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명 미디어그룹 '내일' 대표·미디어워치 온라인편집장
박근혜 대통령이 경주 지진피해 현장을 방문한 당시 찍힌 한 장의 사진이 어제 인터넷을 뒤흔들었다. 경향신문은 이 사진을 1면에 싣고 <흙 묻을라…길게 뻗은 손>이란 제목을 달았다. 그 아래 설명은 이렇다.
"박근혜 대통령이 20일 지진 피해지역인 경주 황남동 한옥마을을 방문해 피해 복구 중인 자원봉사자들과 손을 잡으며 대화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진흙을 밟아 묻지 않도록 경호원들이 붙잡고 있다" 그런데 인터넷에 올라온 기사에는 사진 설명이 조금 달리 돼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20일 지진 피해지역인 경주 황남동 한옥마을을 방문해 피해 복구 중인 주민들과 손을 잡으며 대화를 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기와 보수작업에 사용되는 진흙을 밟지 않도록 경호원들이 붙잡고 있다.-청와대사진기자단" 경향신문이 인터넷 기사에 처음부터 "기와 보수작업에 사용되는 진흙을"이라고 설명했는지 아니면 뒤늦게 고쳤는지 필자로선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경향신문이 1면에 대문짝만하게 보도한 사진은 대통령을 음해한 심각한 오보였고 뒤늦게 올라간 인터넷판 기사는 그 사실을 알았다는 점이다. 이미 확인된 것처럼 그 사진의 진실은 언론보도와 전혀 다른 것이었다. 일부 언론의 악의적 보도처럼 대통령이 자기 신발에 흙이 묻을까 피한 게 아니라 흙이 기와 보수작업에 사용되는 재료니 밟지 말라는 관계자 얘기를 듣고 조심하려다 그런 포즈로 찍힌 것에 불과했다.
바닥에 있는 흙이 피해 복구에 쓰일 중한 재료라는 걸 깨달은 대통령의 조심성이 그런 사진으로 나온 것이었다. 이걸 알고 보면 사진 속 대통령의 지나치다 싶은 자세가 왜 나오게 됐는지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러나 언론은 두 번 생각하지 않았다. 사진 속 모습이 보이는 대로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은 아예 무시했다. 팩트 체크라는 기본도 잊고 대통령에 대한 악감정은 그렇게 해서 오보로 거침없이 확산됐다.
경향신문은 21일 전날 경주를 방문해 자원봉사자들과 악수하는 박 대통령을 사진을 게재하면서 사진설명으로 대통령이 마치 신발에 흙을 묻히기 싫어서 엉거주춤 손을 맞잡았다고 보도해 논란을 일으켰다./청와대 홈페이지
사실무시 악의로 직진하는 언론
인사이트, 서울신문 온라인판 등의 일부 매체들은 이 사진을 가지고 "경주 지역을 찾았다가 뜻밖에 역풍을 맞았다" "아직 정신적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경주 지역 주민들은 서운함을 드러냈다" 등의 선동 기사를 썼다. 밑도 끝도 없는 대통령에 대한 묻지마 반감의 산물이다. 대통령을 향해 맘껏 욕하라고 쓴 기사니만큼 "저런 식으로 위로할 거면 그냥 방문하지 말지" "뒤에서 붙잡아주는 사람도 웃기네" “딱 수준 보여주는 그림이구만. 너희는 흙수저 난 금수저. 이런게 지도자라니” 와 같은 배설 수준의 막말 댓글들이 당연히 양산됐다.
하지만 대통령 비난이라면 한 가락 하는 오마이뉴스 조차 이건 좀 너무했다 싶었던 모양이다. '너무 싫은 박 대통령? 그래도 이러진 맙시다-경주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이 흙을 밟지 않은, 진짜 이유'라는 제목의 팩트 체크 기사까지 냈다. 언론이 사실 확인 않고 대통령을 무작정 비난하는 악의적인 기사들을 쓰고 있다고 보기 드문 지적도 곁들였다.
오마이뉴스 기자는 언론의 이번 연쇄 오보가 풀(pool) 기자단 취재방식 탓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그런 면도 있을 것이다. 풀 기자단 취재라는 게 모든 언론사가 다 같이 취재하는 게 아니라 돌아가며 기자 대표를 뽑아 취재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풀 기자단이 취재한 내용을 다른 언론사가 공유하는데 여기서 왜곡 가능성이 생긴다.
풀 기자단이 강한 성향을 가지고 있거나 실력 의도에 따라 얼마든지 악의적인 기사가 나올 수 있다. 그럼에도 이번 오보는 순수한 실수로 보기엔 석연치가 않다. 단지 대통령이 신발에 흙을 묻히기 싫어서 취한 자세라고 보기엔 지나치게 부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아무리 대통령이 싫더라도 언론이고 기자라면 대통령이 왜 그런 자세를 취했을까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는 사진이다. 그렇다면 다시 확인하는 게 언론이다. 놓치고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 체크해봐야 한다.
좀비 정치인 좀비 언론 좀비 대한민국 우려
소위 진보언론의 주류라는 경향신문이 기본 확인도 안 하고 신문1면에 실었다는 것은 둘 중 하나다. 악의적이거나 아니면 물불을 못 가릴 정도의 외눈박이라는 점이다. 어느 쪽이라도 언론으로서는 부끄러운 일이다. 예부터 천재지변이 일어나면 흉흉해진 민심은 왕을 원망하기 일쑤였다. 안 그래도 경주 지진에 불안에 떨고 공포심을 느끼는 민심에 기름을 붓겠다는 의도가 느껴지는 악의적인 오보라는 의심을 지우기 어렵다.
주민들은 복구에 땀을 흘리는데 대통령이라는 사람은 피해 현장까지 와서 자기 신발에 흙 묻히기 싫어하는 공주, 아니 여왕이라는 프레임은 그들에게 얼마나 유혹적인가. 빵이 없으면 고기를 먹으면 된다는 프랑스의 마리 앙트와네트까지 연쇄적으로 연상 작용을 불러오는 얼마나 기가 막힌 소재인가. 이미 이명박 정권에서도 숱하게 써먹었던 그 수법이다.
현 정권에 대한 언론의 정치공세는 좌우를 가리지 않고 일찌감치 금도를 넘어 섰다. 저널리즘이란 말조차 부끄러울 정도로 처참하게 스스로 망가지고 있다. 자사 이익을 위해 신문이고 방송이고 모조리 동원해 정권을 막무가내로 공격해 흔든다.
자기들이 지지하지 않는 정권 대통령이라고 천재지변의 상황까지 음해의 기회로 이용한다. 거기에 국가와 국민의 안위는 없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선동에만 두 눈이 시뻘게 진 채 막 달리는 게 지금 좀비 같은 대한민국의 언론이다.
이런 언론을 가지고선 어느 정권도 국정을 제대로 운영할 수 없다. 앞으로 나갈 수 없다. 쓸모없는 좀비형 정치인이 양산되는 걸 감시하고 쳐내야 할 언론이 같이 좀비가 돼 가고 있다. 언론개혁 없이는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사진 한 장으로 여론을 쥐고 흔든 경향신문의 이번 오보가 그 현실을 적나라하게 증명했다. /박한명 미디어그룹 '내일' 대표·미디어워치 온라인편집장
[박한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