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명 미디어그룹 '내일' 대표·미디어워치 온라인편집장
차기 대선의 최대 이슈는 누가 뭐래도 안보이슈다. 언제는 안 그랬겠냐만 내년이 더 특별한 이유는 한반도 안보 상황이 예전과 전혀 달라졌기 때문이다. 북한은 올해에만 현재까지 두 차례 핵실험을 더 했고 핵탄두 소형화 경량화에 성공했다. 조만간 핵미사일 실전배치가 현실화될 것이다.
추석 직전 MBC가 실시한 긴급여론조사에서 국민 10명 중 8명이 북핵이 위협적이라고 답하고 자체 핵무장에 찬성한다는 의견도 10명 중 약 7명 가까이 된다는 사실은 막연하던 북핵을 이제 체감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말해준다. 몇 달 뒤에 있을 미국 대선 결과도 큰 변수가 될 수 있다.
미국 언론이 일방적으로 때리는데도 트럼프 현상이 식지 않고 있다. 아직 단정은 어렵지만 현재 돌아가는 분위기를 보면 이메일 스캔들에다 건강 문제까지 겹친 힐러리가 매우 불리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만일 트럼프가 당선된다면 북핵과 사드 주한미군 철수까지 한반도 운명을 결정짓는 중대한 선택들을 해야 할지 모른다.
한국 언론이 트럼프를 똘끼 가득한 문제아처럼 왜곡해 묘사하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트럼프는 지극히 냉정한 사업가 출신이다. 오락가락한 행보 속에서도 일관되게 말하고 있는 것이 한미FTA 재협상과 방위비 분담금 인상이다. 지금 미국 의회를 방문한 정세균 국회의장과 여야 원내대표들은 트럼프의 주장이 순전히 대선 캠페인 용도일 뿐이라고 미 의회가 안심하라 전했다고 그 말을 믿는 모양인데 순진한 생각이다.
'문제아' 트럼프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 힐러리든 트럼프든 차기 미국 대통령이 누가 되든 북핵과 사드 주한미군 철수 핵무장 등등은 더 이상 우리가 선택을 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한가하게 평화타령에 빠져 있는 대권주자를 비롯한 정치인들의 위험한 현실 인식이 우려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사진=도널드 트럼프 트위터
트럼프가 자국민들에게 약속한 미국 우선주의는 심심해서 나온 게 아니다. 미국의 오랜 자유무역과 대외정책으로 인해 미국민 자신들이 가장 큰 손해를 보고 있다는 찌든 피해의식이 트럼프 지지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 당선은 곧 미 정책의 대변화를 의미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자국민들의 강력한 변화 요구를 미 의회가 거부하고 과거처럼 언제까지나 손해를 보면서 한국에 양보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망상 아닌가.
북핵 몽상가와 관념론자들이 우리의 비극
장사꾼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는 우리에겐 안보비용 증가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트럼프의 미국은 우리에게 더 많은, 더 고가의 청구서를 내밀 것이다. 우리는 그 청구서들을 가지고 심각한 국론분열을 겪을 수도 있다. 트럼프는 또 오바마의 대북정책을 비난하면서 공개적으로 미국의 대북정책 변화를 말하고 있다. 트럼프가 김정은 제거에 나설 수도 있다는 얘기다.
과거 북핵 위기 속에서 북한에 철저하게 속고 당했던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CIA 국장을 지낸 제임스 울시가 트럼프의 외교안보고문단 일원으로 활동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만일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다면 과거의 착오를 되풀이할까. 글쎄다.
마이크 멀린 전 미 합참의장이 최근에 미 외교협회(CFR)가 '북한 핵도발과 중국의 역할'을 주제로 진행한 토론회에서 "만약 북한이 미국을 공격할 수 있는 능력에 아주 근접하고 미국을 위협한다면 자위적 측면에서 북한을 선제타격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힌 부분도 흘려듣기 어렵다. 미국은 한반도에서 결코 전쟁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누가 확신할 수 있나.
만일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그것이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행운이 될지 불운이 될지 현재로선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생존을 위해 어떤 중대한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된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미국의 선택이 무엇이든 북핵과 사드 주한미군 철수 핵무장 등등은 더 이상 우리가 선택을 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선택할 때마다 국론은 두 쪽이 날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전쟁이냐 평화냐로 노예의 길을 강요당할 수도 있다.
이런 중차대한 시기에 이 나라 정치지도자들이 모두 뜬구름 위에 앉아 있다. 대권주자라는 사람들이 한가한 모병제 타령에 무대책 사드 반대나 외치고 있다. 북한이 사실상 핵무기 실전배치만 남겨뒀는데 맞지도 않는 비핵화 전략 평화타령이나 하고 있다.
국민들은 이제 북핵을 우리의 실존 문제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우리의 운명을 이끌 중요한 선택과 결정을 내려할 국가의 리더들은 여전히 낭만적인 몽상가들과 관념자들이 태반이다. 이런 이 나라의 현실이야말로 우리가 마주한 진짜 비극이다. /박한명 미디어그룹 '내일' 대표·미디어워치 온라인편집장
[박한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