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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뼛속까지 기업인' 박승직·박두병, 가족경영 성공의 산실

2016-08-01 11:05 | 김세헌 기자 | betterman89@gmail.com
세계적으로 수많은 기업들이 우후죽순처럼 창업해 세계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지만, 100년 이상 장수하는 기업은 그리 많지 않다. 


미국의 경제 전문지 <포춘>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세계 기업의 80퍼센트가 창업한 지 30년이 못돼 사라진다. 이러한 현실을 볼 때 100년 이상 한 기업이 승승장구한 것은 여느 기업과는 다른 특별한 비결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한국기네스협회도 인정하는 한국 최고의 기업인 두산그룹이 1일 120번째 생일을 맞았다. 1896년 ‘박승직상점’으로 출발해 한국 최고의 장수 기업으로 성장한 두산은 창업자인 매헌 박승직이 1세대 경영인으로 사업 기반을 확고하게 구축했다. 

어릴 적부터 상거래에 관심이 많았던 박승직은 당시 갑오개혁으로 독점적 상업권을 누리던 육의전이 폐지되면서 일반 상인에게도 기회가 생길 것으로 보고 상점을 개업했고, 금전등록기와 최신 회계방식을 도입하는 등 근대적인 기업의 모습을 갖춰나갔다.

면포를 주로 취급하던 일개 상점에서 시작한 두산은 긴 역사를 거치면서 발전소와 플랜트, 건설기계 등 대형 사업을 아우르는 연 매출 19조원의 그룹사로 성장했다.   

창업주 박승직은 그 스스로 ‘근자성공(勤者成功)’이란 붓글씨를 써서 벽에 붙여놓고 마음 수련의 지침으로 삼았다. 이를 후손들에게도 좌우명으로 물려줬다. 이렇듯 ‘부지런해야 성공한다’는 가풍이 오늘날까지 두산그룹의 기업 정신으로 정착돼는 큰 밑바탕이 됐다.

1936년 촬영한 두산 3대의 모습. 매헌 박승직(창업주, 오른쪽), 연강 박두병(초대회장, 왼쪽 위), 장남 박용곤 두산 명예회장이다. / 두산그룹 제공


창업자 박승직은 일찍이 한학을 배워 <논어>, <사기> 등 중국 고전을 탐독해 리더십을 익혀나갔다. 그러면서 그는 아들인 연강 박두병이 자신의 대를 이어 기업을 이끌어갈 수 있도록 철저하게 경영자 교육을 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1946년 박두병이 경영권을 넘겨받아 두산 초대 회장으로 오르면 상호를 '두산(斗山)상회'로 바꾸며 2세대 경영인으로서 사업을 크게 발전시켰다. 이는 박승직 창업주가 지어준 상호로 "한 말 한 말 차근차근 쉬지 않고 쌓아 올려 산같이 커져라"는 뜻이다. 

박두병은 경성고등상업학교 상과대학을 졸업한 후 조선은행에 취직해 4년간 근무했다. 두산그룹의 3세대 경영을 이끈 박두병의 자식들도 대부분 그가 밟은 경영자 실습 과정을 그대로 거쳤다. 

즉 상과대학을 나와 일단 은행에 취직해 경제의 흐름과 돈의 효용성을 충분히 경험한 후 그룹 계열사를 두루 거치는 경영자 수업을 받은 것이다. 

박두병 회장 아래 두산상회는 1950년대 무역업과 OB맥주, 1960년대 건설, 식음료, 기계산업, 언론, 문화 등 다양한 사업 분야에 연이어 진출했고 전문 경영인 제도와 사업 다각화를 통해 두산그룹의 기틀을 마련했다.


1934년 당시 2층으로 증축해 새롭게 단장한 박승직 상점의 1층 소매부 모습. / 두산그룹 제공


1970년대에는 외국 기업과 제휴로 기술을 축적하면서 내실을 강화했고 1980년대 맥주, 건설, 전자, 유리, 기계, 무역 부문을 중심으로 해외시장을 폭넓게 개척했다. 이후 3세대 경영을 통해 손자들이 번갈아 가며 그룹 회장직을 이어받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렇게 창업자 박승직부터 그 손자인 현 박정원 회장에 이르기까지, 3대로 이어지는 특별한 가문의 전통이 두산그룹의 기업 정신으로 승화돼 오랜 기간 변함없이 이어져 오고 있다. 

이러한 가족 경영 교육 시스템 안에서 경영 수업을 한 2세대, 3세대 경영인들이 실무에서 그 능력을 최대한 발휘한 덕분에 두산그룹이 흔들림 없이 장수할 수 있었던 것이다. 

[미디어펜=김세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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