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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조' 언론현실…조선일보 김대중 고문은 반가울까

2016-10-22 09:10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박한명 미디어펜 논설주간

조선일보가 김대중 정권으로부터 극도의 압박을 받고 있을 때인 2002년 5월 11일의 일이다. 김대중 당시 조선일보 편집인은 슬로베니아에서 열린 국제언론인협회(IPI) 총회에 참석해 정권의 언론탄압을 세계에 고발했다. 피를 토하듯 했던 이때의 연설로 인해 그는 이후 정권의 호위무사 노릇을 하던 소위 민주진보세력의 표적이 돼 온갖 모욕을 당하는 일이 벌어진다. 

세계에 나가 국제 언론인들을 망신시켰다며 언론노조로부터 공격을 받기도 했다. 세계를 향한 김 고문의 절박한 호소 속에는 "조중동이 좌파적 신문으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다"는 내용도 있었다. 그때 그의 연설문은 검색으로 지금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몇 번을 읽어봐도 명문인 김 고문의 글을 조금 더 인용해 보자. "(중략) 정부는 수년에 걸쳐 언론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전술을 수정해왔다…도청, 감시, 비공개 수사는 여전히 행해지고 있다." 

"가장 관심을 끄는 전술적 변화는 기자나 논설위원을 목표로 삼지 않고 사주의 개인적 약점을 들추는 방법으로 사주를 직접 겨냥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세무조사가 이같은 사례를 보여준다. 한국 민간언론은 작년에 정부로부터 치밀한 세무조사를 받았고 신문사 사주 3명이 천문학적인 추징금 부과와 함께 구속됐다. 이에 대한 재판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현 정부는 한국 역사상 가장 가혹한 언론탄압을 한 정부로 기록될 것이다. 그리고 며칠전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독립적인 신문 가운데 하나인 동아일보의 편집인이 스캔들에 연루됐다는 정부 주장 때문에 사임했으며 그는 비윤리적인 언론인으로 낙인 찍혔다. 더구나 언론탄압 당시 정부조치를 지지했던 상당수 여당 국회의원과 몇몇 진보적인 NGO가 언론사 소유지분를 제한하는 법안을 제출했다. 최대 주주가 30% 이상의 지분을 가질 수 없다는 법률 개정이 한 예다. 이 법안은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이다."

조선일보와 경향신문 한겨레신문의 격세지감

심각했던 김대중 정권의 언론탄압 현실이 생생하게 담겨 있는 김 고문 글에는 그때 좌파언론이 하던 짓들에 대한 고발도 있다. 

"(중략) 한국의 민간 언론사에는 또 한가지 기이한 현상이 존재하고 있다. 한국언론은 대개 두 부류로 나뉘어 서로 상대방을 헐뜯는다. 이는 정상적인 경쟁의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다. 언론사의 이념적 입장에 관한 싸움이다. 예컨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중앙일보는 좌파적인 신문들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다. 결론적으로, 민간신문사 간의 전선은 정치적 강자들과 이를 비판하는 세력들 사이에 형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소유구조 변경 운운은 비판언론을 침묵시키겠다는 구실일 뿐이다."

이런 김대중 편집인 IPI 총회 연설을 바라보던 좌파언론의 시선은 어땠나. 오마이뉴스 기사에 의하면 이렇다. "강기석 <경향신문> 편집국장은 "보도가 사실이라면 신문사 편집인으로서의 자격이 의심되는 발언"이라고 강한 톤으로 비판했다." 

2002년 김대중 당시 조선일보 편집인은 슬로베니아에서 열린 국제언론인협회(IPI) 총회에 참석해 정권의 언론탄압을 세계에 고발해 좌파언론의 뭇매를 맞았다. 15년 후 오늘은 조선일보가 좌파적 언론사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는 현실로 변했다. 사진은 지난 2013년 6월 10일 서울 중구 태평로 조선일보 사옥 앞에서 경찰들이 5.18역사왜곡저지대책위원회 회원들의 진입을 막고 있다. 이날 5.18역사왜곡저지대책위는 '5·18 왜곡보도 종편 규탄대회'를 열고 조선일보 사옥에 계란과 밀가루를 투척했다. /사진=연합뉴스


오마이뉴스는 한겨레신문 내부 반응에 대해선 이렇게 전했다. "최성민 <한겨레> 여론매체부장은 한결 강도 높은 비판을 퍼부었다. 최 부장은 "정부에서 언론사 세무조사를 해서 '없는 비리'를 만들어냈나? 세무조사 이후 언론사들이 정부에 비판적인 기사를 못 쓴 적이 있었는가?"라고 반문하고 "불순한 이념논쟁을 노린 음모적인 발언"이라고 논평했다. 

최 부장은 특히 "동아일보 이OO 편집인이 사임한 것도 자기 회사에서 비리사건을 먼저 보도한 후 (비리 사실이) 들통났기 때문이 아닌가? 외국에 나가서 왜곡발언이나 하고 다니는 것은 국익 훼손이다"며 "<조선>에는 당장 유리할 지 몰라도 한국의 언론인과 국가의 명예에 먹칠을 하는 발언"이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조선일보 편집인이 외국에 나가 정부의 언론탄압을 고발하는 연설을 한 것이나 정권의 언론탄압을 보고도 "없는 비리 만들었냐"며 옹호한 좌파언론의 태도 모두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필자가 십수년 전 김대중 조선일보 편집인 글을 인용해 소개한 것은 작금의 현실과 너무나 비교가 되기 때문이다. "조선일보가 좌파적 언론사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다"던 현실은 이제 15여년 만에 조선일보가 좌파적 언론사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는 현실로 변했다. 

조선일보 세무조사가 뭐가 잘못 됐냐고 정권을 옹호하던 좌파언론은 '[단독]조선일보 계열사들 세무조사…청, 우병우 의혹 제기 보복?(경향신문)' 이런 기사를 내고 조선일보를 편들고 있다. 정기적 세무조사라는데도 우병우 의혹을 제기해 조선일보가 보복을 당하는 것 아니냐는 시비조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과거 좌파언론사로부터 공격당해 설움이 컸다던 조선일보 김대중 고문 지금 심정이 몹시 궁금하다. 그땐 좌파언론이 정권을 편들고 정권과 같이 조선일보를 공격했는데 지금 좌파언론은 조선일보와 같이 박근혜 정부를 공격하면서 또 조선일보를 편들어주기까지 한다. 그는 만족스러울까.  

15년 전후의 조선일보, 비극적인 타락상

김대중 조선일보 편집인 시절 정권의 언론탄압 현실을 고발한 연설문은 역설적으로 작금 우리 언론의 타락상을 고발하고 있다. 그 때는 정권이 비판언론을 손보기 위해 적극적으로 탄압을 가했다. 약 15년 만인 박근혜 정권에 와선 거꾸로 됐다. 김대중 정권 동아일보 편집인 스캔들은 언론을 손보던 차에 나온 기획물 성격이라면 조선일보 송희영 사건은 무차별로 얻어맞던 정권의 방어 형태를 띠고 있다. 

청와대에 넣은 청탁과 민원이 거절당하자 정권에 보복하는 것이라는 세간의 의혹에 조선일보가 해명을 하지 않은 이상 그렇게 이해할 수밖에 없다. 우병우 마녀사냥, 작금의 최순실 모녀에 대한 일방적인 의혹 보도, 이것으로 대통령을 정조준하는 것이 그렇다. 

과거 노골적인 비판언론 탄압에도 "뭐가 잘못됐냐"며 정권 입안의 혀처럼 굴던 좌파언론의 수치를 모르는 이중잣대는 그러려니 치자. 그러나 어떻게든 이 정권 목줄을 끊어놓을 것 마냥 좌파언론과 자매지처럼 보도하는 조선일보의 타락상은 어떻게 봐야 하나. 조선일보가 갖고 있는 언론권력을 제 일가 사욕을 위해 썼던 전 주필엔 침묵하면서 말이다.

언론사의 이익을 위해 정부권력을 개 패듯 두들겨 패는 현상, 언론권력이 정부권력을 뛰어넘어 마음대로 후리는 현실은 분명 언론의 자유와 진보가 아니다. 방종과 타락이다. 15년 전 김대중 조선일보 편집인은 IPI 총회연설에서 이런 말로 마무리 한다. 

"오랜 경험을 통해, 나는 정치권력이 언론자유를 보장해주는 것을 기다리기보다 언론이 스스로 이를 지키는 편이 낫다고 말할 수 있다. 모든 정치권력은 비판받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언론자유 수호는 기자, 편집인, 논설위원, 발행인 등 모든 언론 종사자들의 정신에 달려있다. 우리들은 지난해 이같은 어려움을 극복했다. 한국에서 기자가 되거나, 신문사를 경영하려면 절대적으로 깨끗해야 할 뿐 아니라, 비리에 한발짝도 접근해서는 안된다. 특히 정치와 거리를 두어야 한다. 이는 곧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15년 전 순수했던 조선일보의 현재 모습은 어떤가. 스스로 권력화 길을 선택해 괴물로 변해간 것은 아닌지 돌아봤으면 한다. /박한명 미디어펜 논설주간

[박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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