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지호 기자] 대우조선해양 대규모 분식회계 사태를 계기로 외부감사인인 회계법인이 보다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면서 기업들이 울상을 짓고 있다.
1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대우조선해양은 올 2분기에 연결 기준으로 매출 3조3880억원, 영업손실 4236억원, 당기순손실 1조2209억원을 기록했다고 16일 밝혔다. 1분기 263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면서 흑자전환의 기대를 키우던 것에 비하면 충격적으로 불어난 손실 규모다. 회사 측은 회계법인의 보수적인 감사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는 “자신들도 분식회계 논란을 피해가기 위해서인지 회계법인의 잣대가 과거에 비해 심하게 엄격해졌다”며 “안줘도 되는 지체보상금을 줘야한다며 손실로 처리했고, 프로젝트 도중 발주처가 계약을 변경하는 ‘체인지 오더’ 등을 모두 손실로 잡았다”고 토로했다.
이어 “삼일회계법인이 지정감사인이라 올해만 하고 떠나기 때문에 더욱더 엄격하게 회계감사를 한 것 같다”며 “과거처럼 감사했으면 2분기에도 1분기와 비슷한 수준의 영업손실을 기록했을 것”이라고 볼멘소리를 냈다.
대우조선해양의 회계조작 여파에 다른 기업에 대한 회계법인의 보수적인 감사 태도가 확산되고 있다. 당장 사태의 장본인인 대우조선해양은 완전자본잠식 상태에 빠지면서 상장폐지 위기에 몰렸다. 삼일회계법인이 이연법인세를 자산으로 잡지 않고 모조리 손실로 처리하면서 8500억원의 순손실이 반영됐기 때문이다.
한진중공업 역시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이 2007~2009년 영도조선소가 정상적으로 조업할 당시의 생산량을 기준으로 예산을 편성했다며 영도조선소의 예정원가를 재조정하고 채권 회수 가능성을 낮게 평가하자 1906억원의 추가 순손실이 발생했다. 한진중공업은 과거 대우조선해양 때와 같이 재무제표를 재작성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엔가이드에 따르면 전일까지 2분기 실적을 발표한 주요기업 255개 중 컨센세스(시장 전망치 평균)보다 실제 실적이 높게 나온 종목은 116개에 불과했다. 절반이 넘는 기업은 컨센서스보다도 낮은 2분기 실적을 올렸다. 보수적 회계 감사로 인해 그만큼 기업의 실적이 예상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회계기준은 과거나 지금이나 똑같지만 회계법인의 판단에 따라 손실이 될 수도 있고 이익으로 잡힐 수도 있어 보수적 회계처리로 인한 기업들의 회계법인에 대한 불만은 불가피할 것으로 판단된다.
삼일회계법인 관계자는 “예전에 비해 보수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맞다”며 “여러 가지 시나리오 중 비관적인 시나리오를 고려해서 회계 감사를 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박동흠 현대회계법인 이사는 “회계 감사를 보수적으로 한다고 해서 실적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매수 채권을 못 받을 것으로 판단해서 손실로 처리하는 등 기업과 회계법인과의 의견 다툼은 언제나 있었던 것”이라며 “예전만큼 기업의 말을 들어주기 어려워진 것은 사실”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한 회계업계 관계자는 “이전에 비해 기업에 대해 이익에 대한 증빙을 더욱 엄격하게 요구하는 등 감사절차가 예전에 비해 빡빡해졌다”고 말했다.
안 그래도 엄격해진 회계 처리에 올초 홍콩H지수 폭락 사태로 인한 대규모 주가연계증권(ELS) 손실 우려까지 겹치자 자체적으로 엄격한 회계 처리를 하면서 증권사들은 이중고를 겪고 있다. 업계 5위의 현대증권은 돌연 지난 2분기 56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적자전환했고 한화투자증권은 1000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KB금융지주는 기존 현대증권이 보유 중인 현대그룹 계열 주식·채권과 기타자산에 대해 강한 잣대를 들이댄 것으로 전해진다. 한화투자증권은 ELS로 인한 손실이 문제가 되자 2분기부터 아예 평가기준을 보수적으로 변경했다. 현대증권도 ELS 평가방식을 바꾸면서 350억원의 ELS 평가손실이 발생했다.
금융위원회는 전일 회계제도 개혁 특별팀(TF)을 구성해 첫 회의를 열었다. 오는 11월 특단의 '회계제도 개혁안'을 내놓기로 하는 등 회계법인에 대한 압박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공인회계사회 관계자는 “대우조선해양 사태가 계기가 됐지만 그간 잠재됐던 회계부실 요소를 더욱 줄이자는 정부와 업계의 의지가 변영된 결과”라고 강조했다.
[미디어펜=김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