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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은 건국절…광복군 노병이 틀린 이유

2016-08-13 09:20 | 김규태 차장 | suslater53@gmail.com

김규태 재산권센터 연구위원

광복절은 건국절…광복군 노병이 틀린 이유

건국절 주장은 헌법에 위배되고, 실증적 사실과도 부합되지 않고, 역사 왜곡이자 역사의 단절을 초래할 뿐이다?

12일 청와대 독립유공자 초청 오찬에 참석, 박근혜 대통령 앞에서 오찬 행사 모두발언을 한 김영관 전 광복군동지회장(92)의 말이다.

1940년대 학병으로 일본군에 징집 후 탈출한 뒤 광복군에 합류, 중국 장시성 전선에서 활약했던 김영관 회장은 “왜 우리 스스로가 역사를 왜곡하면서까지 독립투쟁을 과소평가하고, 국난 시 나라를 되찾고자 투쟁한 임시정부의 역사적 의의를 외면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이같이 밝혔다.

광복절은 건국절의 일환으로 기념된 날이다. 1948년 8월 15일, 건국대통령이자 초대대통령이던 우남 이승만은 이를 명확히 하기도 했다. 기왕에 정부수립과 건국을 선포하는 날을 일제로부터의 해방일인 8월 15일로 삼고, 이를 광복절이라 명명한 것이다.

광복군 노병인 김영관 회장께 말씀드린다. 실증적 사실을 따진다면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대한민국 헌법 전문은 선언적 서술에 불과하다. 1919년 당시 국가의 3요소인 주권과 국민, 영토 중 최소 주권과 영토는 존재하지 않았다. 게다가 임시정부 요인들은 자신들이 건국했다고 명시한 적이 없다. 임시정부가 남긴 각종 문헌자료에서 김구를 포함한 모든 임시정부 요인들은 ‘우리는 앞으로 건국을 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1945년 8월 일본 천황의 전면적인 항복과 미군의 승전으로 한반도라는 영토가 부여됐고 1948년 8월 15일이 되어서야 주권이 형성됐다./사진=연합뉴스



광복군은 1945년 한반도의 해방에 실질적으로 기여한 바가 없다. 광복군 무장투쟁으로 한반도에서 일제가 물러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99%는 미군의 승전보와 희생 때문이다. 1941년 12월 진주만을 기습 침공하여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일본군을 각지에서 깨뜨리고 급기야는 일본 본토로 몰아넣은 미군 덕분이다.

광복절을 건국절이라 칭하는 것은 역사 왜곡이 아니다. 독립투쟁에 대한 과소평가가 아니라 실질적인 영향력에 대한 당연한 평가다. 1945년 8월 15일, 정확히는 한반도가 해방되었다기 보다는 히로히토 천황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한 날이다. 항복의 대상은 미국이다.

미군 10만 6207명 전사. 24만 8316명 부상 및 실종. 중화민국 280만 명 사상. 소련 1만 2031명 전사 및 실종. 2만 4425명 부상. 호주 1만 7501명 전사. 영국 8만 6838명 전사. 히로히토의 항복은 태평양 전쟁에 가담한 미군 및 연합군의 피 값이다. 광복군 때문이 아니다. 사실 및 인과관계를 명확히 하자.

1945년 당시 한반도에 진주하던 일본군 수만 명이 국내에 진공하려던 광복군 77명에 지레 겁을 먹어서가 아니다. 과거 독립활동가들의 무장투쟁이 효과를 발휘해서가 아니다. 소련군에 의해 독립군 대다수가 몰살당한 1921년 ‘자유시 참변’ 이후 무장독립활동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1930년대부터 근근이 이어졌던 조선인들의 무장투쟁은 공산주의에 경도된 친소․친중 무장집단이었거나 항일을 빙자한 마적 떼에 불과했다.

1945년 미군정 이후 3년간의 건국 과정을 거쳐 1948년 정식으로 우남 이승만이 정부수립과 건국을 선포하게 된다. 대한민국의 시작이다.



1945년 당시 패배에 직면한 일본은 일본 본토에서 죽음으로 옥쇄하겠다고 항거했다. 이에 트루먼 미국 대통령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일본 본토의 군사요지에 원자탄을 두 방 투하했다. 1945년 8월 15일 전면적인 항복은 그렇게 결정됐다.

1945년 8월 일제의 항복 이후 바로 해방된 것도 아니었다. 일본 치하의 한반도는 여전했다. 소련과 미군이 들어와 인수인계를 받은 10월부터 한반도는 남과 북으로 찢어져 미군정과 소련군정으로 전환됐다. 이후 3년간의 건국 과정을 거쳐 1948년 정식으로 우남 이승만이 정부수립과 건국을 선포하게 된 것이다. 1945년 미군의 승전으로 한반도라는 영토가 부여됐고 1948년 8월이 되어서야 주권이 형성됐다. 대한민국의 시작, 건국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김규태 재산권센터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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