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증 대상이 아닌 신앙으로서의 ‘경제민주화’: 아메바식 경제민주화 개념
인식론에 의하면 불확실하게 알거나, 의심하면서 알고 있다면 이는 아는 것이 아니다. 즉 주관적으로 확실한 것은 지식이 될 수 없다. 신학(theology)과 신앙(faith)의 차이가 이를 웅변하고 있다. 신학은 객관적이어야 함으로 논증이 필요하지만 신앙은 주관적이기 때문에 고백함으로써 끝난다.
우리나라에서 경제민주화는 정치용어로서, ‘과학적 지식’의 대상이었던 적이 없었다. 일종의 신앙으로, 논증 없는 확신과 고집만이 전부였다. 경제학자도 모르는 경제민주화가 열병처럼 우리 사회를 풍미했던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2010년 공정사회론 대두 이후 18대 대선, 19대 총선에서 경제민주화는 봇물을 이루었다. 하지만 그동안 잠잠하던 경제민주화가 20대 국회 들어 ‘여소야대’가 되고 대선이 1년 앞으로 다가오면서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다. 심히 우려스럽다.
경제민주화는 더 이상 믿음 내지 확신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과학적 지식’의 대상으로 끌어올려져야 한다. 경제민주화 개념이 독일에서 유래된 것이라면 ‘노동자의 경영참여’ 내지 노사정(勞使政) 합의에 기초한 ‘협조적 행위’(concerted action)로 해석되어져야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경제의 민주화’에 대한 해석은 이와 사뭇 다르다.
스스로를 경제민주화 전도사로 칭하는 김종인 의원에 따르면 경제민주화는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경제력이라는 것이 자연적으로 보이지 않게 사회, 문화 전반적으로 넓어져 경제세력을 정치세력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까지 간다.... 경제 세력 내부의 의사결정 과정을 민주화할 수밖에 없다. 지나치게 경제력이 강해지는 상황에서 그것을 시정할 수 있는 방안으로 경제의 효율을 상하지 않는 방향에서 경제의 민주화라는 표현을 넣은 것이다.”1)
그가 범하는 사고의 오류는 “경제 권력이 비대해져 정치세력이 경제 권력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는 참여정부의 경제관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경제 권력이 무엇인가? 기업은 소비자와 투자자의 신뢰를 얻지 못하면 ‘계속기업’(going concern)이 될 수 없다. 즉 소비자가 물건을 사주어야 생산비를 회수할 수 있고, 투자자가 회사채 또는 주식을 사 주어야 자본을 조달해 공장을 세울 수 있다. 따라서 경제 권력은 ‘기업 경쟁력’의 다른 표현이다.
하지만 경제 권력은 경쟁을 통해 스스로를 견제한다. 과거 초일류 기업이었던 노키아, 코닥, 소니 등이 몰락했다. 이는 기업 경쟁력, 즉 경제권력이 ‘상수(常數)’가 아님을 보여준 것이다. <그림-1>은 2000년에 대비한 2012년의 삼성, 소니, 노키아의 시가총액을 비교한 것이다. 삼성의 부상과 노키아, 소니의 몰락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 가? 경제는 정치인이 재단할 만큼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다. 심지어 김종인은 경제권력이 정치권력을 압도한다고 한다. 정치권력에 의해 기업이 부침을 겪지만 기업이 정권을 부침시키는 것은 아니다. 김종인의 문제의식은 편향적 이다.
그림-1. 삼성전자, 소니, 노카아의 시가총액 추이. 출처: 대기업정책의 쟁점과 바람직한 방향, 2012. 2. 황인학 발제에서 재인용
그가 말하는 경제민주화는 “재벌을 규제하자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과거 참여정부 시절 ‘민(民)에 의한 자본통제“와 궤를 같이 하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경제민주화의 구체적 방법론인 “경제권력 내부의 의사결정을 민주화”하자는 주장은 논리적으로 틀린 말이다. 경제권력 내부의 의사결정을 민주화할 수 있는 유일한 경로는 ’1주1표가 아닌 1인1표‘의 협동조합을 만드는 것이다. ’모든 기업을 협동조합화‘하는 것이 김종인이 말하는 경제민주화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말을 한 셈이다. 정치인은 기업을 장악하고 싶을 뿐이다.
이제 경제민주화는 달리 해석돼야 한다. “경제권력 내부의 의사결정을 민주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받아들이면, 이는 “경제의 의사결정 권한을 경제조직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는 당위를 표시한 것이다. 달리 표현하면 ‘관주도에서 민간주도’로의 경제운영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다.
‘87체제’를 계기로 군사정부(전두환 정부)에서 민간정부로의 전환을 꾀했기 때문에, 경제민주화는 “경제운영을 국가가 아닌 민간 주도로 바꿔야 한다”는 선언을 나타낸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가장 논리적이다. 그렇다면 “정부로부터 민간에게로 경제주권이 이양되는”의미에서의 경제민주화인 것이다.2) 하지만 김종인은 이를 받아들일 것 같지는 않다. 그의 경제민주화론에는 논리가 없기 때문이다.
‘경제민주화’란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3) 뜻도 모르면서 용어를 남발하다 보니, 혼란만 가중된 것이다. 그동안 골목상권 몰락, 남품단가 후려치기가 ‘경제민주화’로 포장됐다. 하지만 골목상권이 “경제권력 내부의 의사결정을 민주화”하는 경제민주화와 무슨 상관이 있겠는 가? 그동안 정치권은 대중들이 반길만한 요소가 있으면 무조건 경제민주화라는 ‘정책카트’에 정책의제를 담아왔다. 후진적 정치행태는 개선돼야 한다.
김종인 류의 경제민주화법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대선이 1년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19대 국회의 행태가 이를 웅변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대한민국 경제질서 관련 헌법 조항
모호한 개념의 경제민주화에 함몰될 것이 아니라, 재산권과 경제 질서를 규정한 헌법조문의 해석에 천착할 필요가 있다. 핵심적인 헌법조문은 23조, 126조, 37조, 119조이다.
O 헌법 23조, ① 모든 국민의 재산권은 보장된다. 그 내용과 한계는 법률로 정한다.
O 헌법 제126조, 국방상 또는 국민경제상 긴절한 필요로 인하여 법률이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영기업을 국유 또는 공유로 이전하거나 그 경영을 통제 또는 관리 할 수 없다.
O 헌법 제37조, ②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
O 헌법 제 119조, ①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 ②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헌법 제 126조는 보충성의 원칙을4), 헌법 제 37조는 과잉금지원칙을, 헌법 제 119조 1항은 ‘경제의 기본질서’를, 2항은 ‘규제와 조정’을 의미한다.
헌법 조문 해석상의 가장 큰 쟁점은 제 119조이다. 제119조 제1항과 제2항이 ‘원칙과 예외’가 아닌 대등한 ‘병존관계’라는 것이다. 1항이 2항보다 중요해서 앞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양자가 상호 밀접한 연관 속에서 각기 고유한 기능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본질서’와 ‘규제와 조정’에 주목한다면 ‘기본이념과 보충원리’가 맞다. 헌법 119조의 해석과 집행을 둘러싼 갈등과 혼선은 1항과 2항을 ‘기본이념과 보충원리’로만 받아들여도, 대부분 해소될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헌법 제23조 제1항, 제119조 제1항에서 추구하고 있는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최대한도로 존중·보장하는 자본주의에 바탕을 둔 시장경제질서이므로, 국가적인 규제와 통제를 가하는 것도 보충의 원칙에 입각하여 어디까지나 자본주의 내지 시장경제질서의 기초라고 할 수 있는 사유재산제도와 아울러 경제행위에 대한 사적자치의 원칙이 존중되는 범위 내에서만 허용될 뿐이라 할 것인데....."(88헌가13)고 판결했다.
모든 입법은 헌법재판소의 판결 범위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사유재산제도와 사적자치와 충돌하는 것이기 때문에 폐기되는 것이 마땅하다. 이하에서는 최근 김종인이 대표 발의한 상법개정안을 위의 헌재판결에 기초해 그 타당성 여부를 평가하고자 한다.
야당이 주장하는 재벌규제 일변도의 경제민주화로는 청년실업과 일자리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규제당국만 살찌울 뿐이다. 정치권은 허위와 가식을 버려야 한다./사진=연합뉴스
김종인이 대표 발의한 상법개정안
김종인은 기업 총수를 견제하는 내용의 상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2016. 7. 4)했다. 개정안의 주요골자는, “집중투표제 의무화,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감사위원회 이사 분리선출, 사외이사 연임제한(6년), 사외이사추천위에 사주조합 추천 위원 포함” 등이다. 그는 “개정안을 통해 근로자와 소액 주주의 경영 감시와 감독권을 보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종인은 반(反)재벌론자이다. 입법발의는 그의 평소 지론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5) 그의 반(反)재벌적 시각을 탓할 필요는 없다. 그러면 재벌은 악(惡)인가? 재벌에 대한 반(反)과 친(親)을 말하기 전에, 재벌이 무엇인지 적확하게 아는 것이 중요하다. 객관적 사실에의 접근노력이 필요하다. 무지해서 반(反)한다면 이는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재벌은 한국에만 존재하는 비정형적인, 없어져야만 될 경제조직인가? 그렇지 않다. <그림-2>를 통해 노벨상을 수상한 Williamson(2002)의 견해를 소개한다. 거래를 조직하는 데는 ‘시장을 이용하는 방식’과 ‘조직을 이용하는 방식’ 그리고 순수시장과 순수조직의 중간영역인 ‘중간조직을 이용하는 방식’이 존재한다. 거래는 ‘자산특정성’(asset specificity) 정도와 자신의 이익을 방어해 낼 수 있는 ‘안전장치’(safeguards) 구비 정도에 따라 그 유형이 나뉜다.
‘자산특정성’(k)은, 완전한 범용(general purpose)의 자산이 거래되면 ‘k = 0’, 완전 특정성을 가진 자산이 거래되면 ‘k =1’, 중간 영역이면 ‘0 < k < 1’이 성립한다. ‘안전장치’(s)는 이해관계가 걸린 특정 거래의 중도파기를 구속할 수 있는 방어 장치를 의미한다. ‘s = 0’은 안전장치가 전혀 구비되어 있지 않은 상태를, ‘s = 1'은 완전한 안전장치가 구비된 상태를, ‘0 < s < 1’는 안전장치가 완전하지 않은 상태를 의미한다.
<그림-2>는 자산특정성과 안전장치의 지표인 ‘k와 s’의 값에 따른 거래의 유형과 그에 따른 조직 선택을 나타낸 것이다. 거래 당사자는 결국 ‘C 또는 D’를 선택하게 된다. 시장거래의 개별적인 경제단위가 ‘개인’이 아니고 ‘기업’인 경우, <그림-2>는 생산조직에 관해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우리나라 기업집단의 ‘계열사 구조’와 일본의 ‘계열형 기업조직’(keiretsu)은 중간조직으로서의 ‘C’점에 해당한다.6) 계열사는 독립적인 법인격을 갖지만 일정한 재무적 연결 하에서 경제적으로 일정한 관계를 맺는다. ‘사업부제’를 택하고 있는 미국은 <그림-2>에서 ‘D’에 해당한다.
그림-2. 거래의 유형(k, s)에 따른 조직 형태. 자료 : Williamson(2002)
반(反)재벌론자들은 <그림-2>에서 C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 따라서 계열사 간의 거래를 모두 ‘일감몰아주기’로 규정하고 있다. 일감몰아주기의 위법 여부는 기업의 소유구조를 기준으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시장에서의 정상가격에 의거해 이루어졌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판단돼야 한다. 우리나라는 계열사 간 내부거래를 경제민주화란 이름으로 규제해 왔다. 한국적 현실에서 경제민주화는 요술방망이였다. 무지의 발로가 아닐 수 없다. 보다 자세한 사항은 부록을 참고하기 바란다.
이하에서는 상법개정안의 문제점을 중심으로 동(同)개정안을 비판적으로 평가하고자 한다.
1) 집중투표제 도입: 주주 평등주의에 반(反)하는 집중투표제
집중투표제(cumulative voting)는 주주총회 이사 선임 시 1주당 1표를 주는 것이 아니라 선임되는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주는 제도다. 통상적으로 예컨대 A, B, C 3명의 임원을 뽑는 주주총회에서 한 주주가 100주를 갖고 있을 경우 3명에게 각각 100주의 찬반(贊反)권을 행사한다. 하지만 집중투표제가 도입되면 A임원에게 찬성 또는 반대 300표를 던지고 B, C임원 선임에 대해서는 의결권을 포기할 수 있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소액주주들이 자신을 대표하는 사람을 이사로 선임하거나, 대주주가 내세운 후보 중 문제가 있는 사람이 이사로 선임되는 것을 저지”할 수 있게 된다. 집중투표제 도입 취지는 ‘소액주주(소수주주)의 권리강화’이다. 이를 뒤집어 보면 소액주주가 아닌 주주를 차등하는 것이 된다. 특정 주주의 의결권을 우대하는 것은 ‘주주평등 원칙’에 어긋난다.
그러면 “소액주주가 경제적 약자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김종인은 소액주주가 경제적 약자인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주주에 약자는 없다. 자신의 지분만큼 의결권을 행사하면 된다. 만약 집중투표제를 도입한다면 그 회사를 설립할 당시부터 주식을 소유한 지배주주의 의결권은 가중적으로 인정돼야 한다. 즉 차등의결권도 인정해야 한다. 간괴해서 안 될 것은 집중투표제가 도입되면 외국계 투기 펀드 등에 악용될 소지가 다분하다는 것이다.
금융기관은 그 공공성으로 지배주주의 권리가 크게 침해되고 있다. 금융기관의 경우, 기업지배구조에 대해 법으로 사전적 규제를 가하고 있다. 금융기관 대주주의 정부 승인 및 적격성 심사가 그것이다. 대주주 적격성 심사는 정부가 금융회사의 경영권을 박탈할 수 있다는 근거가 될 수도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자본시장육성보다는 투자자보호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금융산업의 지배구조를 개편해 왔다. 상론할 겨를은 없지만 우리나라 금융산업의 경쟁력이 우간다 수준이고 금융기관의 ROA가 최하위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소액주주의 재산권의 무게가 여타 주주의 그것보다 더 무거울 수는 없다. 그렇다면 재산권을 차등한 것이다.
2) 사외이사 추천위에 사주조합 추천권 보장
사외이사 추천위원회 위원으로 사주조합이 추천하는 인사 한 명을 의무적으로 포함시키는 조항이 포함되어 있다. 노사 간의 역학관계에서 노동자의 힘이 자본가(경영진)에 비해 약하다면 이러한 시도는 공감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노동조합관련법은 귀족노조에게 힘을 실어주는 쪽으로 이미 경도되어 있다. 기울어진 것을 더욱 기울게 하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조직된 10%의 노동자(180만명)가 4250만명 생산가능인구의 교섭력을 독식하고 있다. 노동조합의 막강한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이런 기형적 현상은 다른 나라에서 그 유례를 찾기 힘든 우리나라의 노동법에 기인한다.7) 우리나라에서는 고용자가 쟁의행위(파업) 기간 중 그 쟁의행위로 중단된 업무의 수행을 위하여 당해 사업과 관계없는 자를 채용 또는 대체할 수 없고 그 중단된 업무를 도급 또는 하도급 줄 수 없다.8) 선진국에서는 근로자의 단체행동권(파업권)과 고용자의 영업권(경영권)을 대등하게 보장해 주기 위해 쟁의행위 기간 중 그 참가자에 대한 대체근로가 자유롭게 인정되고 있다. 노사 간의 ‘무기대등의 원칙’(equal footing)에 입각해서, 근로자의 파업권에 상응하는 고용자의 대체인력 투입권을 인정한 것이다. 파견근로자를 대체인력으로 사용하는 것도 허용한다.9)
사외이사추천위에 사주조합 추천을 의무화하면 정관으로부터 위임받아야할 사외이사추천위 구성이 법률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므로, 기업경영의 자율성이 저해된다. 이는 사적자치를 부정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경제민주화는 정치용어로서, ‘과학적 지식’의 대상이었던 적이 없었다. 일종의 신앙으로, 논증 없는 확신과 고집만이 전부였다. 경제학자도 모르는 경제민주화가 열병처럼 우리 사회를 풍미했던 것이다./사진=연합뉴스
3) 소송대란 부를 다중대표소송제
‘이중주주대표소송’은 자회사 임원 등의 부정행위로 손해를 입었을 때 모회사의 주주가 모회사 주주 자격으로 자회사를 대신해 대표소송을 내는 것을 말한다. 이중주주대표소송제가 인정되면 주식을 직접 소유하지 않고도 위법행위로 회사에 손해를 입힌 계열사 경영진에 대해 모회사 주주들이 적극적으로 제재를 가할 수 있게 됐다.
‘다중대표소송제’는 이중대표소송제를 더욱 넓힌 것이다. 즉 모회사 주주가 불법 행위를 한 ‘자회사 혹은 손자회사’ 임원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낼 수 있게 한 제도이다. 일본은 다중대표소송제를 입법화해 의무화했다. 하지만 경영권 침해와 자회사 주주의 권리침해 등을 이유로 다중대표소송 대상은 ‘100% 자회사’로 한정하고 있다.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영미계 국가 일부에서 다중대표소송이 인정 되지만 법원의 결정이 있어야만 하기 때문에 실제 제기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독일 프랑스 중국 등은 제도적으로 다중대표소송제를 도입하지 않고 있다. 판례에서도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다중대표소송제를 도입하는 이유는 무엇이고 또한 제도도입의 규제익(規制益)은 무엇인 가? 우리나라는 경영진을 견제하고 소액주주를 보호하는 장치를 이미 갖추고 있다. 대표소송제가 그 일환이다. 대표소송제는 주주가 다른 주주들을 대표해 회사에 손실을 끼친 임직원에 대해 제기하는 소송으로, 1998년 2월 증권거래법 개정 시 대표소송요건 중 보유지분 충족기준이 0.05%로 대폭 완화됐고 같은 해 5월 이 요건이 다시 0.01%로 완화됐다. 소액주주는 언제든지 지배주주를 포함한 다른 주주를 대신해 경영진을 대상으로 손해배상 소송을 낼 수 있다.
그러면 규제익은 무엇인 가? 재벌 총수의 2세, 3세가 경영하는 자회사, 손자회사를 감독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내 상장사 지분을 가진 글로벌 경쟁사나 투기자본이 다중대표소송제를 악용할 경우 사정은 달라진다. 우선 소송대란이 예상된다. 다중대표소송제는 국내 기업들의 자회사, 손자회사의 빗장을 풀어주는 격이기 때문에, 외국계 기업이 이익을 보고 국내 기업들이 손해를 볼 가능성이 농후하다. 선진국은 다중대표소송제를 도입하지 않고 있으며 유일하게 도입한 일본도 100% 자회사만을 대상으로 제한하고 있다. 다중대표소송제는 ‘교각살우’의 우를 범하는 것이다.
4) 감사위원 분리 선임 분리
감사위원 분리 선출을 강제하자는 것은 감사위원(이사)에 대한 대주주의 이사 선임권을 제한하겠다는 것이다. 투명경영을 빌미로 대주주의 지분에 관계없이 일정 비율 이하로 감사선임 의결권을 제한하면 대주주의 경영권에 족쇄를 채우는 것이다. 상장 자체가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는 것이다.
지주회사의 경우 출자구조가 하방으로만 내려가기 때문에 최대주주 이외의 우호적 지분 확보가 사실상 불가능한 형편이다. 외국계 펀드의 이사회 장악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울 것이다.
김종인 더민주 의원은 스스로를 경제민주화 전도사로 칭한다./사진=연합뉴스
에필로그
재산권과 경제 질서를 규정한 헌법조문의 해석에 관한 헌법재판소의 판결(88헌가13)은 그 자체가 각종 규제법안 통과여부를 가르는 기준이 되어야 한다. 이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헌법재판소는 “....헌법 제23조 제1항, 제119조 제1항에서 추구하고 있는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최대한도로 존중·보장하는 자본주의에 바탕을 둔 시장경제질서이므로, 국가적인 규제와 통제를 가하는 것도 보충의 원칙에 입각하여 어디까지나 자본주의 내지 시장경제질서의 기초라고 할 수 있는 사유재산제도와 아울러 경제행위에 대한 사적자치의 원칙이 존중되는 범위 내에서만 허용될 뿐이라 할 것인데....."(88헌가13)고 판결했다.
인용에서 핵심주제어는 “사유재산제도와 경제행위에 대한 사적자치의 원칙”이다. 김종인의 상법개정안 발의는 “사유재산제도와 사적자치”에 견주어 그 타당성을 평가 받아야 한다. 그의 발의안은 일방통행식 ‘재벌 통제’의 속성을 갖는다. 우선 집중투표제를 통해 소액주주의 의결권을 우대하는 것은 ‘주주평등 원칙’에 어긋난다. 집중투표제가 도입되면 외국계 투기 펀드 등에 악용될 소지가 다분하다.
사외이사 추천위원회 위원으로 사주조합이 추천하는 인사 한 명을 의무적으로 포함시키는 것은, 노사 간의 역학관계에서 노동자의 힘이 자본가(경영진)에 비해 약할 때는 공감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노동조합관련법은 귀족노조에게 힘을 실어주는 쪽으로 이미 경도되어 있다. 파업권과 경영권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더 화급하다.
다중대표소송제로 재벌 총수의 2세, 3세가 경영하는 자회사, 손자회사를 감독할 수 있지만, 국내 상장사 지분을 가진 글로벌 경쟁사나 투기자본이 다중대표소송제를 악용할 경우 사정은 달라진다. 다중대표소송제는 국내 기업들의 자회사, 손자회사의 빗장을 풀어주는 격이기 때문에, 외국계 기업이 이익을 보고 국내 기업들이 손해를 볼 가능성이 농후하다.
감사위원 분리 선출은 감사위원(이사)에 대한 대주주의 이사 선임권을 제한하자는 것이다. 투명경영을 빌미로 대주주의 지분에 관계없이 일정 비율 이하로 감사선임 의결권을 제한하면 이는 대주주의 경영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김종인의 상법개정안은 위에서 적기한 논거에 비춰볼 때, “88헌가13”의 기본정신인 ‘사유재산과 사적자치’를 부정하는 것이므로 폐기되어야 한다.
김종인 류의 경제민주화법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대선이 1년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19대 국회의 행태가 이를 웅변하고 있다. 경제민주화 입법 홍수를 막으려면 ‘경제민주화’에 대한 사고를 획기적으로 바꿔야 한다. 경제민주화는, 경제권력을 정치권력에서 시장경제에 되돌리는 것이다.
규제완화, 노동개혁 등을 통해 “관료·노조 등에 집중되어 있는 경제 권력을 시장에 돌려주는 경제운영의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 없이는” 한국 경제의 질적 도약을 기약할 수 없다. 정치권이 움켜쥔 경제 권력을 놓는 것이 경제민주화인 것이다. 야당이 주장하는 재벌규제 일변도의 경제민주화로는 청년실업과 일자리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규제당국만 살찌울 뿐이다. 정치권은 허위와 가식을 버려야 한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1) 이병천, “대한민국 헌법의 경제이념과 제119조의 한 해석-지배의 정당성 대 민주적 정당성”, 「동향과 전망」, 2011년 가을ㆍ겨울호(통권 83호), 2011. 10, 165~166면.
2) 최준선(2016)도 “...지금은 정부가 왕 노릇을 하는 시대이므로 정부로부터 민간에게로 경제주권이 이양되는 것을 경제의 민주화라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함으로써 같은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3) 경제민주화 정명(正名)이 필요하다. 경제민주화의 ‘뒤에 숨지 말고’, 차라리 용어의 정체성이 분명한 “대기업 규제, 재벌 규제, 경제적 약자보호”를 사용하는 편이 낫다. 그래야 건강한 정책논쟁이 가능해진다.
4) 일단 사영기업이 1차 당사자이고, 사영기업의 범위를 넘는 경우 국가가 비로소 관여한다는 의미에서의 보충성 원칙을 의미한다.
5) 반(反)재벌론자일수록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재벌(기업)을 아끼기 때문에 고언을 한다는 것이다. 친(親)과 반(反)은 자연스런 선택이다. 좀 더 정직해질 필요가 있다.
6) 점 C는 ‘자산특정성’하에 놓여 있지만 나름의 ‘자기보호’(0 < s <1) 장치를 구비한 상태를 의미한다. 점 C는 점 A의 ‘순수시장’과 점 D의 ‘기업’ 사이에 존재하는 ‘혼합형 질서(hybrid order)’로, 개별적인 경제단위 간에 ‘신뢰 가능한 장기계약’이 이루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7) 박기성, “파업 중 대체근로 인정과 직장점거파업 금지”, 『노동쟁의 행위의 문제점 진단과 개선방향』, 바른사회시민회의 정책토론회, 2015. 10
8) 쟁의행위 기간 중 대체근로나 쟁의행위로 중단된 업무의 도급을 금지하는 규정을 가지고 있는 주요 선진국은 없다. 이상희(2015)에 의하면 미국은 파업 시 일시적으로 외부 인력으로 대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임금인상 등을 목적으로 하는 경제적 파업(economic strike)의 경우 파업참가자가 복귀를 거절하면 영구적으로 대체할 수 있다. 프랑스에서는 파업 시 무기계약근로자를 채용하여 대체하거나 그 업무를 도급 주는 것이 인정되고 있고, 실제로 도급을 통한 대체근로가 많이 활용되고 있다. 독일에서도 파업 기간 중 신규채용, (하)도급 등의 방법으로 대체근로가 자유롭게 인정되고 있고, 다만 파견근로자로 대체하는 것은 금지되고 있다. 일본에서도 신규채용, (하)도급, 파견근로 등 다양한 방법으로 대체근로가 인정되고 있다.
9) 노동조합원이 파업 종료 후 복직할 때 대체인력으로 파견근로자가 고용되었다면 계약이 종료됨에 따라 고용이 해지되어 쉽게 노동조합원이 복직할 수 있다. 영국 정부가 최근 발의한 노동개혁안에는 파견근로자에 의한 대체근로와 관련된 제한을 철폐하는 것(removal of current restrictions on using agency workers to cover for strikers:Middleton 2015)이 포함되어 있다.
(이 글은 자유경제원이 20일 리버티홀에서 주최한 ‘기업 규제의 또 다른 이름, 경제민주화’ 토론회에서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가 발표한 '김종인 대표발의 상법개정안 비판 - 경제 권력의 시장으로의 환원이 경제민주화' 발제문 전문이다.)
[조동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