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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과 친일파…영화 밀정이 말하지 않는 것

2016-09-22 10:15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답정너'들에게 일본에 대해 묻다

영화 밀정에 관한 이야기가 뜨겁다. 영화 밀정에서 배우 이병헌 씨가 분한 정채산 역(약산 김원봉)에 대한 얘기다. 영화 밀정과 관련하여 약산 김원봉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내비췄더니 비난이 들끓는다. 어떻게 감히 독립운동가를 비판하냐는 것이다.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다. 

약산 김원봉의 항일 운동 업적은 존중하되, 그의 과오에 대한 비판은 별개가 되어야 한다. 약산이 '이념’을 위해 휘두른 총칼에 죽어난 이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일제 관련자들을 제외하고 양민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영화 밀정에 나오는 가상의 이야기와 별개인 실화다.

친일 경찰 노덕술에게 고문당한 후 월북했다는 설을 근거로 그의 월북을 정당화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노덕술 이야기는 관련 근거가 부족해 '꾸며진 이야기’라는 견해가 있고, 실제로는 정부군 및 미군에게 사회주의-공산주의 노선 단원들이 토벌 당함으로써 혁명에 실패해 월북했다는 견해가 더 신빙성이 있다. 설령 노덕술에게 고문을 당해서 월북했다손 치더라도, 북한 서열 7위로 6.25 전쟁 때 '전쟁전문가’로서 활동하며 남침을 하고, 그 공으로 전후에 상을 받은 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도저히 용납이 안 되는 부분 아닌가.

일각에서는 김원봉이 '친일파’를 내버려둔 남한 정부에 실망해서 그랬다고 하는데, 정치구조에 대한 실망을 6.25 남침으로 푸는 것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거니와, 그가 넘어간 북한도 친일파를 제대로 숙청하지 못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약산의 월북은 어디까지나 그가 이념을 위해 취한 선택이었다는 관점에 무게가 실린다.

해방 이후 김일성 정권 주요 인사를 살펴보면 북한이 확실히 했다고 주장하는 그 '친일파 청산’이라는 게 어디까지나 정권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한 선전에 불과하다는 걸 알 수 있다. 북한 정권이 들어섰을 당시 정계, 교육계, 언론계, 군대 등 북한 내부 각 분야에 친일파가 포진해 있었다.

관련 팩트를 한 번 살펴볼까? 정치 및 행정인사부터. 당시 북한 내 권력서열 2위이자 김일성의 친동생이었던 김영주는 일제 헌병 보조원이었다. 장헌근 북한 임시인민위원회 사법부장은 일제 중추원 참의였다. 정준택 북한 행정 산업국장은 일제하 광산지배인 출신이었으며, 일본군 복무자였다.

강양욱 북한 인민위원회 상임위원장은 일제하 도의원이었고, 한희진 북한 교통국장은 일제 함흥철도 국장이었다. 다음 교육 언론계. 한낙규 김일성대 교수는 일제하 검찰총장이었다. 박팔양 노동신문 편집부장은 친일기관지 만선일보 편집부장이었다. 정국은 북한 문화선전성 부부상은 아사히 서울지국 기자이자 친일 밀정이었고, 일본 간첩 출신이었다.

인민군 인사도 마찬가지다. 이활 인민군 공군사령관과 허민국 인민군 9사단장은 일제 나고야 항공학교 정예 출신이었다. 여기까지 언급된 인물들은 그나마 자료가 남아있는 인물 중 '일부’만 서술한 것이다. 당시 북한에서 한 자리 차지했던 사람들 중 상당수가 일제를 위해 봉사한 경력이 있는 사람들이었고, 북한 정권은 친일파 청산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청산한 척만 했을 뿐이다.

사람들은 일본, 친일, 독립운동과 같은 주제만 나오면 생각을 멈추고 반사적으로 반응한다. 영화 밀정이 대표적 사례다./사진=영화 밀정 스틸컷


반면 정부수립 당시 대한민국의 주요 인사를 한 번 살펴볼까? 이시영 부통령은 상해임시정부의 재무총장이었다. 북한의 2인자가 악독하기로 유명했던 일제 헌병 보조원이었다는 점과 사뭇 대조된다. 국회의장 신익희는 임시정부의 내무총장이었다.

대법원장 김병로는 항일 변호사였고, 국무총리 이범석은 광복군 참모장이었다. 말고도 대부분의 장관들이 항일 운동을 하다가 투옥된 경력이 있는 애국열사들이었다. 이와 같이 대한민국 정부는 항일 독립투사들 위주로 구성되었다. 따라서 “북한은 친일파 청산을 했는데 남한은 그러지 않았으니 북한이 더 낫다”는 식의 논리는 잘못되었다. 월북한 독립운동가들이 대한민국의 친일파들 때문에 그런 선택을 했다는 주장도 말이 안 되는 것이고.

물론 이승만 정부의 친일파 청산이 완벽하지는 못 했다. 정부 수립 이후 제헌국회는 친일파를 처벌하기 위해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를 구성했고, 적극적으로 친일파를 색출 및 검거해나갔지만 도중 중단되었다. 국회에서 미군 철수, 북한에의 흡수통일 등을 유도한 프락치 행위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가담한 것이 바로 반민특위 쪽 핵심인물들이었다.

이 과정에서 반민특위와 경찰의 대립구도가 생겨났고, 이는 무력마찰로 이어졌다. 결국 1949년 8월 반민특위는 그 소임을 다하지 못하고 해산되었다. 나름 시도는 했지만, 당시 남한 내 '혁명’을 일으키려던 세력들의 각종 선동과 폭동으로 체제가 매우 불안정했던 시점에서, 반민특위가 혁명 세력의 도구로 이용되었기 때문에 결국 해산시켜버린 것이다. 그러고 보면 지금과 참 비슷하다. '친일파’라는 프레임을 씌워 정치적 적을 공격하는 방식 말이다.

영화 밀정은 친일파에 대한 증오와 그들에 대한 청산을 내비춘다. 결말이 특히 그렇다. 문제는 영화 밀정의 친일파에 대한 방향성과 이를 보고 박수를 치는 일부 대중들이다.

친일파에 대한 증오가 너무 크고, 일본에 대한 증오가 너무 크다보니 다들 생각이 굳어버린 것 같다. 답을 정해놓고, 선과 악의 문제로 접근을 하니 고민과 토론의 여지가 없다. 완전한 선도, 완전한 악도 있을 수 없는 건데 이 뚜렷한 선악관계를 맹신하니 현실을 무시하거나 애써 외면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그렇게 귀를 틀어막고서, 다른 생각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에게 경기를 일으키는 이들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지고 싶다.

첫째, '친일’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일제 강점기간은 무려 35년이다. 35년. 나라를 빼앗긴 해에 태어난 아이가 30대 중반이 되어서야 광복을 맞을 수 있었다. 그럼 이 아이가, 이 35년의 세월 동안 나름대로 가족들 부양하고, 친지인들 챙기고자 열심히 공부하고 일해서 사회로 진출해 특정 분야에 두각을 드러냈다면 그 아이는 십중팔구 '일제’의 시스템 아래에 있었을 것이다.

이 사람을 '친일파’라 욕할 수 있는가? 일제라는 거대한 체제 아래 고개를 숙이고, 현실에 적응하며 열심히 하루하루를 살았던 이 평범한 사람들을, 그저 태어나보니 '조선’이라는 나라는 없고 이제 '일본’이 내 조국이라는데, 그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한 사람들을 '친일파’라 욕할 수 있을까? 적극적으로 반민족행위를 한 을사오적 같은 인물들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평범한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거다. 모두가 산으로 들어가 총과 칼을 들고 싸울 수는 없지 않는가. 영화 밀정은 이러한 점을 말하지 않는다.

'친일파'라는 잔인한 낙인에는 제대로 된 기준이 없다. 그래서 마녀사냥의 도구로 전락하기 쉽다. 다들 프랑스를 이야기하며 우리도 그렇게 친일파를 청산했어야 한다고 말한다. 프랑스가 나치에게 점령당한 기간은 불과 4년이다. 해방 이후 친독파를 숙청하기 시작했는데, 숙청대상이 된 것만 무려 150만에서 200만이다.

그들은 나치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거리에서 폭행당하고 살해당했다. 물론 정당한 법적절차 없이 군중에 의해 인민재판 당한 경우가 다수였다. 불과 4년의 나치 점령기간 동안 150만에서 200만의 숙청대상이 생겼다. 우리는 35년이다. 킬링필드라도 만들어야 했다는 건가? 영국에게 약 70년 동안 강제로 지배당했던 인도의 경우 친영파 숙청이란 걸 하지 않았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항일운동을 주제로 한 영화 밀정 등에서 폭탄을 터뜨리는 시원시원한 장면을 보며, 가슴이 철렁했던 건 나뿐인가? 저 속에는 일제에 해당되는 '적’도 있었지만,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던 민간인들도 포함되어 있었다./사진=영화 밀정 스틸컷


둘째, '독립 운동’은 완전무결한 선인가? 반민족행위에 가담한 인간들에 비해 독립운동가 분들이 도덕적으로 훨씬 고결한 인물들이었음은 분명하다. '민족’을 위해 싸운 이도 있었고, '국가’를 위해 싸운 이도 있었고, 공산주의나 무정부주의 '혁명’을 위해 싸운 이들도 있었다. 목적은 다 달랐지만, '이타심’과 '대의’를 가지고 스스로를 희생하며 일제와 맞서 싸웠다는 점은 동일하고, 이기심에 의해 적극적으로 반민족행위를 한 인물들과 같은 시대를 살았다는 점에서 그들은 분명 위인이다. 영화 밀정은 여기까지다.

여기서 묻지 않을 수 없다. '항일 운동’의 업적이 무엇인가? 그분들이 벌인 각종 항일운동이 실질적으로 대한 독립에 어떤 기여를 했나? 슬픈 현실이지만 우리가 광복을 맞을 수 있었던 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폭과 연합군의 승전 덕분이지 항일 운동 덕이 아니다. 영화 밀정이 말하지 않는 진실이다. 물론 '성과’가 없었다고 해서 항일 운동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문제는 항일 운동의 '방법론’이다. 대부분의 항일 운동은 사티아 그라하에 뿌리를 둔 비폭력저항 운동이 아니었다. 요인 암살과 테러 등을 방법론으로 택한 것이 다수였다. 영화 밀정은 이를 그린다.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민간인이 죽거나 다치는 등의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가 발생했다. 특히 연회장 등의 폭파시도는 이러한 양민 피해를 충분히 예상하고서 벌인 일들이었다. 

항일운동을 주제로 한 영화 밀정 등에서 폭탄을 터뜨리는 시원시원한 장면을 보며, 가슴이 철렁했던 건 나뿐인가? 저 속에는 일제에 해당되는 '적’도 있었지만,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던 민간인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폭탄의 굉음에 통쾌해하는 관객들의 모습을 보며 테러리스트의 '광기’가 떠올랐던 건 나뿐인가? 독립운동 중 양민을 대상으로 한 '살인’ 기록은 심지어 김구 선생이 직접 쓴 문서에도 남아있었다.

묻고 싶다. 이게 정의인가? 현실이 그러했으니 어쩔 수 없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어쨌든 숭고한 목적을 둔 일이었으니 괜찮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여기에 어떤 가치판단도 내리지 않겠다. 나조차도 이를 차마 '부당한 일’이라고 말하지는 못하겠으니까.

다만 나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 할 수 없다고 믿는 사람이며, 그래서 항일운동을 완전무결한 선으로 치부하는 이 분위기 속에 반드시 이런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당신이 위구르 분리주의자와 같은 이들의 폭탄테러에 혀를 찬다면, 동일한 관점으로 독립운동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거다.

영화 밀정은 친일파에 대한 증오와 그들에 대한 청산을 내비춘다. 결말이 특히 그렇다. 문제는 영화 밀정의 친일파에 대한 방향성과 이를 보고 박수를 치는 일부 대중들이다./사진=영화 밀정 스틸컷


셋째, '양민들이 일제시대에 겪었던 삶의 수준 변화’. 사료에 따르면 일제시대 당시 조선의 영유아사망률이 급격히 낮아졌고, 질병 관리 등을 통해 생활 및 복지 수준이 월등히 개선되었다고 한다. 법치라는 개념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독립운동가를 포함한 모든 피고는 정당한 사법절차를 거치도록 되어있었으며, 변호인을 선임 받았다. 물론 당연히 사법절차는 일본을 위해 휘둘렸지만, 적어도 구색은 갖췄다는 거다.

심지어 영화 밀정에서조차 재판 장면이 나오고, 피고가 풀려나는 장면이 나온다. 일제 덕분에 우리가 잘 먹고 잘 살게 되었다는 주장을 하려는 게 아니다. 일제강점기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조선이 정신을 차리고 신문물을 받아들이며 개혁과 쇄신을 꾀했더라면 충분히 근대화가 이루어졌을 수 있었으리라 믿는다.

그런데 이러한 '가정’을 떠나서, 당시 일제시대를 살았던 평범한 사람들의 삶의 수준이, 조선에 비해 훨씬 나아졌다는 부분은 인정을 하고 넘어가야 하지 않겠는가? 탐관오리에게 수탈당하던 양민들, 양반의 아래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살아야했던 노비들을 평등한 사람으로 만들어줬던 건 그 씁쓸한 '근대화’가 아니었던가.

글쎄, '나라를 잃었던 사람들’은 조선시대에 잘 먹고 잘 살던 사람들이었을 터, 그 나라 잃은 슬픔에 양민들이 얼마나 공감했을지 의문이다. '국가란 국민이다’라는 말 좋아하지 않는가? 국민 대다수의 삶의 질에 대해서 '자료’를 통해 이야기해볼 필요가 있다. 일본 자료라 못 믿겠다면, 당시 우리나라에 찾아왔던 서양인들의 기록이라도 논해보자. 나는 국가니, 민족이니 하는 가상의 개념에 대해 논하기 이전에, 나와 내 가족, 내 이웃에 대해 얘기해보고 싶다.

이런 불편한 목소리를 계속 외칠 것이다. 모든 사안이 그러하듯, 역사에도 다양한 관점과 목소리가 허락되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한국은 도그마에 호소하며 조금이라도 다른 생각이나 의견을 철저히 터부시 하고 있지 않는가. 그러니 사람들이 '일본’, '친일’, '독립운동’ 이런 주제만 나오면 생각을 멈추고 반사적으로 반응한다. 영화 밀정이 대표적 사례다.

고민이나 논의의 여지를 남기지 않고, 모두가 같은 '정답’을 이야기하며 이를 강요한다. 다른 주장을 하는 사람을 악인으로 몰아세우고, 친일파로 취급한다. 분명 내가 지금 이런 '불편한’ 글을 쓴다고 해서 '친일파’니 '뉴라이트’니 운운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나는 그런 편협함에 맞서고 싶은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 아니던가. 서로 다른 생각들이 맞서고, 부딪치고, 타협하는 과정에서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끌고 가는 동력이 나온다. 그게 다들 말로만 외쳐대는 민주주의의 기본, 다양성의 원리다. 이제 민주시민답게 대화를 좀 해보자. /우원재 자유기고가


(이 글은 자유경제원 젊은함성, 우원재의 청년일기 게시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우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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