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지호 기자]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이 국회에서 열린 한 세미나에서 위트 있는 발언으로 참석자들의 자본시장 규제 개편에 대한 관심을 촉구해 화제가 되고 있다. 사전에 준비하지 않고 황 회장이 즉흥적으로 한 발언이지만 참석자들에게 강한 임팩트를 줬다는 평가다.
금투협이 최근 추진하고 있는 ‘원칙주의’ 자본시장법 개정에 당위성을 적절한 비유로 호소했다는 것이다. 원칙주의는 현행처럼 사전 규제를 근거로 한 규정주의와는 달리 굵직한 원칙 중심으로 큰 틀만 규정하는 것을 말한다. 자율성이 높아지는 대신 문제가 생길 경우 금융투자사에 대한 과징금 등 사후제재는 강화된다.
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 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미래성장 경제정책 포럼 주최로 열린 ‘규제패러다임 전환’ 국제세미나에선 큰 원칙 테두리 안에서 ‘하지 말 것’을 제외한 나머지를 허용해주는 ‘네거티브’ 규제 방식을 도입하자는 주장이 제기됐다.
현재와 같이 ‘해도 되는 것’을 제한적으로 정해주는 현행 ‘포지티브’ 규제 방식으로는 시장의 성장에 한계가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열린 세미나였다.
이날 세미나에는 미래성장 경제정책포럼 대표인 정우택 의원, 이진복 국회 정무위원장, 조경태 국회 기획재정위원장, 김용태 의원, 윤증현 전 기재부 장관, 최상목 기재부 제1차관을 비롯한 의원 10여명을 비롯해 정부, 법조계 및 금융업계의 인사 500여명이 모였다.
포럼의 대표의원인 정우택 의원은 개회사를 통해 “산업과 상호보완적이며 자체적으로 고부가가치 산업인 금융부문의 규제제도 전환이 절실하다”며 “법률에 의해 일일이 규제 항목이 나열되는 현 방식을 고수한다면, 세계의 기술발전의 속도와 다융합화 된 금융 생태계의 변화를 따라갈 수 없다”고 말했다.
워낙 주요인사가 많이 참여한 탓에 황 회장은 축사에 나서지 못했다. 세미나가 마무리되면서 식사 전에 정우택 의원이 마지막으로 ‘세미나 총평을 해 달라’고 요청하면서 황 회장은 즉흥적으로 참석자들에 발언했다.
황 회장은 어머니를 금융당국에 국회를 아버지에 비유하면서 “모든 어머니들의 관심은 아들이, 딸이 훌륭하게 잘 자라서 국가와 사회, 인류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일 것”이라며 운을 띄웠다.
이어 “어떤 어머니는 자식들을 이렇게 키운다. 너는 아침에 6시에 일어나서 세수는 1분30초를 하고 이빨은 다섯 번을 닦고, 걸어갈 때는 빠른 걸음으로 걸어서, 차 내릴때는 앞뒤를 둘러보고, 선생님 말씀하실 때 졸지 말고, 몇시까지는 학교 마치고, 몇시까지는 어디 학원 가고, 몇시까지는 어디 학원 가고”라며 “이렇게 하루일과 월화수목금토일을 정해주는 어머니가 있다”고 설명했다.
규정 중심의 현행 자본시장법과 금융당국을 꼬집은 것이다.
그는 “어떤 어머니는 ‘나는 너를 사랑한다. 그리고 나는 너의 가능성을 믿어. 너는 네가 하고 싶은 것을 열심히 해 봐. 우리 엄마·아빠가 도와줄게’라고 얘기하는 어머니도 있다”고 원칙주의 자본시장법 개정이 필요성을 에둘러 표현했다.
황 회장은 “어떤 어머니 밑에서 더 좋은 자식들이 클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저희 시장은 자식이라고 생각한다”며 “저희는 사고도 치고 욕심도 있고 돈도 벌고 싶고, 무엇인가 하고 싶어하는 뜨거운 열망으로 가득 찬 시장”이라고 전했다.
이어 “이런 아이들을 잘 가르쳐주고, 키워주는 것은 금융당국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어머니이고 집안의 가훈과 가풍과 집안을 규율하는 큰 제도를 만드는 것은 아버지”라며 “한 가족을 화목하게 이끌어 나가는 데는 아버지, 어머니, 자식의 역할이 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황 회장은 “저희 시장이 착한 자식이 되겠다”며 “좋은 아버지, 좋은 어머니 돼 주시면 감사하겠다”며 발언을 마무리했다.
세미나 참석자들은 황 회장의 말을 듣고 규제산업으로서의 금융에 대한 원칙 중심 규제 체제로의 전환에 적극 공감했다는 후문이다. 특히 ‘어떤 어머니 밑에서 더 좋은 자식들이 클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상대방을 간접 압박하는 표현에서 황 회장의 세련된 센스를 느낄 수 있었다는 것.
한편, 금융당국은 금융투자업계가 주장하는 원칙주의 자본시장법 개정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진 것으로 전해졌다. 원칙 중심으로 자본시장법이 개정되면 법해석이 불분명해지는 데다 자신들의 입지가 좁아지고 사법부가 부각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투자자보호도 현재에 비해 미흡해질 수 있다는 게 금융당국의 논리다.
금투협은 여론을 모아 내년 발의를 거쳐 다음 정부에서 관련 자본시장법 개정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미디어펜=김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