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이 대치하고 있고, 국가보안법이 시행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특정인이 북한의 남한혁명노선이라고 하는 '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 혁명론'을 추종하며 민족해방(NL)을 내세우는 '주사파' 또는 북한을 무비판적으로 추종하는 주사파와 같은 계열에 둘 수 있는 '종북'으로 지목될 경우 그는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헌법적 기본질서를 부정하는 행위를 하여 형사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부정적이고 치명적인 반사회세력으로 몰리고, 그에 대한 사회적 명성과 평판이 크게 손상될 것이므로, 이로 인하여 명예가 훼손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필자는 이번 글에서도 지난 글에 이어 김 판사의 판결문이 얼마나 엉터리인지 한번 따져보고자 한다. 위에 소개한 단락은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문재인 전 의원에게 3000만원 거액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한 서울중앙지법 민사83단독 김진환 판사의 판결문 중 일부다. 김 판사는 주사파나 종북으로 지목이 돼도 치명적인데 하물며 헌법부정세력인 공산주의자라고 하는 건 불법행위라고 판단했다.
그런데 어이가 없는 건 판결문에 타인을 주사파나 종북이라고 부르는 건 무조건 명예훼손이 되는 것처럼 마치 일반론인양 끼워 넣은 것이다. 그렇다면 충분한 정황증거나 근거가 있어도 그렇게 부르면 명예훼손이라는 건가. 김 판사 논리대로라면 이석기나 통진당 조직도 주사파나 종북으로 불러선 안 된다는 얘기가 된다. 김 판사는 위의 명예훼손 경우가 어떤 경우인지 설명도 없이 다짜고짜 끌고 들어와 고 이사장 사건과 연결지었다. 그리고는 주사파 종북보다 공산주의자가 더 심한 말인 것처럼 판결문을 썼다.
공산주의자 발언 처벌을 위해 판결문이 이상한 '물타기'
사전적 의미만을 따지더라도 필자는 공산주의자가 주사파 종북주의자보다 더 심한 말이라는 김 판사 판단이 도저히 납득이 안 된다. 공산주의자만 헌법부정세력이고 주사파나 종북주의자들은 그럼 아니란 말인가. 이 부분을 피고 측은 이렇게 반박한다.
"친북반미좌경의식화학습의 단계로 보아서도 초기에는 사회비판의식 고양, 자본주의 체제의 폐혜를 인식시킨 다음 자유민주주의체제의 모순구조와 공산주의가 진정한 민주주의라는 의식을 주입하고, 마지막단계로 주체사상과 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 혁명론을 학습시키는 것인데 공산주의자가 종북주의자 또는 주사파의 문언적의미를 훨씬 뛰어 넘는다고 단정한 것은 어불성설이다"
필자가 확인하기로 고 이사장 측은 재판과정에서 문재인이 북한의 대남적화혁명노선인 민족해방인민(민중)민주주의 혁명론에 부합하는 활동을 한 사실을 거론했을 뿐이다.
고영주 이사장에 대한 판결은 형사법체계를 무시한 판결이라는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10월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오른쪽)이 국회에서 열린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 야당 의원들로부터 '문재인은 공산주의자' 발언에 대한 사과 및 사퇴를 종용받고 있다. /사진=미디어펜
고 이사장은 보수시민사회 모임에서는 종북이나 주사파, 김 판사가 언급한 민족해방민중민주주의 혁명론 이런 얘기들은 꺼내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소송건과 아무 관련이 없는 딴 얘기를 끌어들여 그걸 근거로 고 이사장이 불법을 저질렀다고 판결한 것이다. 이거야 말로 밑도 끝도 없이 무조건 고영주에 패소를 안겨주겠다는 의도가 있지 않고서야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김 판사는 "문재인을 공산주의자로 확신한다"는 고 이사장 발언이 왜 명예훼손인지 반드시 논리적 설명이 뒷받침이 돼야 할 근거들, 핵심 사안들은 다 빼먹었다. 그리고는 맞지도 않는 엉뚱한 다른 사례들을, 그것도 앞 뒤 전후 설명도 없이 끌고 와 멋대로 판결했다. 이러니 고 이사장 측 증거나 변론기회를 다 막아버린 것이 의도적이라고 밖에 볼 수 없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최소한 김 판사가 얼마나 무성의하고 안일하게 재판을 했는지 증명해줄 뿐이다.
종북 주사파보다 공산주의자가 더 심한 매도라는 헛소리
공산주의자가 주사파와 종북보다도 더 심한 매도라는 김 판사 판단이 과연 상식적인지 형사처벌의 문제만 봐도 말이 안 된다. 공산주의자라는 이유로 형사처벌을 받은 일이 있나. 필자 기억엔 없다. 그러나 주사파나 종북주의자들은 국가보안법상 현재 처벌을 하고 있다. 그런데도 공산주의자가 주사파나 종북보다 더 심한 매도라는 게 논리상 가능한가.
김 판사는 우리 형사법체계도 무시한 꼴이다. 판결문의 다음 문장을 보자. "(중략) 이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우리나라가 적화되는 건 시간문제’라는 확신을 하고 있다는 취지의 위 발언은, 주로 정치적으로 같은 입장에 있는 이른바 애국시민사회진영의 시민단체 회원들을 대상으로 한 것으로 보이는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원고에 대한 다소 과장된 정치적 수사를 통한 의견 또는 논평의 표명 차원을 넘어 진위를 가릴 수 있는 명예 훼손적 의견을 단정적으로 표명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재차 강조하지만 김 판사는 고 이사장 발언이 의견이나 논평 차원이 아니라 명예훼손적 의견이라고 판단할만한 어떤 논리적 근거도 제시하지 않았다. 문재인을 공산주의자로 볼만 하느냐 아니냐 고 이사장이 제출한 증거에 대해 전혀 판단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사건과 무관한 종북 주사파 발언이 명예훼손이라는 엉뚱한 다른 판결을 가지고 끌고 들어와 공산주의자 발언은 그것보다 더 심한 매도라고 주장했을 뿐이다.
이 주장을 판결문에 쓰면서도 종북이나 주사파 공산주의자에 대한 각각 설득력 있는 이론적 논거도 제시하지 못했다. 고영주가 문재인을 공산주의자라고 확신한다는 발언은 그냥 밑도 끝도 없이 명예훼손이라는 식이다. 김 판사의 부실한 재판 과정과 판결을 보면 고 이사장이 왜 그런 확신을 갖게 됐는지는 알아볼 필요도 없다는 식이다. 판결문이 워낙 엉망이다 보니 지적할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김진환 판사의 엉터리 판결문을 해부한 다음 글도 기대 부탁드린다. /박한명 미디어펜 논설주간
[박한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