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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귀단장 고전특강(129)-키케로의 선거전략과 국가경영론

2016-08-12 08:24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현대는 지식이 넘치는 사회이지만, 역설적으로 가치관의 혼돈을 겪고 있는 ‘지혜의 가뭄’ 시대이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가 복잡화 전문화될수록 시공을 초월한 보편타당한 지혜가 더욱 절실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고전에는 역사에 명멸했던 위대한 지성들의 삶의 애환과 번민, 오류와 진보, 철학적 사유가 고스란히 녹아있습니다. 고전은 세상을 보는 우리의 시각을 더 넓고 깊게 만들어 사회의 갈등을 치유하고, 지혜의 가뭄을 해소하여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와 ‘미디어펜’은 고전 읽는 문화시민이 넘치는 품격 있는 사회를 만드는 밀알이 될 <행복한 고전읽기>를 연재하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박경귀의 행복한 고전읽기(129) 유권자의 마음을 사는 비결
키케로(기원전 106~43) 『후대 경세가들에게 보내는 로마인의 편지』

박경귀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

이 책은 기원전 1세기 중엽 로마 정계의 주요 인사이던 마르쿠스 키케로 형제의 정치철학을 살필 수 있는 서간문이다. 키케로가 자신의 동생 퀸투스 키케로와 주고받은 충고와 조언이 편지 형식으로 담긴 짧은 분량이다. 로마의 최고관직인 집정관에 출마하는 키케로에 대해 동생이 훈수(?)두는 선거 전략과 아시아 속주의 총독인 동생에게 키케로가 당부하는 편지 2편이 실렸다. 두 편의 편지는 키케로 형제의 각기 다른 성격과 특장, 우애를 엿볼 수 있게 하면서, 당시 로마의 정치상황과 공직 선거 풍토, 그리고 속주와 로마 중앙 정계의 관계를 이해하게 해준다. 

역자는 퀸투스가 형 마르쿠스에게 보내는 편지는 '키케로의 선거전략', 마르쿠스가 동생 퀸투스에게 보내는 편지는 '키케로의 국가경영론'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두 편 모두 짧은 글이지만, 당시의 로마의 정치 상황에 대한 키케로 형제의 내밀한 현실 인식과 지향 가치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사료다. 퀸투스가 제시하는 선거전략은 상당히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다. 그래서인지 퀸투스가 이처럼 치밀한 선거 전략을 구사할 만큼 정치적 감각과 경험이 충분했을까 혹자가 의문을 제기하기도 하지만, 그의 저작이 아니란 명확한 근거는 없다.  

퀸투스는 형 마르쿠스의 자질을 높이 사면서도 냉혹한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자질보다 기교에 의지하는 편이 좋다며, 구체적인 선거의 스킬을 제시한다. 조언의 내용이 상당히 현장중심적이다. 지지 기반을 다기기 위해 영향력 있는 개개인과 직능단체, 마르쿠스에게 웅변을 배우는 청년 문하생, 주변의 지지자 등 인적 자산을 최대한 활용하고, 이런 폭넓은 지지를 주변에 과시하며, 연설할 때 지지자들의 호위를 받아 위엄을 뽐내라고 조언한다. 지지자들을 몰고 다니며 선거 흥행몰이에 골몰하는 현대의 선거 풍경이 오버랩된다. 

또한 어떻게 로마시민들에게 호감을 얻고 지지로 연결시킬 것인지에 대해서도 각 유권자의 심리와 기대를 살피고 이에 부응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모든 시민들에게 열린 마음과 표정, 태도를 갖추어야 하며, 친절한 대응과 시민을 대변하는 자세야말로 민심의 우호적 향방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한다. 현대 선거 운동의 핵심적 전략들로도 손색이 없는 주문이다. 

하지만 선거에 이기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전력투구해야 한다고 조언하면서, 경쟁 후보에게 소송 제기의 가능성을 부각시키거나 그들의 회계원들을 겁주며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상대후보의 재정 후원자들을 겁박하는 방법을 조언하는 대목에서는 약간 수위가 높아진다. 하지만 당선을 위해 네거티브 공세와 협박과 공작을 마다않는 요즘의 추악한 선거 백태에 비교하면 고전적이고 순진한 수준이다.  

사실 마르쿠스 키케로가 집정관 선거에 도전한 것은 로마 정치사에 일대 사건이었다. 로마 공화정의 집정관은 비록 임기 1년에 불과했고, 원로원과 민회, 호민관 등에 의해 견제를 받는 정치구조 속에 있었지만, 군통수권을 가진 최고권력자에 틀림없었다. 유사시에는 법에 의해 독재관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런 만큼 원로원에서 일정한 세력을 확보한 귀족출신들이 집정관을 돌아가며 독점했었다. 

편지글에서도 간간히 엿보이지만, 키케로는 귀족출신이 아닌 기사계급 출신으로서 최초의 집정권 도전이었으니, 그의 도전은 현실적으로 무모한 도전일 수 있었던 것 같다. 동생 퀸투스가 형 키케로의 낮은 인지도 극복과 선호도 제고를 위해 냉정하고 치밀한 선거 전략을 제시한 까닭이 이해된다. 

물론 키케로는 뛰어난 웅변술과 최고의 변호사로 이름을 날렸지만, 정치인으로서는 완전 신인이었기 때문이다. 다행이 그의 천부적 재능과 입지전적 노력에 힘입어 재무관, 조영관, 법무관 등 행정직을 잘 수행한 경험도 보탬이 된 듯하다. 어떻든 동생이 코칭한 선거전략 덕분이었는지 키케로는 기원전 64년에 대망의 집정관에 선출되었으니 형제의 주도면밀한 노력이 결실을 거둔 셈이다. 

마르쿠스 키케로가 동생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중앙정치인으로서의 '키케로의 국가경영관'을 엿볼 수 있다. 키케로는 아시아 속주 총독으로 임기를 연장하여 재임하게 된 동생 퀸투스가 대과 없이 총독직을 완수할 수 있기를 염원하면서 소소한 유의사항까지 전달한다. 동생의 실책으로 자신의 중앙정계의 입지가 흔들릴까 염려하는 마음도 엿보이지만, 동생의 성공을 바라는 형의 진심어린 태도를 동시에 느끼게 한다.  

퀸투스는 정직하고 청렴한 총독으로 알려졌지만, 불같은 성격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 불필요한 오해와 갈등을 만들 소지를 많이 안고 있었다. 형 마르쿠스는 이러한 동생의 강점과 약점을 보완해주기 위해 중앙 정계의 경륜 있는 정치인으로서의 안목과 식견으로 현실적인 조언을 하고 있다.

또 청렴한 동생 퀸투스가 과도하게 공직자들의 치부를 들추거나 개개인의 행정을 감시하는 것은 자제하고 각자의 청렴도에 따라 신뢰도를 조정하는 것으로 만족하라고 조언한다. 당시 부정과 부패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했던 세대에 비추어 지나친 결벽이 만들어낼 역기능을 우려한 정치인 키케로의 노회한 태도를 엿보는 듯하지만, 차분히 생각해보면, 도덕성을 추구하되 현실의 상황과 조화를 이루면서 점진적 개혁을 추구한 냉철한 현실주의자의 면모로 읽힐 수 있겠다. 

또 마르쿠스는 동생의 불같은 성격이 만들어낼 예기치 않는 사고와 부적절한 처결을 염려하여 자신의 영혼이 격정과 분노에 굴복하지 않도록 매일 매일 감정과 언사를 조절하고 격정과 고통을 통제하는 마음의 훈련을 할 것을 권고한다. 철저한 감정관리를 통한 정신의 수양을 주문한 것이다. 키케로가 자신의 아들에게 보낸 『의무론』의 또 다른 한 대목을 보는 듯하다. 

아울러 키케로는 중앙과 지방총독과의 관계 정립에 대해서도 크게 신경 쓴다. 특히 로마 중앙의 세리(稅吏)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할 것을 당부한다. 당시 로마의 조세행정을 담당했던 세리들은 통행세를 부과하거나, 각종 경기대회의 재원을 속주들로부터 거두어들이면서 횡포를 부려 속주민들의 반발을 사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속주 총독들은 아예 중앙세리나 징세 청부조합과 결탁하여 함께 이익을 취하는 일이 잦았던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마르쿠스는 동생 퀸투스가 나름대로 속주민들의 민생을 파탄으로 몰아넣지 않도록 경계하고 노력하고 있는 점을 격려하면서 중앙세리와의 원만한 관계를 설정하고 관리하는 일이 매우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당시 총독들에게 속주의 통치에 상당한 자율권이 주어져있었지만, 총독의 임기 종료 후 중앙정계 복귀와 정치적 입지를 유지하기 위해 중앙 세리 및 원로원 등 중앙행정 권력 및 정치권과의 유대가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마르쿠스는 총독으로서 속주를 다스리는 일이 평생 재임하는 왕과는 달리 짧은 임기로 인해 직무 수행의 어려움이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동생 퀸투스에게 총독으로서 속주민의 영원한 평화와 안전을 제공할 책무가 있음을 상기시킨다. 또한 동시대인들의 의견과 판결에만 신경 쓰지 말고 가문의 영광과 후세의 평가를 생각하며 사심 없이 총독직무에 정진하라고 독려했다. 오늘날의 사회지도층이나 고위 공직자의 책무와 도리를 일깨우는 교훈처럼 느껴진다.

대중을 의식하지 않고 쓴 격식을 갖추지 않은 서간문들은 당대의 사회상이나 필자들의 솔직하고 담백한 내면을 그대로 드러내는 경우가 많다. 이 책에 나온 키케로 형제의 편지 역시 정치인으로서의 야망을 숨기지 않지만, 한 개인의 소박한 욕망과 혈육 간의 우애를 여과 없이 드러내 인간적 면모를 살필 수 있게 한다.   /박경귀 대통령소속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

☞ 추천도서: 『후대 경세가들에게 보내는 로마인의 편지』, 키케로 지음, 이영훈 옮김, 굿인포메이션(2002), 140쪽.


[박경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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