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상일 기자]전 세계적 경기침체와 저성장에 직면한 신흥국들이 잇달아 조세사면 카드를 빼 들고 있다.
정치·경제적 불안정성과 부정부패 등으로 형성된 천문학적 규모의 '검은돈'을 양지로 끌어냄으로써 비어버린 곳간을 채우고 경제를 되살리겠다는 취지다.
3일 주요언론 보도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재무부와 관계 기관 등이 인도네시아에서는 조세사면을 시행한 지난 7월부터 지난달 30일까지 약 3개월 동안 무려 3620조 루피아(약 307조 원)의 국내외 은닉자산이 신고됐다.
싱가포르와 호주, 홍콩, 버진아일랜드, 케이맨제도 등지에 숨겨져 있다가 인도네시아 국내로 귀환한 자산도 137조 루피아(11조6000억 원)로 파악됐다.
인도네시아 재무부는 36만6757명의 자국민이 은닉자산을 신고함으로써 97조2000만 루피아(8조2000억 원)의 추가 세수가 발생했다고 강조했다.
인도네시아의 조세사면 기간은 내년 3월까지이기 때문에 양성화되는 자산의 규모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조세사면 첫 3개월 동안 신고된 자산에 대해선 2∼4%의 세율을 적용하고 이후 점차 세율을 높여갈 계획이다. 정상적인 세율은 25%다.
인도 역시 조세사면을 통해 상당한 성과를 올린 것으로 전해졌다.
아룬 자이틀레이 인도 재무장관은 지난 4개월간 탈세 등 목적으로 은닉한 자산에 대한 자진 신고를 접수한 결과 6만4275명이 6525억 루피(10조8120억 원)의 은닉자산을 신고했다고 밝혔다.
인도 정부는 자진 신고된 금액의 45%인 2936억 루피를 내년 9월까지 세금과 과징금 등으로 거둬들이는 대신 처벌 등 불이익을 주지 않기로 했다.
2002년 국가부도 사태 이후 오랫동안 후유증을 앓아 온 아르헨티나도 지난 8월부터 조세사면을 진행하고 있다.
약 4000억 달러(441조 원)로 추산되는 해외도피 자금을 귀환시켜 국면을 반전하려는 것이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신고된 자산에 대해 최고 15%의 세율을 적용할 방침이다.
이밖에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이달 1일 특별자진신고프로그램(SVDP)이란 이름으로 조세사면을 단행했고, 필리핀은 내년도에 16년 만의 대대적 조세사면을 시행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처럼 신흥국들의 조세사면이 잇따르는 배경에는 세계 경기침체 장기화와 저유가, 원자재 가격 하락으로 바닥을 드러낸 정부 재정이 있다는 지적이다.
인프라 건설 등 국가개발 사업을 대대적으로 벌여 경기를 부양하려 해도 이를 뒷받침할 재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조세사면을 통한 외화유입은 '신의 한 수'가 될 수 있다. 외화가 대거 유입되면 자국 통화가치가 올라 인플레이션이 억제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공평한 과세라는 원칙이 훼손된 데 따른 부작용도 적지 않아 보인다.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에서는 지난달 29일 노동자 수천 명이 정부의 조세사면을 규탄하는 대대적 집회를 열었다. 현지 시민사회단체는 정부가 부유층의 탈세에 면죄부를 줬다며 인도네시아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 심판을 제청했다.
[미디어펜=이상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