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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의 고민…엘리엇만 배불릴 김종인의 상법 개정안

2016-10-09 09:00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헤지펀드만 배불릴 야권의 상법 개정안

지난 5일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의 자회사인 블레이크캐피털과 포터캐피털이 삼성전자의 주식 0.62%를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삼성전자 이사회에 서한을 보내 ▲ 삼성전자 인적분할(지주회사-사업회사) ▲ 30조 원 특별 배당 ▲ 미국 나스닥 상장 ▲ 삼성전자 분할 법인에 각각 3명의 독립 사외이사 추가 등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엘리엇은 지난해 삼성물산 지분 7.12%를 매입한 뒤, 삼성물산-제일모직 간 합병 반대를 주도하면서 국내에 알려진 대표적인 행동주의 헤지펀드다.

이들의 제안을 받아들인 삼성이 어떠한 결정을 내릴 지는 미지수지만, 중요한 것은 국내 대기업에 대한 외국계 헤지펀드의 공격이 잦아졌다는 점이다. 2000년 대 초 소버린과 칼 아이칸이 각각 SK와 KT&G를 공격한 것을 필두로 지난해엔 엘리엇이 삼성물산을, 올 초엔 SC펀더멘탈이 GS홈쇼핑을 공격하는 등 그 사례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이들은 기업의 방만 경영을 어렵게 하는 순기능도 하지만, 단기 차익만을 추구하여 기업의 장기 성장 모멘텀을 떨어뜨리는 역기능도 만만치 않다.

이러한 흐름 속에 최근 김종인, 채이배 의원 등이 발의한 상법 개정안은 깊은 우려를 자아낸다. 이들의 개정안에는 ▲ 감사위원 분리선출(감사위원 선출시 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것) ▲ 집중투표제(모든 주주들에게 ’선출 이사 수×보유 주식 수‘ 만큼의 의결권을 부여해, 특정 후보에게 찬성 또는 반대표를 몰아줄 수 있도록 하는 것) ▲ 다중대표소송제(모회사 주주가 불법 행위를 저지른 자회사 경영진을 상대로 손배소를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것) ▲ 전자투표제(주총에 가지 않아도 전자투표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도입 등을 의무화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개정 목적은 ’소액주주 보호‘다.

더민주 김종인이 발의한 상법 개정안은 현실화될 경우, 소액주주가 아닌 헤지펀드의 이익만을 극대화할 가능성이 크다./사진=연합뉴스



이 개정안은 얼핏 그 목적대로 소액주주들의 재산권을 보호하는 법으로 보인다. 실제 전자투표제의 경우, 여러 기업의 주총이 같은 날 열려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하거나 기업 측이 편법적으로 주총 참여를 방해하는 사례를 막는 데에 다소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나머지 제도들은 소액주주가 아닌 헤지펀드의 이익만을 극대화할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다.

가장 우려되는 것이 바로 감사위원 분리선출이다. 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이 3%로 제한된 상태에서 헤지펀드들이 연합하면, 감사위원 전부를 쉽게 자신들이 원하는 사람들로 선임할 수 있다. 

특히 헤지펀드의 경우 지분율이 3%를 넘더라도, 여러 자회사를 동원해 지분을 3% 아래로 쪼갤 수 있다. 기업의 내밀한 경영 정보까지 낱낱이 들여다 볼 수 있는 감사위원 자리를 단기 차익에 집착하는 그들의 거수기로 채우는 것은, 안방에 악어떼를 풀어놓는 것과 다르지 않다.

여기에 집중투표제까지 활용하면, 전체 이사의 과반에 해당하는 사외이사 자리까지도 헤지펀드가 상당 부분 차지할 공산이 크다. 소액주주들이 제대로 영향력을 행사할 방법은 그들 스스로 지분을 한 데 모아 단일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뿐인데, 수 만~수 십만에 이르는 그들의 숫자를 고려해 볼 때 현실성이 매우 떨어지는 애기다. 더군다나 그렇게 의결권을 모은다 해도, 헤지펀드 하나 상대하기조차 힘든 판국이다. 다중대표소송제 역시 일정한 지분율 요건을 갖춰야만 소송을 제기할 수 있어, 소액주주를 위한 제도라고 보기 어렵다.

김종인의 상법 개정안에 따르면, 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이 3%로 제한된 상태에서 헤지펀드들이 연합하여 감사위원 전부를 쉽게 자신들이 원하는 사람들로 선임할 수 있다. 안방에 악어떼를 풀어놓는 격이다./사진=연합뉴스



감사위원 분리선출은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제도다. 집중투표제의 경우 과거 미국의 일부 주와 일본에서 의무화된 적이 있긴 하지만, 기업 사냥꾼에 의한 공격과 주주 간 경영권 분쟁으로 인해 현재는 기업 자율로 바뀐 상태다. (의무화한 나라는 칠레, 러시아, 멕시코 3개국) 한편 다중대표소송제는 일본에서만 법제화 돼있고, 그나마도 자회사 주주 보호를 위해 모회사가 자회사의 지분을 100% 보유하고 있을 때에만 적용된다. 야권이 추진하는 상법 개정안은 이처럼 국제 추세에도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선량한 소액주주들을 보호할 가장 확실한 방법은 분식회계와 횡령, 배임 등에 대해 엄격한 민/형사상 책임을 묻는 것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이나 형량 범위 확대 등을 통해 편법 행위에 대한 기대 손실을 높이면, 기업과 경영진은 자율적 통제에 나설 수밖에 없다. 

대다수의 규제가 '약자를 위한다'는 선한 목적으로 도입되지만, 궁극적으론 또 다른 특수 집단의 기득권만을 키워줄 뿐이다. 대주주든 헤지펀드든, 또는 소액주주이든 지분율 만큼의 권리 행사만을 허하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에는 강력히 제재한다는 원칙만 바로 세우면 된다. /박진우 리버럴이코노미스트 편집인


(이 글은 The Liberal Economist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볼 수 있습니다.)

[박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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