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이재용 부회장이 등기이사로 선임돼 공식적으로 경영 전면에 나서면서, 글로벌 기업인 삼성전자에 어떤 변화의 바람이 불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번 이 부회장의 등기이사 선임은 2008년 4월 이건희 회장 퇴진 이후 8년여 만에 오너일가의 구성원이 삼성전자 사내이사로 등재되는 것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해 중국 출장을 마치고 김포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는 모습.
이로써 1991년 삼성전자에 입사한 이 부회장은 약 25년 만에 사내이사 직함을 갖게 되는 셈이다. 이 부회장은 2004~2008년 삼성과 소니의 합작법인인 S-LCD 등기이사만 맡은 적이 있다.
이 부회장은 이번 등기이사 선임에 따라 이사회에 정식 구성원으로 참석하게 된다. 주총 소집, 대표이사 선임, 자산 처분과 양도, 투자계획 집행, 법인 이전설치 등 회사의 중대 사항을 결정하게 되며 이에 따른 민형사상 책임도 진다.
이 부회장은 다른 사내이사처럼 부문장 직함을 갖지는 않고 총괄 지휘자의 역할을 맡을 전망이다.
무엇보다 이 부회장이 당면한 과제는 최근 갤럭시노트7 단종 사태로 표면화된 신뢰의 위기, 브랜드 위기를 정면 돌파하는 것으로, 발화 원인을 규명하고 리콜에 이어진 소송 등 후속 사태를 수습해야 한다는 것에 집중된다.
아울러 연말 사장단과 임원 인사, 조직개편에서도 '이재용의 뉴삼성' 색깔을 보여줘야 할 것으로 보인다. 당장 임원 인사를 앞두고는 신상필법과 함께 대규모 감원이 예고된다는 관측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중장기 과제는 신성장동력의 발굴과 지배구조 개편이다. 상명하복식 업무 관행, 수직적 조직체계의 대대적 혁신도 이 부회장이 떠안고 있는 과제로 회자된다.
'천재경영자' 이건희 이후, 이재용이 이끄는 '뉴삼성'
지난 2014년 5월 이재용 부회장의 부친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급성 심장경색으로 갑작스럽게 입원한 이후, 삼성그룹 안팎에서는 '천재 경영자'로 불린 이 회장의 공백이 경영 차질로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감추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2년이 지난 지금 삼성그룹은 여전히 치열한 글로벌 경쟁 속에서도 차분하게 삼성만의 길을 가고 있다는 게 보편적인 시각이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와병 중에도 삼성그룹은 이 부회장의 주도 아래 계열사 간 인수·합병을 비롯해 매각 등 사업구조 재편 작업이 숨 가쁘게 진행하며 많은 변화를 이뤄냈다.
지난 2년여 간 삼성그룹은 화학·방산부문을 매각하고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을 통합하는 등 비주력 사업은 정리하고 그룹의 구조를 전자, 금융을 양대 축으로 건설·중공업, 서비스 등으로 단순화했다.
삼성은 지난 2013년 말 에버랜드가 제일모직 패션부문을 양수한 것을 시작으로 10여 차례가 넘는 계열사 재편작업을 벌였다.
이 회장의 부재 가운데 2014년 11월에는 삼성그룹의 석유화학부문인 삼성종합화학·삼성토탈과 방산부문인 삼성테크윈·삼성탈레스를 한화그룹에 넘기는 초대형 양수도 계약을 실행했다. 이어 롯데그룹과의 빅딜을 통해서도 화학 계열사를 모두 정리했다.
지난해 9월에는 옛 제일모직과 옛 삼성물산을 합병한 통합 삼성물산이 공식 출범했다. 그룹 내 소규모 사업재편도 이어졌다. 그 결과 삼성그룹은 전자와 금융을 양대 축으로 건설·중공업, 서비스 등으로 사업 영역이 정리됐다.
재계에서는 이를 두고 외형 불리기나 과거의 선단식 경영 보다는 젊은 3세 경영인으로서 핵심사업에 집중하겠다는 이 부회장의 경영 스타일이 녹아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여기에 이 부회장의 진두지휘 아래 그룹의 상징이었던 삼성생명 태평로 사옥을 매각하고 삼성전자 주요 부서를 강남에서 수원으로 이전하는 등 사옥 재배치도 이뤄졌다.
다만 단기간의 사업재편, 특히 외형 확장보다는 슬림화에 초점을 맞춘 이 부회장의 스타일이 어떤 결과를 내놓을지는 아직은 미지수라는 평가도 나온다.
이건희와 '다른 길', 이재용의 '마이웨이' 주목
그룹 경영 전면에 등장한 이 부회장은 아버지인 이 회장과 또다른 스타일로 삼성의 색깔을 바꿔나가고 있다. 그룹 사업재편을 주도적으로 이끄는 한편 글로벌 기업에 비해 경직되고 뒤떨어진 조직문화 전반의 혁신도 시도하고 있다.
사업재편이라는 일련의 하드웨어 정비 작업을 일단락한 이 부회장이 삼성의 소프트웨어적 변화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삼성전자를 스타트업 기업처럽 빠르게 실행하고 열린 소통문화의 조직으로 바꾸겠다는 ‘스타트업 삼성 컬처혁신’이 대표적이다.
야근과 특근, 비효율적인 회의와 보고 문화를 조직 전반에서 걷어내 새로운 조직문화를 구축하는 것이 '스타트업 삼성'의 지향점이다. 이같은 혁신문화 선포는 아래로부터의 혁신 요구에 따른 것이라는 게 삼성 측의 설명이다.
삼성 안팎에서는 23년 전인 1993년 6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이건희 회장이 설파한 '신경영'을 떠올리는 모습도 있다. 하지만 이 회장의 장기 와병으로 이 부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선 상황에서 혁신문화 선포는 ‘새로운 시대의 삼성’을 알리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여전하다.
삼성이라는 대규모 기업집단의 실질적인 리더로서 이 부회장은 지난 2년 간 활발한 대회 행보를 펼쳤다.
이 회장이 경영 전면에 있을 당시에도 이 부회장은 핵심사업에 포괄적으로 관여하면서 글로벌 기업 대표와 국가 정상들을 만나며 조용히 인맥을 넓혀왔다.
그러나 이 회장의 부재가 길어지면서 이 부회장의 광폭 행보는 도드라지는 모습이다. 국내외를 가리지 않으면서 전자와 금융, 자동차 등 주요 업종의 글로벌 인사들과 협력방안을 논의했다.
'아시아판 다보스포럼'으로 불리는 보아오포럼의 이사로서 3년 연속 참석해 시진핑 국가주석을 방문하고 리커창 중국 총리를 만나는 등 세계경제의 핵심으로 떠오른 중국의 지도자들과 활발히 교류했다.
매년 7월에는 휴양지인 미국 아이다호주 선밸리에서 열리는 앨런앤코 콘퍼런스(선밸리 콘퍼런스)에도 꾸준히 참석하면서 세계 정보기술(IT) 산업과 금융산업을 이끄는 미국 핵심 인사들과 만나왔다.
여기서 애플 최고경영자(CEO) 팀 쿡, 구글 공동 창립자 래리 페이지 등과 함께 있는 모습이 포착됐고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와도 친분을 쌓아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미래 먹거리를 발굴하려는 이 부회장의 고민이 활발한 교류와 외연 확장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아직 현재진행형인 만큼 가시적인 성과나 결과물은 나오지 않고 있다. 제2의 반도체, 제2의 휴대전화와 같은 삼성의 새로운 먹거리가 무엇이 될지도 불투명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아버지인 이 회장과 달리 이 부회장은 아직 삼성 안팎의 현안이나 국내외 경제 상황에 대한 자신의 인식이나 목소리를 외부에 비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때문에 등기이사로서 이 부회장이 그리는 글로벌 삼성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현재 추진하는 변화가 삼성을 어디로 이끌지 가늠하기 쉽지 않다. 이 부회장이 이끄는 ‘제2의 삼성’, ‘뉴(New) 삼성’이 어떻게 변화해 나갈지 주목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미디어펜=김세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