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 글에서 언론권력 조중동 문제를 거푸 다뤘다. 7월 사드 안보대란 국면에서 대국과 국익을 외면한 빅3 신문의 패착을 그 언론사 오너와 연결시켜 비판한 것이다. 또 조선-동아가 박근혜 정부 레임덕 재촉을 회사 이익이라고 착각하는 몽니라면, 중앙의 일탈(逸脫)은 오너 홍석현의 좌편향을 반영한 위험한 지면이라는 차이를 밝힌 게 두 글의 요지였다.
그렇다면 저들의 흔들리는 지면이 과연 어디까지인가를 조선일보 지면을 중심으로 보여드릴 생각이다. 안타까운 얘기다. 좌익언론이 태생적 성격 때문에 반대한민국-반체제로 치닫는다면, 조중동은 사주(社主)의 이익(조선일보의 경우), 시야 짧은 좌익상업주의(중앙일보)가 저들의 불행을 재촉한다.
특히 남북한 문제-사드 배치 등의 현안에서 국가정체성을 잊거나, 자기 신문의 정체성마저 외면하는 혼란스러운 지면을 만든다. 조선이 지난 한 달 우병우 수석 죽이기에 올인하는 바보짓을 하고, 중앙이 평화협정 체결이라는 최악의 나팔을 불어대는 황당한 지면을 꾸미는 건 어제 오늘 시작된 게 아니며 이미 체질인지도 모른다.
조선일보가 지난 한 달 우병우 수석 죽이기에 올인하는 등 박근혜 정부의 레임덕을 부채질 하고 있다. 특히 남북한 문제-사드 배치 등의 현안에서 국가정체성을 잊거나, 자기 신문의 정체성마저 외면하는 혼란스러움을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1년 전 중앙-동아의 경쟁적 북한 퍼주기 선동
시계를 1년 전으로 돌려보자. 당시 중앙일보가 요란한 북한 퍼주기 캠페인을 벌여 우릴 놀라게 했다. 당시 7월10일자 1면 기사 "대가뭄 북한에 식량 100만t 지원하자"가 그것인데, 핵 포기를 선언한 바 없는, 인류 최악의 집단을 향해 인도주의 헛구호를 남발했다.
그날 이어지는 기사 네 꼭지도 호기로운 제안에 낙관적 전망을 마구 섞었지만, 뒷감당 못하는 헛소리였다. "식량은 전용 우려 없어…대북 지원 때 쌀 보관증 주자", "남북의 평화공존 시대를 열자", "북한의 뒷문은 열려있다"…. 어떠신지? 지난 7월 평화협정 체결 나팔을 분 게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얘기다.
더 놀라운 건 중앙의 북한 퍼주기가 조선일보와 경쟁구도로 진행된 점이다. 실패한 김대중의 햇볕정책을 우파 언론이 되살리려고 애쓰는 모양새인데, 그 며칠 전인 6월 29일 조선 1면 머리기사가 그랬다. "외국 돕는데 5년간 3조4000억 쓴 한국/북 주민 돕는 데는 2%도 안 썼다".
이게 조선-중앙의 실체다. 범죄적 평양정권을 끝장낼 수 있는 국면에서 2400만 명 주민에게 돌아가지도 않을 식량 지원 타령을 번갈아가며 늘어놓는 위선에 찬 인도주의 태도가 그 신문들의 진면목이다. 지난해 한국경제를 잠시 망친 책임의 상당수도 조중동 탓이다. '메르스뻥' 선동의 지면이 그러했다. 과도하게 호들갑을 떨어대는 버릇의 전형이 조선일보 6월4일자 지면이었다.
그날 1면 톱이 이랬다. "보건계엄령 수준 대응을…공포의 확산 끊자". 공포를 끊자면서 거꾸로 충격과 공포를 심어줬던 맹랑한 제목인데, 한 달 내내 그런 지면이었다. 희한하게도 이런 위기국면에서 조선은 대통령 흔들기를 즐기는 고약한 버릇도 있다.
특히 주필, 논설주간 등 책임있는 논객들이 그런 짓을 반복하는데, 당시 악명 높았던 게 박근혜 대통령을 메르스의 슈퍼 전파자로 지목해 문제가 됐던 조선일보 양상훈 칼럼(6월18일자)이었다. 그는 보름 뒤에 다시 칼럼 '여왕과 공화국의 불화'을 썼는데, 또 한 번 뒤틀린 인식을 드러냈다.
"박 대통령이 당선된 다음 날 언론은 대통령의 딸이 대통령 됐다고 썼지만 박 대통령을 잘 아는 사람들 중에는 그때 이미 공주가 여왕 된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며 대통령을 대놓고 조롱했다. 대통령과 장관·수석 사이는 군신(君臣) 관계라고도 말했다. 이런 조롱과 비아냥이 정당한 권력 감시이고 비판일까? 그 신문의 주필로 있는 송희영도 마찬가지다. 그는 한마디로 '조선일보의 유승민'이라고 보면 된다.
쓰는 글의 대부분은 경제민주화 쪽을 지지하는데, 조선일보라는 신문의 정체성과 심하게 부조화스럽다. 일테면 6월 27일자 칼럼 '오만한 少數, 한 맺힌 多數'가 대표적인데, 그날 부제목이 이렇다. "신경숙·조현아·삼성… 1등의 졸렬한 대응이 배고픈 다수의 반발 키워/한(恨) 품은 집단 힘 커지는데 돈·권력·명예 쥐었다고 오만하게 맞설 것인가"
신영복에 만해대상 주고, 반역작가 조정래 띄우고
지금 그 신문은 특정지역 출신들이 논조를 좌우하고 있는데, 송희영 역시 그쪽이다. 하지만 그 이상이다. 조선일보 지면의 변질이란 훨씬 오래 전인 10년 내외부터 진행돼온 구조적인 사안임을 부인 못한다. 지난 10여년 대한민국은 언론-정당-지식인 그룹을 포함해 누구도 체제수호를 하려하지 않는 기이한 나라로 변질돼왔다는 게 그중 뚜렷한 현상인데, 유감스럽게도 조선일보가 그 망국적 흐름을 일부 주도했다는 혐의도 있다.
물새는 조선일보 지면은 사례가 수두룩하다. 일례로 1년 전 어린이코너 '신문은 선생님' 지면도 그렇다. 6.25전쟁 당일 이 지면은 외부필자 글로 "철조망 없어지고 평화 오는 그날 꿈꿔봐요"를 실었다. 한 면을 덮은 이 기사는 65년 전 전쟁 탓에 분단국으로 남아있다는 설명을 하면서 6.25가 북한의 기습 공격이라는 점을 언급하지 않았다. 김일성 이름 없다.
그의 손자 김정은에 의한 인류 최대 폭정도 건너뛴 채 그저 평화와 화합의 소중함을 전할 뿐인데, 이런 접근은 좌파들이 단골로 하는 짓이 아니던가? 그리고 이 정도의 기사는 한경오(한겨레,경향, 오마이뉴스)에 실려도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 신문의 정신줄 놓은 지면제작은 북한 퍼주기 캠페인 같은 어젠더 세팅에서 사설-기명칼럼의 난맥상은 물론이고, 일반 지면은 물론 심지어 문화사업에서도 확인된다. 그게 지난해 만해대상 수상자로 좌익의 원흉 신영복(당시 생존 중)을 뽑은 충격이었다.
위장 지식인 신영복에게 월계관을 씌워줘서 무얼 하자는 것인가? 올해 초 그가 죽었을 때 비정상적인 추모물결이 일었던 배경에도 이런 조선일보 지면이 알게 모르게 영향을 줬을 것이다. 당시 또 다른 충격은 소설가 조정래 원작의 뮤지컬 '아리랑'에 대한 후원이었다. 당시 1면에 버젓이 올린 사고(社告) 자체가 가관이었다.
천문학적 수치인 1300만 부를 팔며 이 땅의 젊은이를 오염시킨 대하소설 3부작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을 쓴 반역 소설가 조정래의 실체를 모르고 이런 걸 하는 것일까? 조정래야말로 운동권 의식화의 주범인 <전환시대의 논리>의 리영희, 종북-좌파연대의 핵심인 원탁회의를 이끌고 있는 백낙청 등과 동급의 좌익형 인간이 아니던가?
그러나 조선일보는 조정래를 "민초(民草)들의 삶과 사랑, 투쟁의 역사를 담아낸 작품"을 쓴 작가로 둔갑시켰다. 다음은 7월 16일자 1면에 등장한 사고(社告)의 앞이다. "작가 조정래의 동명 대하소설을 뮤지컬화한 '아리랑'은 일제강점기 파란의 시대를 살았던 민초(民草)들의 삶과 사랑, 투쟁의 역사를 담아낸 작품입니다. 준비 기간 3년, 제작비 50억 원을 들인 뮤지컬 '아리랑'은 '가장 한국적인 이야기로" 운운….
배우 문근영의 빨치산 외조부가 통일운동가?
그럼 조선일보가 망가지는 현상은 언제부터인가?. 노무현 정부 등장 이후다. 좌파 정부가 종이신문의 위력을 떨어뜨리려고 인터넷매체들과 다음커뮤니케이션 등 포털에 대한 지원을 개시했는데, 그게 썩 잘 먹혀들었다.
그때 좌파들이 안티조선운동을 개시하면서 종이신문에 대한 독자들의 신뢰를 끌어내리기 시작했다. 신문은 매출액도 2002~2003년을 정점으로 꺽였지만, 지면의 질적 저하도 불가피했다. 이 통에 조선일보도 흔들렸다. 대한민국이 지켜온 가치를 수호하는 것이 부담스러운 나머지 좌파에 동조 재지 투항하는 지면을 속속 등장시켰다.
11년 전 당시 국민여동생 문근영과의 인터뷰 기사가 그런 사례인데, 당시 그걸 본 적지 않는 독자들이 분노했다. 문제의 기사는 '문근영, 소녀와 숙녀 사이에 그녀가 있네'란 제목의 배우 문근영과의 인터뷰 기사였다. 2005년 4월 15일자 문화면, 문제가 된 대목은 다음과 같다.
"할아버지 돌아가시기 1주일 전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아주 어릴 적 치마 속에 바나나랑 빵을 숨겨가지고 아장아장 뛰어오던 제가 그렇게 예쁠 수가 없더라고요. 할아버지가 장기수로 수감 중이던 때였는데, 사식(私食)을 금지하던 시절이었대요. 많이 울었어요.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게 많다는 걸 배웠죠. 느끼고 생각하고 보는 게 전부가 아니었구나 하는 것."
문근영의 외할아버지 류낙진에 대한 언급인데, 그는 엄연히 지리산 빨치산 출신이다. 그리고 악질이다. 출소 뒤 교사생활을 하다가 1971년 다시 통혁당 사건에 연루돼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1994년 구국전위 사건에 다시 얽혔으니 엄연한 반(反) 대한민국 노선을 걸었다. 그런데도 기자는 연신 헛소리다.
"열흘 전 근영의 외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다른 이념 때문에 30년가량 장기수로 복역했던 통일운동가 류낙진 씨다."
문근영이 장기수라고 포장했지만, 담당 기자는 한 술 더 떠서 통일운동가로 치켜세우다니! 기자역량과 함께 그 신문의 데스크 기능이 고장났다는 증거다. 이미 당시 편집국 풍토는 바뀐 지 오래였다. 실은 조선일보엔 우파 매체라는 딱지를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가 오래 전부터 자리를 잡아왔다.
노무현의 홍위병인 좌파들이 주도한 안티조선운동이 먹혀들긴 먹혀든 셈이다. 이 통에 자기들만의 고유한 DNA를 버리고나서라도 '열린 보수' 운운하는 중앙일보의 스탠스를 은근히 따라하려는 심리다. 그거야말로 중앙일보 2중대 노릇을 하려는 바보짓이 아닐까?
조선일보 지면의 타락은 한국사회의 타락
그런 바보 노릇은 이미 바닥을 드러낸 이 땅의 시민윤리와도 일맥상통한다. 이제 누구도 대한민국 체제를 수호하려 하지 않고, 정치지도자 역시 피와 땀과 눈물을 국민들에게 요구하지 않는다. 경제의 경우도 성장을 말하는 이는 없다. 그럴싸한 평등과 분배정의, 그리고 균형발전 따위를 모두가 떠벌인다.
사회 전 부문에서 좌편향이 가속화되면서 조중동도 웰빙 지면 내지 좌파 상업주의로 돌아서 세상에 영합한다. 맞다. 한국사회의 위기란 민주화를 가장한 87년 체제 이후 지속적으로 높아져왔다. 그래서 조선일보를 포함한 조중동의 배신이 더욱 참담하다. 그게 진실이다. 재확인하지만 저들이 속물적 리버럴리즘에 오염된 것은 30년 전부터 깊숙이 진행돼왔다는 증거로 더 이상 생생한 게 또 있을까?
중앙일보야 2등 신문이기 때문에 무게감이 또 다르다. 반면 조선일보의 타락은, 조선일보의 선동언론화와 질적 변질은 한국사회를 버텨오던 공공재(公共材)의 훼손 혹은 손실을 의미한다. 그들이 돌이킬 수 없는 국면에 진입하기 전에 경고를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지난 몇 년 국정원 댓글 사건, 세월호 문제와 문창극 총리 후보자 논란 그리고 무상복지 논쟁이 무얼 보여줬던가? 이런 걸로 어지러운 사회에서 대한민국 선진화란 목표와 한반도 평화라고 하는 진짜 이슈가 제대로 부각되지 않는다. 이걸 가능하게 만드는 힘인 자유민주체제와 시장경제에 대한 확신이 위협 받는다.
이런 위기 국면에서 이젠 우파가 안티조선운동에 나서야 한다고 울분을 토하는 상황은 실로 우려스러운 국면이 아닐 수 없다. 다행스럽게도 조선일보의 추락은 아직은 진행형이다. 더 나빠질 수도 있다는 뜻이기도 하고, 반전의 계기를 찾아 개선될 여지가 있다는 관측이기도 하다. 당신들의 각성을 기대한다. /조우석 주필
[조우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