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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자', 산을 들어 옮기는 우직함 속의 미학을 말하다

2016-09-11 08:03 | 정재영 기자 | pakes1150@hanmail.net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미디어펜=정재영 기자]많은 사람들을 위해 헌신한 사람들의 공적은 분명히 평가받을만한 가치가 있다. 특히 장인정신을 깃들여 만들어낸 역사 속 선구자들의 유물은 현대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조선시대 말까지 한반도는 매번 그저 발길이 닿는 곳이 곧 지도가 되는 미지의 세계였다. '한 치 앞만 알 수 있는' 정도의 지식으로는 어둠 속을 걷는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분명 삼국시대에도, 고려시대에도 또한 김정호가 태어나기 전인 조선시대에도 지도라는 것은 존재했지만 그것은 극히 소수의 전유물이었다.

'고산자, 대동여지도(감독 강우석, 이하 고산자)에서는 그러한 이유로 산행에서 목숨을 잃은 아버지에 대한 추도로 대동여지도를 제작하는 김정호(차승원 분)의 삶이 그려진다. 심리적 외상이 예술로 승화되는 예로는 이 땅에 존재하는 대다수의 작품들처럼 대동여지도 역시 같은 맥락으로 보자면, 일종의 예술 분야에 포함될 수 있다.

'고산자'의 출발은 치유를 갈구하는 김정호의 심적 상태에서 비롯됐다. '몰두'는 치유의 지름길임을 깨닫게 된 탓인지 김정호는 하나뿐인 딸 순실(남지현 분)이 열여섯 나이가 되는지도 잊은 채, 지도에 미친 사람이라는 손가락질에도 아랑곳 않고 일생을 '진짜 지도' 만들기에 바친다. 

우직한 신념으로 전국 팔도를 누빈 기나긴 여정은 어느덧 김정호를 장인(匠人)으로 만들었고, 대동여지도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유산이 됐다. 오늘날 지리학적인 관점에서도 보더라도 대동여지도는 그 우수성을 인정받는다. 오직 지도에 대한 일념으로 평생을 바친 장인의 유물답다.

묵묵하게 일생을 한 우물만 판 김정호처럼 영화 '행복한 사전(감독 이시이 유야, 2013') 속 마지메 미츠야(마츠다 류헤이 분) 또한 우직하게 자신의 길을 걷는 장인의 면모를 보여준다.

세상과 단절된 듯한 마지메는 출판사 영업부에서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다가 얼떨결에 사전편집부에 합류한 후 '대도해(大度海)'라는 새로운 사전을 출판하는 과정에서 단어들을 수집하며 사람들과 차츰 언어로 소통하는 즐거움을 배워나간다. 

청년에서 중년으로 넘어가는 1995년에서 2009년까지의 세월동안 마지메는 이름의 뜻처럼 ‘성실하게’ 꼬박 사전을 채워나간다. 1990년대 끝자락, 개인 컴퓨터의 상용화 시대가 도래하지만 오로지 수작업으로 총 3000만개의 단어가 담긴 종이사전을 완성시키는 모습은 고집스러움 그 자체다.

다소 느리고 미련해 보일지라도 흔들림 없는 신념으로 자신의 방식을 고수하는 과정 자체가 또 하나의 미학으로 비춰질만큼 숭고하기까지 하다. 중국 고사성어 중 우공이산이라는 말처럼 우직하게 자신의 길을 걷는 사람들에 대한 찬사를 보내고 싶을 정도다.

오래 거치는 것은 오래 머물기 마련이다. 생각에 생각을 더하니 한 손이라도 더 닿아 알차게 완성되는 것이다. '장인정신'이 굳이 '그들'만의 것일 필요는 없는 것이다.

[미디어펜=정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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