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원우 기자]투자일임형 개인연금 상품 도입 등을 골자로 하는 개인연금법 제정안을 둘러싸고 은행권이 전전긍긍 하고 있다. 300조원 규모에 달하는 거대시장이지만 현행법상 은행들은 투자일임형 상품을 취급할 수 없어 접근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은행권은 당국에 '예외' 조항을 요구하며 시장진입을 타진하고 있지만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회사가 개인의 노후연금을 굴려주는 투자일임형 연금 상품이 이르면 2018년부터 출시된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7일 '개인연금법' 제정안을 입법예고하면서 이와 같은 사실을 알렸다. 제정안에 따르면 본인이 가입한 개인연금 상품정보를 회사별로 원스톱 조회할 수 있는 '개인연금계좌'도 도입될 예정이다.
투자일임형 개인연금 상품 도입 등을 골자로 하는 개인연금법 제정안을 둘러싸고 은행권이 전전긍긍 하고 있다. /미디어펜
개인연금 적립금은 2012년 말 215조 9800억 원 수준에서 작년 말 292조 1600억 원으로 3년 새 35.3% 가량 급증하고 있다. 개인연금에 대한 관심이 날로 높아지고 있지만 현행법상 개인연금은 세법과 은행법, 자본시장법, 보험업법 등에서 나눠 다루고 있어 소비자로서는 거리감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이에 금융당국은 개인연금법 제정을 통해 금융소비자 효용을 증대시키기로 했다. 금융위 한 관계자는 개인연금법에 대해 "시장변화와 소비자 복지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차원에서 추진된 법"이라며 "일임형 상품이 확산되면 개인연금 상품의 운용수익률이 높아져 노후 준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에 마련된 제정안은 내달 19일까지 입법예고를 거친 뒤 규제개혁위원회와 법제처 심사, 차관‧국무회의 등을 거쳐 국회로 제출된다. 국회에서 법이 통과되면 1년 뒤 공표‧시행된다.
개인연금법 제정안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투자일임형 상품 도입이다. 금융회사가 가입자의 투자 성향에 적합한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연금 자산을 굴려주는 상품이다. 현재로써는 개인연금 상품이 보험, 신탁, 펀드 밖에 없어 다양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그러나 투자일임형 상품이 허용되면 일임형 상품에 강점을 가지고 있는 증권사들이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는 상품을 대거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반면 은행들은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다. 현행법상 은행들은 투자일임형 상품을 판매할 수 없기 때문이다. 300조원에 육박하는 개인연금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방법이 지금으로썬 묘연한 셈이다. 문제의 심각성에 공감한 은행들은 이달 말까지 개인연금법 제정안에 비판적인 입장을 전달하기 위해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업계 분위기를 보면 무작정 제정안에 반대를 하기보다는 은행들도 같이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이 선호되고 있다. 한 관계자는 "올해 초 ISA(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 때 그랬던 것처럼 개인연금 일임형 상품에 한해서 은행들의 시장진입을 허용하는 방안이 강력하게 부상하고 있다"며 분위기를 전했다.
은행들의 참여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의견도 있다. 특히 ISA에 한해 허용된 일임형 상품 판매에서 은행들이 충분한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의견이 많다. 금융업계 한 관계자는 "수익률 산정에서 오류가 나고 대다수가 깡통계좌로 판명 나는 등 일임형 상품에 대한 은행들의 전문성에는 의문스러운 부분이 많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실제로 지난 8월 기업은행의 ISA 수익률 공시 오류로 인해 업계에 작지 않은 파장이 야기된 바 있다. 기업은행 사례를 계기로 금융당국은 수익률 일제 점검에 나섰고, 적지 않은 금융사들이 수익률 산정에 오류를 범하고 있었음이 드러나 혼란이 가중됐다.
ISA 사례만으로 은행들의 개인연금 시장에 진입하는 걸 막는 건 무리수라는 재반론도 있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당시 수익률 오류는 은행 뿐 아니라 증권사에서도 만연했다는 점이 추가조사를 통해 드러나지 않았느냐"면서 "은행이 금융소비자들에게 가장 친숙한 금융기관인 만큼 은행들의 참여를 허용해 주는 것이 개인연금법 취지에도 맞다"고 강조했다.
[미디어펜=이원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