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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귀단장 고전특강(136)-임진왜란 승장 사명대사 충정의 시가(詩歌)

2016-09-30 08:37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현대는 지식이 넘치는 사회이지만, 역설적으로 가치관의 혼돈을 겪고 있는 '지혜의 가뭄' 시대이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가 복잡화 전문화될수록 시공을 초월한 보편타당한 지혜가 더욱 절실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고전에는 역사에 명멸했던 위대한 지성들의 삶의 애환과 번민, 오류와 진보, 철학적 사유가 고스란히 녹아있습니다. 고전은 세상을 보는 우리의 시각을 더 넓고 깊게 만들어 사회의 갈등을 치유하고, 지혜의 가뭄을 해소하여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와 '미디어펜'은 고전 읽는 문화시민이 넘치는 품격 있는 사회를 만드는 밀알이 될 <행복한 고전읽기>를 연재하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박경귀의 행복한 고전읽기(136)-난세에 백성을 구한 호국의 시심(詩心)
유정(1544~1610) 『사명당집

박경귀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

사명대사 유정(惟政)(1544~1610)은 임진왜란 전후시기를 살다간 고승이다. 그는 임진왜란 당시 승군도총섭(僧軍都總攝)으로 평양성 전투 등 여러 전투에서 명군과 관군을 도와 왜적을 무찌른 승병장이다. 왜란 후에도 그의 활약상은 이어졌다. 유정은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사망이후 에도 막부의 초대 쇼군이 된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와의 담판을 통해 왜란 당시 포로로 끌려간 조선인 3천여 명을 생환시켰다. 그는 승려의 몸으로 외교관 역할을 톡톡히 해낸 난세가 낳은 걸출한 인물 중의 한 사람이다.

사명대사는 서산대사 휴정(休靜)의 정법을 이어받은 선승이면서도, 노수신, 이산해, 고경명, 기대승, 유성룡, 이덕형 등 당시 유가의 고명한 문사들과 폭넓게 교유했다. 그는 유불(儒彿)을 뛰어넘는 뛰어난 경세가요 문재(文才)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는 257편 323수의 시를 남길 만큼 발군의 시인의 모습도 보여준다.

이 책 『사명당집』은 그가 남긴 전체 시문(詩文) 중에서 그의 삶과 시대를 조망할 수 있는 총 91편의 시 작품을 선별하여 싣고, 허균이 쓴 사명당의 석장비명을 추가하고 있다. 유정의 빼어난 시문은 그의 따뜻한 감성과 성정(性情), 달관의 지혜를 보여준다. 아울러 임진왜란의 과정과 그 이후에 그가 수행했던 전후 처리 협상과 포로 귀환 추진과정에서 느낀 고충과 애절한 충정을 담고 있다.

당시 참담한 현실이 속세를 떠났던 그를 다시 불러들였다. 유정은 "위로는 진리를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보살핀다"는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의 불법의 가르침을 직접 실천하기 위해 전쟁 참여의 선봉에 나섰다.

유정이 남긴 몇 편의 시가를 감상해보자. 임진왜란으로 도탄에 빠진 백성을 긍휼히 여기는 그의 마음이 시구마다 절절히 배어있다. 또 죄 없는 백성들의 죽음을 보면서 비통해 하는 그의 마음이 그대로 느껴진다.

하늘이 벌써 추워지니 흰 눈이 함박처럼 내리네.
붉은 머리와 푸른 옷 오랑캐들 활개치고 다니는데
어육이 된 우리네 백성이여 송장 되어 길에 서로 베개 삼아 있네.
통곡하고 다시 통곡하니
날 저물고 산은 푸르기만 하구나.
아득한 바다는 어드메뇨
나라님께선 하늘 끝에 계신데.

'임진년(1592) 10월, 의승군을 이끌고 상원을 건너며'라는 시에서는 평양성 탈환을 위해 조명 연합군에 합류하러 가면서 승려가 아닌 장수로서의 비장한 결심을 드러낸다.

시월 의승병이 상남(평양 인근)을 건너갈 제
나발 소리 깃발 그림자 강성에 흩날리네.
칼집 속의 보검은 한밤중에 울부짖나니
요사를 베어 나라님 은혜 갚으리라.

전쟁터를 누비다 전쟁 말기 낙동강 근처에서 병들어 누어 서애 유성룡에게 올린 시는 그가 감내해야 했던 전쟁터에서의 승병장으로서의 인간적 고충을 보여준다.

저는 한 번 싸움터에 떨어지고서
7년이 되도록 돌아가지 못했나이다.
북소리에 가을 꿈도 잘 못 이루거늘
서울에서는 소식조차 드뭅니다.
겨울 속 제 모습은 변해 가건만
근심 속 세월은 더디기만 합니다.
내일 아침이면 강물 건너가야 하니
섭섭하게도 또 길이 어긋나겠군요.

유정은 임진왜란 이후 선조의 친서를 갖고 왜국을 방문하여 당시 관백인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면담하여 포로로 끌려간 조선인을 구출한다. 이를 위해 대마도와 이국 타향인 왜국의 여러 곳을 거쳐 왕래하면서 그가 느낀 고적감, 조선에 대한 그리움이 담긴 시도 많이 남기고 있다.

유정은 뛰어난 선승으로 당시 왜의 불교 선사들과 장수 및 정치가들의 존경을 받았다. 왜승(倭僧)이나 장수들이 유정이 묵는 객관을 찾아와 그림과 글을 비평하는 글을 요청하여 이에 답한 찬(讚)과 직접 법문을 청한 덕천가강(德川家康)의 장자에게 내린 법어도 이런 정황을 파악하게 해준다.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살생을 좋아해 사람들이 보고 들어 그를 두려워했다"는 왜승들의 말을 듣고 유정이 지어 보인 시는 인과응보(因果應報)의 가르침을 통렬하게 일깨워준다. 나아가 임진왜란을 일으켜 조선의 무고한 백성을 무수히 도륙했던 죄과를 엄중하게 상기시키는 유정의 당당한 기개를 여실히 볼 수 있다.

남의 아비 죽이고 남의 형을 죽이면
남도 응당 너의 아비 형을 죽이리라.
어찌 네게 되돌아올 것은 생각지 않고
남의 아비 죽이고 남의 형 죽이는가.

유정은 산속에 묻혀 일신의 깨달음에 천착한들 누가 힐난할 수 없는 승려였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 산문(山門)을 나와 참혹한 백성의 삶을 구제하기위해 왜란의 난세를 치열하게 살아냈다. 그 궤적이 이 책의 여러 시문에 고스란히 배어있다. 이 책은 짧은 분량이지만 직분이 무엇이든 위란(危亂)의 시대에 어떻게 사는 것이 개인적인 삶과 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삶 사이에서 조화로운 삶의 모습인지에 대한 묵직한 화두를 던져준다. /박경귀 대통령소속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

☞ 추천도서: 『사명당집』, 유정 지음, 배규범 옮김, 지식을만드는지식(2011), 188쪽.


[박경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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