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승희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이사장, 영남대 박정희새마을대학원 석좌교수
김영란법 단상…부패사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한국경제는 지난 30여년간 포퓰리즘에 찌든 정치권이 양산하는 반시장적 경제민주화 규제에다 행정부의 더 교묘한 규제강화기술과 무사안일 속에 청탁과 뇌물 없이는 살아남기 힘든, 거래비용(去來費用)이 너무 높은 경제생태계를 만들어내었다. 이것이 오늘날 한국경제가 저성장과 양극화에 빠진 이유이다. 여기에 이제 김영란법이 시행되면서 규제순응 및 회피에 따른 거래비용의 상승 때문에 추가적인 성장동력의 상실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하루 빨리 민간의 순응비용과 사법당국의 집행비용을 낮출 수 있는 보완 조치가 필요해 보이며, 그렇지 못할 경우, 두 가지 가능성이 보인다. 첫째는 과도한 집행비용으로 인해 아예 공정한 법집행이 어려워지고 국민들의 사보타지로 법 자체가 유명무실해져 애꿎은 재수 없는 자들만 피해보는 불공정한 법으로 남게 될 위험이 있고, 둘째는 만일 국가가 모든 사법적 집행력과 행정력을 총동원하여 엄정하게 집행한다면 아마도 집행비용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증가할 뿐만 아니라 정부를 포함한 법이 정하는 갑의 인허가 관련 기능이 마비되어 민간전반의 활동에 심각한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아마도 좋은 법을 만들었으니 세상이 알아서 순응하고 나라가 바뀔 것이라 믿고 싶겠지만 불행하게도 한국경제·사회는 이미 규제에 녹슬어 청탁이라는 윤활유가 없이는 돌아가기 힘든 사회가 되었다. 더구나 공공성이라는 이름하에 교육기관, 언론 등, 심지어 민간영역까지 다수 포함함으로써 향후 어디까지 정치 혹은 국가가 국민들에게 어떻게 사는 것이 옳고 행복한 삶인지 가르치려 할 것인지 크게 우려된다.
세상이 그저 “깨끗해 져라!”하는 명령으로 다 된다면 세상에 부패하고 못사는 나라가 왜 생기겠는가? 명령으로 이상사회에 건설에 나섰던 공산사회가 모두 망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김영란법의 모순. 그 동안 대한민국의 법 어디에 부정청탁을 해도 좋다는 구절이 있었던가? 그렇지 않은데도 왜 우리사회에는 소위 부정청탁이 만연되었는가?/사진=연합뉴스
특히 이 법은 추구하는 아름다운 이상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취약한 전제에서 출발하고 있다. 청탁하거나 받는 행위가 나쁘기 때문에 금지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이나 그 행위가 왜 만연되었는가하는 근본 원인에 대한 고민은 없어 보인다.
그 동안 대한민국의 법 어디에 부정청탁을 해도 좋다는 구절이 있었던가? 그렇지 않은데도 왜 우리사회에는 소위 부정청탁이 만연되었는가? 우선은 법을 제정해놓고도 국민들이 다 잘 따르리라 생각하거나 혹은 법이 너무 엄격하여 집행비용이 과다하거나 하여 당국이 집행을 소홀히 해온 관행 때문일 수 있다.
부정청탁관련처벌법령이 많으나 거의 유명무실하게 운영되었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너무 이상에 치우치지 말고 현실적으로 집행 가능한 법을 만들되 만들어진 법은 엄정하게 집행하는 관행을 정착시키는 것이 중요하며 법의 보완시 이점을 염두에 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보다 더 근본적으로는 우리의 문화인 가부장적 국가관에 기초한 법체계가 “국가사회가 허락한 일만 할 수 있고 그 외는 맘대로 할 수 없다”는 포지티브리스트 체제이기 때문에 국가의 허가권이 너무 막강한데 있다. 법에 명시되지 않은 새로운 창조적인 일은 정부의 허가 없이는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한국경제·사회는 항상 정치와 정부의 시녀를 못 벗어나고 소위 부정청탁을 일삼지 않고는 새로운 사업을 일으킬 수 없기 때문에 청탁에 목을 매게 되는 것이다.
이런 근본적인 문제를 살피지 못한 체 청탁이 나쁘니 금해야 한다고, 있는 법도 제대로 집행 못하면서 또 새 법을 만들어 내봐야 지키기도 집행하기도 어려워 편법이 판을 치고 허가받기는 더 어려워지고 뇌물의 규모만 키울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기 어렵다. 이것이 그동안 공정, 도덕사회기치아래 만들어내는 법이 유명무실해지고 사회는 오히려 더 부패해지고 경제 또한 더 어려워지는 이유이다.
최근 김영란법은 헌법재판소로부터 합헌 결정을 받았다./사진=미디어펜
하루 빨리 국회가 나서 관련법과 규제체계를 “금지사항만을 열거하고 그 외에는 가능한 한 모든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네거티브리스트 체제”로 바꿔나가야 한다. 지난 30년 가까운 세월 앵무새처럼 외치던 “자유 시장경제를 향한 개혁”을 이제 제대로 해야 할 때가 되었다. 나아가 네거티브리스트 체제로의 법제도개혁은 궁극적으로 모든 문제의 문화적 근원인 가부장적 국가관을 바꾸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문화는 법제도의 모태이기도 하지만 법제도개혁이 역으로 문화를 바꿔내기도 한다. 자유주의법체계가 장기간 집행되어야 우리의 행태와 생각도 바뀌면서 자연스레 가부장적 국가관도 바뀔 수 있는 법이다.
이를 통해 국가기관이 국민들의 일상에 개입할 수 있는 소지와 청탁의 필요성을 근본적으로 낮춰줘야 국민들의 순응비용도 국가의 집행비용도 모두 낮아지고 개혁의 성공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다. 청탁을 조장하는 원인치유노력이 없는 규제 일변도의 개혁은 실패할 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삶을 오히려 힘들게 할 뿐이다. /좌승희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이사장, 영남대 박정희새마을대학원 석좌교수
(이 글은 매일경제신문에 8월 3일자로 필자가 기고한 칼럼입니다.)
[좌승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