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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입에서 전쟁 발언이 떨어진 지금…

2016-09-13 11:55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조우석 주필

드디어 대통령의 입에서 전쟁이란 말이 떨어졌다. 박근혜 대통령은 12일 여야(與野) 3당 대표 회동의 모두 발언에서 "한반도에 전쟁 위험이 올 수도…"라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 지금이야말로 그 메시지를 국민들에게 전해야 한다는 인식 아래 무겁게 입을 연 순간이었다.

여야 지도자와의 대화 루트를 선택해 '전쟁 메시지'를 전한 방식도 현명했다. 대국민 발표 형식의 직접 전달은 평화의 신기루에 취해 사는 한국적 상황에서 충격과 혼란이 예상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물어보자. 대통령이 어떤 자리인가? 국가의 독립, 영토의 보존, 국가의 계속성을 수호하는 헌법기관이 아니던가? 동시에 군 통수권자다.

당연히 대통령의 발언은 지금 당장 한반도 상황에 비춰 최우선적 명제로 받아들여야 하고, 정치사회적 조치와 함께 여론이 따라줘야 옳다. 유감이지만 상황이 꼭 그렇진 않다. 전쟁 발언을 애써 밀쳐놓거나 외면하려는 듯한 분위기가 여기저기에서 감지되는데 그게 한국사회의 한계다.

군 통수권자의 지엄한 한마디

기왕에 몸에 젖은 평화 무드대로 살겠다는 관성(慣性)인데, 다음 날짜 일간지들의 편집이 그러하고, 사람들도 그쪽에 영합한다. 신문의 경우 3당 대표 발언만 해도 시시콜콜한 대화와 기싸움을 부각시키면서도 그날 핵심 중의 핵심이었던 전쟁 발언의 의미와 무게는 슬쩍 피해가거나, 부각시키지 않았다.

박 대통령이 13일 국무회의에서 "북한이 우리영토를 향해 핵 탑재 미사일을 한 발이라도 발사하면 그 순간 북한 정권을 끝장내겠다는 각오"를 당부하며 연이틀 최강도의 발언을 이어갔던 것도 이런 사정을 두루 감안한 것이다. 최고지도자의 결기를 재확인한 것이다.

맞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감행된 북한의 5차 핵실험은 한국 정치 리더십과 한국인의 위기대응 능력을 함께 시험하고 있는 중이다. 12일 박 대통령의 전쟁 발언을 다시 복기해보자. 그날 여야 지도자들과 인사를 나눈 뒤 대통령은 모두 발언에서 "지금 우리는 과거와는 다른 매우 엄중한 안보 상황에 처해 있다"고 진단했다.

"한반도에 전쟁의 위험이 올 수도 있고 각종 테러, 국지 도발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는 언급도 했다. 이미 박 대통령은 현 상황을 준(準)비상사태라고 규정한 바 있지 않던가? 그게 맞다. 필자인 나는 지금을 죽느냐 사느냐, 한반도가 문명세계에 남느냐 반(反)문명의 퇴보로 전락하느냐를 가르는 대승부의 순간이라고 본다.

박근혜 대통령이 12일 오후 청와대에서 북한의 5차 핵실험에 따른 한반도 위기 상황과 관련한 해법을 모색기위해 여·야 3당대표와 회동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사회 전반에도 전에 없던 강경 여론이 형성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사드 배치 관련 소모적 논쟁을 접고 독자 핵 개발은 물론 북한 SLBM에 대응할 핵수잠함도 도입하자는 쪽이다. 이지스함용 고고도 요격미사일과 함께 평양 선제타격도 힘을 받고 있다.

이런 흐름에서 그동안 흐트러졌던 체제수호 의지가 되살아나길 바랄 뿐인데, 주어진 시간은 1년 내외다. 북한의 핵-미사일 실전배치 최종완료의 시간표가 딱 그때까지다. 이런 초미의 상황인데도 더민주의 추미애 대표가 대북 특사를 파견하자고 제안한 건 13일자 중앙일보 사설의 지적처럼 "동화적 현실인식"에 가까웠다.

국민의당 박지원 대표도 오십보백보였다. 그는 사드 도입 반대 입장을 무슨 자랑이라도 되는 듯 밝혔으니 헛웃음이 나올 판이다. 조금은 정신 차린 듯한 조선일보 지적처럼 아무래도 "야권은 햇볕정책을 버릴 경우 호남표를 잃는다는 도식에 빠져있다."(13일자 사설 "야, 지금도 사드 반대, 일말의 북핵 책임도 안 느끼나?")

어렵사리 만들어진 자리에서 당파적 입장만 앵무새처럼 외우는 모습은 우스꽝스럽기조차 하다. 그게 바로 정치인 추미애의 한계, 박지원의 근성 문제가 아닐까? 하지만 동시에 몹쓸, 치명적인 평화 지상주의 내지 이적성(利敵性) 사회풍토란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

최근 접했던 단행본 <우리도 핵을 갖자>(기파랑 펴냄)에서 송대성 전 세종연구소장이 그 대목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북한 핵의 위험성을 심각하게 거론하거나, 한국이 핵을 보유하여야만 한다는 주장을 하면, 평화교란자, 극우보수, 반통일분자, 안보지상주의자 등 부정적 인물로 낙인찍는다. 그게 핵개발 혹은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 핵 보유 주장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이적성 문화다."(191쪽)

박근혜 대통령이 12일 오후 청와대에서 북한의 5차 핵실험에 따른 한반도 위기 상황과 관련해 여·야 3당대표에게 안보 위기 상황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총와대 홈페이지


치명적인 이적성(利敵性) 사회풍토가 문제

100퍼센트 맞는 말인데, 이 이적성 풍토를 전면 걷어낸다는 각성 없이는 앞서의 흐름이 어느 날 거품처럼 사그러들 수도 있다. 안보의 근본정신은 자립에 토대를 둔 사생결단의 정신인데, 중국에 의견을 물어보고 동의를 구하며 누이 좋고 매부 좋게 할 순 없는 노릇이 아닌가?

지금 상황은 그럴 때가 아니다. 여전히 몽롱한 평화주의의 늪에서 허우적댈 것인가, 핵과 미사일을 쥔 반(反)문명의 전체주의 집단인 평양에 대응해 건곤일척의 승부수를 낼 것인가가 갈라지는 엄중한 순간이다. 그 점에서 박 대통령의 12일 전쟁 발언은 정치사에서 중차대한 의미가 있다.

지난 수 십 년 '안보장사'라는 말을 듣기 싫어 정치현장과 담론의 세계에서 사라졌던 발언인데, 지금 상황은 예전과 천양지차다. 오죽했으면 군 통수권자가 그런 말을 했을까를 염두에 둬야 옳다. 기회에 국제정치학자 이춘근 박사의 말도 되새겨봐야 옳다. 

"평화는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 역설이지만 전쟁을 결단할 수 있는 나라만이 그걸 향유할 수 있다. 대한민국은 전쟁을 결단할 수 있는 각오가 되어있는 나라인가? 그렇지 못한 나라는 엄밀한 의미에서 국가라고 말할 수 없다. 한동안 대한민국은 무력행사에 관해 정상적인 나라처럼 행동하지 못했다."(<격동하는 동북아, 한국의 책략> 21쪽 발췌)

지구촌에서 한국처럼 국제정치에 의해 국가의 운명이 좌우되었던 국가는 폴란드 외에는 없다. 그런 한국민은 너무 오래 힘든 세월을 살았기 때문에 감각이 무뎌졌다. 그걸 되살릴 때가 지금인데, 그런 점에서 박 대통령의 전쟁 메시지는 타이밍이 좋았고, 넓고 큰 파장을 기대한다. 그게 우리가 사는 거의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조우석 주필

[조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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