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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치 흉작, 육사 공사수석졸업도 밀린 한국남성들

2014-02-24 09:45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 심상민 성신여대 교수
공한증(恐韓症)을 기억하시는가? 한국 공포증. 과거 중국 축구가 한국에 연전연패할 때 나왔던 신드롬 신조어였다. 무슨 귀신 잡는 해병대도 아니고 작은 나라 한국 국가대표가 13억 대국에서 뽑은 중국 팀을 꼼짝 못하게 한다니. 참 괴이한 징크스였다. 중국으로서는 아주 기분 나쁘고도 곤혹스러웠을 테고. 더구나 이 공한증 시기는 한국축구가 세계 4강에 오른 2002 월드컵 훨씬 이전부터 자자했던 얘기였다. 1978년부터 2010년까지 무려 32년 동안 한국이 무패행진을 이어갔다니. 용어도 한류처럼 중국 언론이 직접 뱉은 자술서였고.

그러니 당시 중계 방송하던 이들도 꽤나 우쭐해 하기도 했던 기억이 새롭다. 예리한 분석도 나왔다. 남아선호사상이 유별난 중국에서 독생자로 길러진 남자 선수들이라 야생성도 투쟁심도 모자란다는 지적이었다. 기막힌 해설이다. 몸싸움 많은 축구에서 투지나 전략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해보면 약체 탄생의 비밀이 어느 정도 밝혀지는 듯 했다. 물론 과학적 연구나 대대적인 빅 데이터 조사는 없었다. 스포츠와 남성성. 남성성과 사회, 인간에 대한 탐구. 흥미로운 주제이긴 한데 그야말로 총체적 접근이 아니면 시도하기 힘들고 여전히 남존여비가 기세등등한 한국에선 절박한 소재도 아니었다.

그랬다가 이제 올림픽 마치고 월드컵 넘어 가는 현재, 이 주제가 한국의 긴급 현안으로 성큼 찾아와 있다. 소치 동계올림픽 남자 메달 1개. 추락한 세계 랭킹 61위(FIFA, 2014.2.13.)로 월드컵에 나서는 한국 축구대표. 덧붙여 육사 수석졸업생, ROTC 성적 1위 등을 석권한 여자와 여대들 때문에 평가기준마저 바꾼다는 뉴스 등등. 분명 올 것이 왔다. 2014년 초봄, 지금 한국에서 남성성은 무엇인가? 왜 무너진 남성성을 말해야 하는가? 미디어산업은 이미 알고 있다.


   
▲ 한국남성성은 사라지고 있는가? 소치 올림픽에서 남자선수들은 은메달 한개에 머물렀다. 올해 육사와 공사의 수석졸업생도 여생도였다. ROTC 성적 1위도 여학생이었다. 축구대표팀은 FIFA랭킹 60위권의 초라한 순위로 올해 브라질 월드컵에 나가야 한다. 과거의 가부장제, 호연지기, 말타고 달리는 전사의이미지는 사라졌다. 남성성이 거세된데는 배용준 김수현 등 꽃미남과 아이들그룹을 중시해온 방송 등 미디어산업의 책임이 크다. 소치올림픽 쇼트트랙에서 노메달에 그친 이한빈 신다운선수가 넘어진 후 서로를 위로하고 있다.

한국이 보유한 컬처 코드인 가부장제, 호연지기, 말달리는 전사 이미지가 탈색되고 있어서다. 이에 미디어가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꽃미남과 나쁜 남자라는 허상에서부터 미디어가 방조한 남성성 실종 사건 스토리는 시작한다. 한국에서 남성성과 용맹이라는 정체성이 엷어지기 시작한 것은 아이돌 가수 전면 등장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H.O.T.가 첫 앨범을 낸 1996년이 국내 꽃미남 전성시대 원년이라 할 수 있고 국제적으로는 한류 첫 단추였던 2000년 1월 H.O.T. 베이징 공연이 효시였다. 이 때부터 꽃미남 아이돌이 매스 미디어를 지배했다.

2003년 2월 일본 NHK에 상륙한 드라마 <겨울연가>는 K POP을 넘어 방송 부문까지 꽃미남 코드를 심게 만든 기념비적 콘텐츠였다. 욘사마 배용준 이미지가 워낙 부드럽고 자상하고 순정만화 캐릭터로서 부각된 게 주효했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일본 시장이 주도한 대세가 꽃미남이었다는 사실이다. 한국에선 남자 배우 하면 여전히 최민수, 설경구 같은 선 굵은 터프가이가 중심이었는데 중년 여성 팬이 리드한 일본 한류 시장에서는 전혀 다른 양상이 나타났다. 일본 말로 ‘야사시’한 꽃미남 과가 문화 권력을 꽉 잡게 된다. 야사시하다(優しい[やさしい])는 대체적으로 부드럽다, 아름답다, 상냥하다, 곱다, 다정하다, 쉽다는 뜻이다. 이런 보드라운 남성상은 이후 드라마 <꽃보다 남자, KBS, 2009>, <미남이시네요, SBS, 2009>에서 정점을 이루었고 <해를 품은 달, MBC, 2012>, <예쁜 남자, 2013>, <별에서 온 그대, SBS, 2013~2014>로도 계속 증폭되어가고 있다.

모두 최대 수출 시장인 일본 소비자들 입맛에 맞춘 꽃미남 한류비즈니스라고 봐야 한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도 나왔던 나쁜 남자 신드롬이나 2PM같은 근육질 아이돌을 칭하는 짐승돌, 중년돌, 성인돌 취향도 있었지만 꽃미남 대항마라기보다는 대세로 다시 수렴되는 곁가지 현상으로 맴돌았다. 다만 나쁜 남자 이미지의 경우 적어도 한국 내에서는 기형적인 형태로나마 호소력을 가졌었다. 워낙 남성성이 약해지다 보니 색다른 컬러로서 다양한 소재와 캐릭터를 보여준 시도다. <나는 가수다>로 복구한 임재범이나 조금 멀지만 2002 월드컵 신성 김남일 선수가 그러 했다. 이효리 노래 <배드 걸(Bad Girl)>도 마초(macho) 이미지를 입힌 나쁜 남자 트렌드 아류였다. 이효리는 반듯하고 보드라운 꽃미남을 좇는 주류 이미지에 희소성으로 저항해 나쁜 남자 개념을 반영해본 사례였다. 그러니 이 또한 꽃미남 대세의 그림자요 반작용 정도에 불과했다는 평이다.

이렇게 꽃미남 코드가 10년을 넘고 15년 20년을 헤아리자 한국사회 연성화(소프트화), 탈남성화가 대대적으로 진행되었다. 해서 조심스럽게 미디어 산업 책임론을 꺼내 본다. 우선 방송작가 8할, 9할이 여성이다. 현장을 누비는 기자도 여성 상위가 되었다. 콘텐츠 제작 관점, 언론 관점이 꽃미남 코드로 몰릴 수밖에 없는 구조로 왔다. 다 그렇지는 않지만 드라마나 영화에서 남자 주인공을 애완동물 펫(pet) 쯤으로 여기는 설정이 꽤나 많은 편이다. 일본 원작만화에서 받은 한국 영화 <너는 펫, 2011>까지 나올 정도로. 이게 거북살스러운지에 관해 별 말없이 지나가기도 했지만 이제 소치 올림픽에서 브라질 월드컵으로 넘어가는 이 맘 때 미디어산업의 사회적 책임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솔직히 우리 지상파 방송사들을 필두로 확실한 돈이 되는 일본 시장 여성소비자들 구미에 맞춘 꽃미남 장사에 너무 오래 탐닉해왔다. 일본과 동아시아 여성층에 어필하려다보니 고구려 영웅마저도 야사시해야 했고 말쑥하게 화장하고 귀여운 어린 연하 남자 캐릭터들을 너무 띄웠다. 국내에서도 귀여운 짓 잘하는 예능 애교 스타들 일색이다 보니 송일국, 안재모 같은 남성성은 점차 떠밀리고 있다. 항일 이미지가 강한 김두한 캐릭터도 스크린에서 밀려 났다. 독도 가수 김장훈도 어쩌면 대일 수출용 꽃미남 격랑에 표류중인 듯싶다.

이런 일변도와 미디어 극단화가 노메달 노골 남성상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용맹 없고 파이팅 없고 가부장적 리더십과 책임감 취약한 한국 남자를 길러낸 건 아닌가? 상당한 연관성이 있으리라 본다. 박세리가 개척한 여자 골프나, 여자 양궁, 스케이트 선수가 해낸 성취가 커가는 사이 한국 남자는 빛의 속도로 위축되어가고 있다. K POP과 한류 콘텐츠로 한 건 올린 한국 미디어산업의 펫(pet)으로 강등 당한 한국 남자 위상을 똑바로 챙겨 볼 때다. 중국을 짓눌렀던 공한증 같은 암흑기가 고스란히 한국으로 넘어오기 전에 뭔가 해야 한다. 결자해지.

미디어산업 스스로 일본이나 동아시아 여성 팬들 취향에 빨려가든 타성을 넘어서야 한다. 전 지구 시장으로 나아가면 전형적 남성성으로 승리한 사례가 얼마든지 있다. 제임스 본드나 인디아나 존스, 해리 포터, 셜록 홈즈 등등. 그렇게 영웅까지는 아니라도 그냥 남자다운 남자라도 빠트리지 않고 캐스팅해야 남자 노메달 노골 수모를 막을 수 있을 터이다. 미디어에서 투명인간으로 걸어 다니는 한국 남자를 이대로 계속 놔둘 셈인가? /심상민 성신여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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