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재현 기자] 정부가 초대형 투자은행을 육성키로 했다. 지난 2013년 선진형 투자은행 발전을 촉진키 위해 종합금융투자사업자 제도를 도입했지만 증권산업은 단순 중개위주, 가격경쟁 중심의 영업방식을 계속 답습할 뿐 종합금융투자사업자의 기업금융 업무도 큰 변화를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종합금융투자사업자가 투자은행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토록 △기업금융 활성화 △글로벌 역량 강화에 방점을 찍었다. 특히 이 두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자기자본 확보가 중요한데 종합금융투자사업자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김태현 금융위원회 자본시장국장 2일 금융위 기자실에서 열린 종합금융투자사업자 제도 개선방안 브리핑에서 "자기자본 규모에 따라 신규업무와 인센티브를 차등지원해 대형화를 유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초대형 투자은행 육성을 위한 '종합금융투자사업자 제도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여의도 증권가 모습./미디어펜
이어 김 국장은 "혁신형 기업에 대한 지원, 모험자본의 공급, 기업에 대한 맞춤형 금융서비스 제공 등 고부가가치 기업금융 업무를 전문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초대형 투자은행이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데 기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3년 넘은 지금 왜 초대형 투자은행은 없을까?
정부는 투자은행 출현을 위해 지난 2013년 종합금융투자사업자 제도를 도입했다 .자기자본 3조원 등 일정요건을 갖춘 증권사에게 기업 신용공여 업무를 허용했다.
하지만 3년이 지난 지금 우리 증권산업은 여전히 중개업 영역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선 자본력 부족이다. 국내 6대 종합금융투자사업자의 자기자본은 3~6조원대다. 일본 노무라 29조1000억원, 중국 중신증권(25조6000억원), 말레이시아 CIMB 11조7000억원 등 아시아 주요국 대표 증권사들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규모다.
또한 고비용 자금조달 구조도 걸림돌이다. 국내 종합금융투자사업자들의 경우 환매조건부채권(RP)과 주가연계증권(ELS)를 통해 조달한 자금이 전체 자금조달액의 73%에 육박한다. RP의 경우 만기가 짧고 ELS와 함께 담보채권이나 헤지자산 보유가 불가피해 자금 활용도가 약하다.
기업금융서비스 제공능력도 한계다. 국내 증권사의 경우 중개업과 가격경쟁 중심의 관행적 영업을 해오고 있다. 국내 증권사 수익 중 위탁매매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에 달한다. 미국(14%), 일본(17%) 등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준이다.
비록 기업 신용공여 규모는 점차 증가하고 있지만 부동산 PF나 M&A 관련 브릿지론이 대분이다. 수익기여도도 5% 내외로 미미하다.
취약한 자본력은 물론 글로벌 업무경험이나 해외 네트워크의 부족 등도 종합금융투자사업의 부족한 역량을 대변해준다.
왜 투자은행 중심의 종합기업금융서비스 확대가 필요할까. 은행과 벤처캐피탈 중심의 자금공급만으로 우리 경제를 이끌어 나갈 혁신형 기업에 대한 장기적인 투자나 자금공급에 한계를 부딪히고 있는 까닭이다.
김 국장은 "일반은행의 경우 엄격한 건전성이 요구되는 대출중심으로 운용되고 있다"라며 "혁신형 기업에 대한 과감한 투자나 초대형 프로젝트에 대한 중후순위 출자 등 자본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모험자본 공급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제도 개선은 은행이 과감하게 대출하지 못하는 혁신형 기업과 대규모 프로젝트 등에 다양한 형태로 모험자본을 공급해 기업이 활용할 수 있는 금융서비스의 다양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
자금조달 당근정책은 뭘까?
만기 1년 이내의 어음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허용키로 했다. 발행절차가 간편해 다수 투자자로부터 상시 자금수탁이 가능하고 헤지자산·담보 관리 부담이 없는 등 운용의 자율성과 효율성 제고키로 했다.
발행어음은 레버리지 규제 대상에서 제외하되 기업금융 의무비율(최소 50% 이상)을 둬 기업금융 확대에 우선 사용토록 유도하는 방안을 모색했다. 투자자에 대한 발행인의 지급여력이 안정적으로 확보될 수 있도록 발행 총량을 자기자본의 200% 이내로 제한한다. 단, 예금자 보호는 제공되지 않는다.
고객으로부터 예탁 받은 금전을 통합해 운용하고 그 수익을 고객에게 지급하는 '종합투자계좌(IMA)'를 허용키로 했다. 레버리지 규제 대상에서 제외하고 기업금융 의무비율(최소 70% 이상)을 설정한다. 발행어음과 유사하다.
종합금융투자사업자가 원금 지급의무를 지고 운용수익은 사전 약정에 따라 투자자에게 배분하되 예금자 보호는 제공되지 않는다.
김 국장은 "발행어음에 비해 보다 세부적인 운용규제를 받는 대신 양적 한도없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발행어음과 종합투자계좌는 운용 적절성을 확보키 위해 별도 계정으로 관리한다. 업무보고서 등을 통해 운용 상황을 금감원에 보고하는 등 감독체계를 구축키로 했다.
효과적인 기업금융을 제공키 위한 규제 개혁들도 재정비된다.
기업금융 업무가 활성화 될 수 있도록 업무 특성을 감안한 별도의 순자본 비율체계(NCR-II)를 적용키로 했다.
NCR-II는 우량한 대출자산인데도 단지 만기가 길다는 이유로 높은 수준의 건전성 부담을 주고 있는 현 NCR체계의 불합리성을 개선하기 위함이다. 대출자산의 리스크에 따라 위험 값이 산정되는 만큼 오히려 경제적 실질을 더 잘 반영하는 건전성 규제가 가능하다.
일례로 현재 만기가 긴 대출자산은 신용등급에 관계없이 영업용순자본에서 채권액 전체(100%)를 차감가 때문에 NCR비율이 크게 하락된다. 이번 NCR-II 적용으로 대출자산의 신용등급에 따라 채권액의 일부(AAA등급의 경우 1.6%, BBB 8%)만을 영업용순자본에서 차감해 건전성 부담을 완화시킬 수 있다.
하지만 NCR-II가 도입되면 건전성관리가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이에 대해 김 국장은 "만기가 긴 대출자산 등 비유동 자산이 증가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별도의 유동성 규제를 통해 적정 유동성을 확보하도록 관리해 나갈 계획"이라고 답했다.
이를 위해 조달·운용간의 만기 미스매치를 관리감독하기 위한 별도의 유동성 관리 지표를 도입하고 여신건정성에 대한 내부통제기준과 경영실태평가를 강화키로 했다. 대손충당금 적립률을 상향조정해 손실흡수능력을 키우기로 했다.
신용공여 한도도 확대키로 했다. 현행 기업신용공여를 여타 신용공여화 합산해 자기자본 100% 이내로 제한했지만 기업 신용공여을 별도로 자기자본 100%로 확대 추진한다.
기업금융서비스 수요를 대응하기 위해 관련 신규업무 범위를 넓히기로 했다. 구체적으로 △다자간 비상장주식 매매와 중개 업무 △외국환 업무 △부동산 담보신탁 등을 영위할 수 있도록 했다.
글로벌 경쟁력 어떻게 키우나?
종합금융투자사업자의 해외 투자, 해외 M&A 중개·주선 역량을 강화하는 등 사업영역의 글로벌화를 지원키 위해 정책금융기관과 국부펀드 등과의 협력체계를 구축한다.
국내기업의 해외 인프라사업을 종합금융투자사업자가 주관하고 정책금융기관, 한국투자공사(KIC) 등이 공동 투자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종합금융투자사업자가 국내 중소·중견기업의 해외 M&A를 주관하는 경우 성장사다리 M&A 펀드가 공동투자자로 참여하는 등 재무적인 지원을 넓히기로 했다.
기타로는 합병에 따른 거래소 지분 소유한도(5%)를 초과한 경우 현재는 초과 지분을 매각토록 돼 있지만 금융위원회의 승인을 받아 일정기간동안 적법하게 소유할 수 있도록 허용키로 했다.
초대형 투자은행, 자본력이 문제인데…
정부의 이번 개선 방안은 중장기적인 측면에서 자기자본 10조원 이상의 투자은행 출현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번 방안은 현재 종합금융투자사업자의 자기자본 수준과 확충가능성, 신규업무에 따른 리스크 관리 필요성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현실적인 수준의 대안이다. 즉, 10조원 달성을 위한 중간단계를 마련하게 된 것.
금융위에 따르면 올해 3월말 기준 종합금융투자사업자 자기자본 현황을 보면 미래에셋증권과 대우증권은 6조7000억원(7월 합병승인신청서 기재), NH는 4조5000억원, KB증권과 현대증권은 3조8000억원(단순합산치), 삼성증권은 3조4000억원, 한국투자증권은 3조2000억원이다.
정부의 자기자본 확충 계획은 3단계로 구분해 신규업무 범위를 설정한다. △자기자본 3조원 이상 △자기자본 4조원 이상 △자기자본 8조원 이상 등이다.
현재 자기자본 3조원 이상 종합금융투자사업자가 자기자본을 확충할 수 있도록 4조원 이상 자기자본 수준의 종합금융투자사업자에게 발행어음을 통한 자금조달과 외국환업무 등을 허용해 자기자본 확충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자기자본이 10조원에 근접한 8조원 이상 종합금융투자사업자 에게는 추가적인 자금조달수단(종합투자계좌)과 신탁업무(부동산 담보신탁)를 허용해 기업금융서비스 제공 여력을 확대키로 했다.
자기자본이 4조원에 미치지 못하는 종합금융투자사업자의 경우에도 기업금융기능 강화를 위한 기본적인 제도개선 사항들을 동일하게 적용해 기업금융 업무 활성화를 촉진시키기로 했다.
거꾸로 가는 정책 아닐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해외의 경우 투자은행 규제를 강화하고 있는데 오히려 우리 정부는 초대형 투자은행을 키울 방침이어서 거꾸로 정책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금융위기 이후 해외 투자은행들은 기업금융 업무 등 핵심 사업영역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M&A, 재무자문, 증권인수 등 전통적 IB업무에 집중하는 한편 안정적인 수익창출을 위해 자산관리 등 사업영역을 다각화하고 있다.
자기자본 투자(PI), 채권·원자재 트레이딩(FICC) 등 고위험 업무 비중은 축소해 나가는 추세다.
김 국장은 "우리나라 증권사들은 PI나 FICC 등 고위험 IB 업무는 물론 인수합병 등 전통적 IB업무도 본 궤도에 올랐다고 평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금융위기 이후 해외 IB들이 집중하고 있는 기업금융 업무를 우리 종합금융투자사업자드로 보다 적극적으로 영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고자 하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또 세부적으로 자기자본 기준을 마련한 것은 특정 증권사에 유리한 것이 아니냐는 형평성 문제도 나온다.
현재 자기자본이 4조원을 넘는 증권사는 미래에셋-대우증권 합병증권사와 NH투자증권 2곳이다. KB투자증권과 현대증권 합병법인도 4조원에 근접한 자기자본을 갖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경우 5개 종합금융투자사업자중에서 3개사가 자기자본 4조원 이상 해당해 인센티브를 적용받게 된다. 나머지 2개사도 이익유보, 증자, M&A 등을 통해 단기간 안에 4조원 기준을 충족할 수 있는 수준의 자기자본을 이미 확보한 만큼 4조원 기준이 특정 증권사에 유리한 기준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 금융당국의 생각이다.
자기자본이 8조원이 넘는 증권사는 현재 없다. 앞으로 이익유보, 증자,M&A를 통해 대형화가 이뤄지면 기준에 도달하는 초대형 종합금융투자사업자가 등장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정부는 이와관련한 법령 개정 등 후속조치를 차질없이 준비할 방침이다. 증권사들의 올해 말 기준 자기자본 규모가 내년 3월 중 확정되는 점을 감안해 내년 2분기부터 시행할 계획이다.
김 국장은 "8월 중 증권사 사장단 간담회와 금융개혁추진위원회 등을 통해 업계와 전문가 등의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미디어펜=김재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