고 미국인들, 특히 전통적 보수층이 트럼프를 선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의 주류 언론들, 서방세계나 한국의 대중적 인식이 하나같이 그를 부정적으로만 보려하는 배경은 무엇인가? 트럼프 현상이란 주로 백인주류 층이 그가 무차별적으로 쏟아내는, 정치적으로는 부적절하지만 솔직한, 발언들에 환호하고, 정치권에 대한 혐오내지 분노를 드러내는 감정적 반응일 뿐인가? 그런 진단은 모두 피상적 관찰에 지나지 않는다. 현 민주당 정권의 정책기조(아래에서는 편의상 ‘오바마주의’로 부르기로 하자)와 그 실적, 그리고 정치권의 무사안일에 대한 심각한 거부반응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도널드 트럼프 트위터



간단히 말하자면, 트럼프현상은 미국인들의 오바마주의에 대한 거부 현상이다. 그것은 좌파 지식인들이 상투적으로 비판하는 미국사회의 불평등, 소수계층 억압성향, 속물적 우월감과는 전혀 차원이 다르다. 그런 이념적 편향에 집착하는 오바마주의가 문화적 보편주의, 평등지향적 정책을 앞세워 미국사회를 갈등과 침체, 패배주의의 늪에 빠뜨리고, 자신들의 자유와 안위나 후손들의 미래가 걱정되는 상황을 거부하는 현상이다. 

최근 플로리다주 올란도시에서 일어난 테러사건은 이를 극명하게 드러냈다. 무슬림 극단주의 성향을 가진 아프간 이민 2세인 범인이 동성애자 클럽에서 저지른 총기난사로 자신을 포함한 50명의 사망자를 낸 이 끔찍한 사건은 불행하게도 문제의 본질을 파헤치기보다는 극단적인 정치공세로 변질해 버렸다.

오바마 정부나 주류언론은 시종일관 성적소수자에 대한 증오심과 느슨한 총기규제의 문제를 부각시킨 반면, 무슬림 극단주의의 테러행위로 인정하기를 거부하였다. 사건 직후 뉴욕타임스를 위시한 주요 언론사는 미국사회의 성적소수자에 대한 증오심을 개탄하고 사회적 각성을 촉구하는 논평들을 대대적으로 싣고, 총기규제 강화를 다시 들고 나왔다.

대통령과 법무장관, 민주당 정치권도 이를 적극 거들었고, 총기규제에 반대하는 전국총기협회 (NRA, National Rifle Association)와 공화당 인사들을 비난하는 정치공세에 열을 올렸다. 반면에 그들은 무슬림 극단주의자의 테러라는 표현 자체를 사용하지 않으려 하였고, 정부당국자는 사건의 진행 중에 범인이 전달한 테러성 구호를 은폐하려는 자세를 취했다. 

미국사회는 이미 이민자나 소수인종을 차별하고 성적소수자를 박해하는 사회가 아니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성적소수자들을 용인하고 있을 뿐 아니라,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나 어느 정도 총기규제가 필요하다는 사실도 인정한다.

그러나 그들은 이념적으로 편향된 현 정부나 언론이 시민들을 훈계하려 들고, 빈곤문제, 성적선택에서부터 극단주의 테러 문제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회적 현안을 도덕적, 정치적 문제로 해결하려 드는 오바마주의에 반발한다. 올란도 사건에서 정부의 은폐와 언론의 편향적 보도 자세에 대해 ‘우리를 바보로 아는가’ 라는 냉소적 반응이 많았던 것은 이를 반증한다. 

오바마주의는 일종의 무정부-사회주의(anarcho-socialism)다. 그것은 19세기 이후부터 미국으로 이식되어 꾸준히 영향력을 키워온 유럽식 사회주의가 현대판으로 발전한 미국식 사회민주주의이다. 그것은 권위적 도덕주의에 입각해서 사회적 평등과 복지를 옹호하고, 문화적 특수성 대신 보편주의를 지향한다. 이런 좌편향 이념에 빠진 소위 (미국식) 리버럴들이 오늘날 미국의 문화계, 고등교육기관, 언론계를 지배하고 있음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사진=도널드 트럼프 페이스북 페이지



여론형성을 주도하는 전국적 일간신문과 방송은 거의 모두 리버럴들이 장악하고 있고, 대학교수의 80퍼센트는 스스로를 리버럴임을 자처하며, 언론사 기자의 90퍼센트 이상은 일관되게 민주당 후보에 투표한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들은 미국인들이 전통적으로 지녀온 미국 특수주의(American exceptionalism)1), 미국의 정치, 사회, 경제적 성취를 조롱하기 좋아한다.

그들은 하워드 진(Howard Zinn)의 민중역사관, 촘스키(Noam Chomsky)의 반자본주의, 사회주의 기업관, 무어 (Michael Moore)의 미국비하(卑下) 다큐멘터리에 공감하기 좋아 한다. 미국을 소수자에 대한 탄압과 폭력을 휘두르는 사악한 체제, 부도덕한 이념 위에 세워진 국가로 묘사하는 하워드 진의 ‘미국의 민중역사 (Peoples’ History of America)’는 주요대학에서 필수교재 또는 필독서로 채택되고 있다. 젊은 시절의 오바마도 하워드 진의 팬이었으며, 그가 미국 특수주의에 회의적 시각을 가지고 있음은 비밀이 아니다. 

이런 정치, 사회적 상황은 20세기 이후부터 꾸준히 진행되어왔다. 레이건 정권의 등장과 공산주의의 몰락으로 쇠퇴하는 듯 했던 이 과정은 클린턴과 오바마의 집권으로 새롭게 활기를 찾았다. 오바마주의는 루즈벨트의 뉴딜정책, 존슨의 위대한 사회정책, 그리고 카터의 도덕정치의 가장 충실한 계승자다.

집권 이후 오바마는 기업과 금융에 대한 규제강화, 오바마 케어, 복지확대, 사회적 불평등 해소정책을 밀어 붙이고, 특히 소수계층이나 저소득층에 대한 재정적, 제도적 지원에 총력을 기울였다. 오바마주의는 우호적인 언론과 좌파 지식계층, 그리고 흑인과 히스패닉, 불법이민자, 성적소수자와 같은 사회적 취약계층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주목할 점은 오바마가 이런 사상적 바탕 위에서 미국을 뜯어고치겠다는 생각을 종종 드러낸 정치인이라는 점이다. 그는 미국사회의 불평등을 구조적으로 개조해야하고, 대외적으로 미국 우월의식의 흔적을 지워야한다고 공언해왔다. 재임기간 내내 그는 사회적 취약계층의 권익향상을  위한 정치적, 제도적, 행정적 지원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는 최저임금 인상, 실업수당 확대, 공립학교 재정지원, 성적소수자 권익보호, 불법이민자 사면, 이민자의 모국어 교육확대와  같은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정부의 법적, 행정적 지원을, 연방행정부의 재량을 넘어, 활용하였다. 전 국민의 의료보험 가입을 의무화한 오바마 케어도 사실상 저소득층에 대한 의료 혜택, 소득지원의 성격의 정책이다. 

이들 정책의 추진에는 주로 연방 교육부와  법무부가 앞장섰고, 역대 어떤 정권보다도 대통령 행정명령 (executive order)의 특권이 자주 이용되었다. 불법이민자 단속을 지연 또는 완화시킨 행정적 조처라든가, 성적소수자(LGBT; Lesbian, Gays, Bisexual, and Transgender) 가 동등하게 화장실을 사용할 권한을 제한하거나 이민자의 모국어 교육확대에 소극적인 지방정부에게  행정적, 재정적 불이익을 주게 하는 행정명령들이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이들 조처들은 모두 헌법정신과 미국 정치제도의 근간을 위협하는 월권행위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오바마는 또한 미국과 적대적 또는 비우호적 국가와의 관계개선에 크게 기여한 대통령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는 관타나모 기지의 폐쇄를 추진하고, 억류된 테러용의자를  대거 석방하였으며, 쿠바, 이란, 베트남과 국교를 정상화하고 아프리카 국가들과의 관계개선에 주력하였다. 오바마는 이들 정책들을 늘 도덕성과 사회정의의 명분으로 정당화하는 자세를 취했고, 민주당의 차기 대통령 후보로 지명된 힐러리 클린턴도 이런 오바마주의를 계승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갈등의 수준은 오히려 늘고, 경제성장은 지지부진한데다, 정부부채는 사상최고를 기록하고 있다. 크리스탈 라이트는 최근 저서인 ‘사기적 실적 (Con Job: How Democrats gave us crime, sanctuary cities, abortion, abortion profiteering and racial division)’에서 선의로 포장된 오바마주의가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양산한 사실을 폭로하고 있다.

그녀의 진단에 따르면, 이런 정책들이 범죄와 갱 폭력, 도시 슬럼화, 가정파괴, 낙태증가, 미래에 대한 불안과 비관, 불법이민과 범법자 보호도시 (sanctuary cities)의 증가, 인종 간 반목과 갈등의 심화, 도덕적 권위주의의 대두, 극단적 진영논리, 정치적 부패와 부패의 확대, 모든 문제에 대한 사회적 책임 전가와 같은 병리현상을 증폭시켰다. 사회주의의 실패는 결코 경제적인 현상에 머물러있지 않다. 보수층과 중도 층의 민심이반은 이런 인식에서 연유한다. 그들은 또한 현 공화당 정치엘리트의 무정부자유주의(anarcho-liberalism)식 이상주의나, 여론눈치보기식 중도성향에도 등을 돌렸다. 

/사진=도널드 트럼프 페이스북 페이지



트럼프의 정치적 부상의 이면에는 이런 미국인의 상황인식이 깔려 있다. 그들은 무엇보다도 오바마주의가 지향하는 평등지상주의, 유럽식의 보편적 사회주의, 반자유주의, 역사적 비관의식이나 패배주의, 다시 말해서, 반미국적 정치성향에 반발한다. ‘미국인’들은, 그들의 원래 출신지와는 상관없이, 미국의 건국이념과 건국 주역이 설계한 헌법정신, 자유주의 정신에 깊은 애착심을 가지고 있으며, 미국의 역사적 성취와 미국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보고 싶어 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국가가 보다 완전한 협력체(..a more perfect union)2), 다양성을 지닌 하나의 공동체(E Pluribus Unum)3), 자유의 정신으로 성립된 (…conceived in liberty…)4) 국가, 언덕위의 빛나는 도시(a shining city on the hill) 5) 라는 미국 특수성(American exceptionalism)에 자부심을 느끼고, 그런 성향을 고취하는 정치지도자를 갈망한다. 트럼프 현상의 진정한 의미는 바로 미국의 (사회주의로부터) 탈퇴를 의미하는 ‘아메리시트(Amerexit)’이다. 

트럼프가 이런 정치적 기대를 얼마만큼 만족시켜줄 지는 알 수 없다. 그는 행적이나 언동, 정치적 이념, 지적 수준에서 큰 신뢰감을 주지 못하고 있지만, 미국이 당면한 문제들을, 정치적 온당성(political correctness)에 구애되지 않고, 잘 짚어내는 걸로 큰 점수를 받고 있다. 그가 이번 선거에서 실패하더라도, 미국인들의 여망이 미국적 특수성을 발휘할 수 있는 새로운 정치지도자, 새로운 정치질서를 만들어낼 가능성은 더욱 커질 것 같다. /장대홍 한림대 명예교수


1) 미국인들이 역사적, 지리적, 문화적인 이유로 자립정신, 자유주의 정신이 강한 독특한 개성을 가지고 있다는 정치학적 용어이며, 이는 속물적 근성과는 거리가 먼 개념이다(Charles Murray, American Exceptionalism (2013))

2) 미국 헌법의 전문의 한 구절로서, 미국 정치체제의 미완적, 점진적, 진화적, 소극적이자 제한적 성격을 상징한다. 이 표현은, 역설적으로, 오바마가 2008년 후보지명전에서 미국사회의 불평등 극복을 위한 급진적 정치개혁, 정부의 역할확대를 역설한 연설의 제목으로도 유명하다. 이는 오바마의 멘토이자 열렬한 지지자였던 제레미아 라이트가  미국사회의 불평등과 인종적 편견을 근거로 ‘God bless America’를 ‘God dame America’ 로 비꼰데 대한 비난이 일어나자, 그 대응으로 한 연설이다. 이 연설은 그의 지명전 승리를 굳힌 것으로 평가받고 있고, 이후 오바마주의의 기조를 이루었다.

3) 미국의 건국정신에 반영된 ‘개별적 특성을 존중한 하나의 공동체’를 뜻하는 문구로서 , 이후 이질적 시민의 융합체 (‘American’ melting pot)의 의로 해석되어 왔다. 미국의 국가문장이나 공식문서들에 사용되고 있는 문구이기도 하다.

4)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문에 포함된 한 구절이다. 여기서 자유의 개념은 ‘고전적 자유주의 (classical liberalism), 소극적 자유 (negative freedom)의 개념임은 명백하다. 

5) 미국의 특수성과 낙관적인 장래를 상징하는 표현으로서, 레이건 대통령이 즐겨 사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글은 자유경제원 '세상일침' 게시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장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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