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게이트' 연루 의혹을 사고 있는 대기업에 대한 검찰의 압박이 거세지면서 권력형 비리의 희생양인 대기업이 마치 그 정점에 있는 것으로 비춰져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재계에서는 박근혜 정부를 절체절명의 위기로 몰아넣은 미르와 K스포츠 재단 모금 사건과 관련, 대기업을 향한 검찰의 수사가 무리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최순실 씨 딸 정유라 특혜지원 의혹과 관련해 검찰이 대한승마협회, 한국마사회 등 9곳에 대해 압수수색을 실시한 지난 8일 서울 송파구 대한승마협회 사무실로 승마협회 관련 자료가 옮겨지고 있다. / 연합뉴스
현재보다 앞으로가 더 걱정인 상황에서 대기업에 대한 옥죄기식 수사는 한국 경제의 앞날을 가로막고 있는 만큼, 검찰의 칼날이 사태의 본질에 집중해야 한다는 주장이 탄력을 받고 있다.
삼성의 경우 스포츠단 관련자 등이 줄 소환된데 이어 18일 참고인 신분으로 장충기 사장이 검찰에 출두하면서 마치 이번 최순실 게이트 의혹의 중심에 선 모양새로 비춰지고 있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이번 사태 역시 과거에도 정권이 대기업 위에 군림하며 압박을 되풀이하는 구태적 악순환이 낳은 결과라는 지적이다.
청년들이 가장 입사하고 싶은 기업 중 하나인 삼성전자는 세계적인 기업이고, 한국 산업계의 선도 기업으로 꼽힌다. 삼성그룹 전체 매출은 지난해 270조원 이상으로 국가 예산의 70%와 맞먹는 규모다.
삼성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는데도 이 같은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한 것은 비단 삼성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게 재계의 일반적인 견해다.
삼성은 최근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마무리했다. 이에 앞서 삼성전자 지분율이 0.59%에 불과했던 이 부회장은 경영권 확보를 위해 삼성으로서는 당국이나 권력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 중요했을 것이라는 게 재계의 중론이다.
각종 명분을 내세워 기업들로부터 자금을 걷는 일은 정권마다 반복적으로 있어 왔다. 기업은 돈을 뜯기지만 그 대가로 이권이나 특혜를 챙기는 정경유착의 악습이 대한민국에서 수십 년째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도 한국을 대표하는 19개 그룹의 53개 기업이 참여해 두 재단에 774억원을 냈다. 그룹당 적게는 수억 원에서 많게는 200억 원이 넘는 돈이 순식간에 걷혔다. 권력의 힘이 작용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지난 8일 서울 송파구 대한승마협회 사무실을 검찰이 압수수색, 수사관들이 압수품을 차량에 싣고 있다. / 연합뉴스
정권의 관심 사업에 기업 기부나 출연을 강제한 사례는 과거에도 수두룩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1983년 아웅산 폭탄테러 유족을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설립한 일해재단이 대표적이다. 이 재단은 3년간 대기업들로부터 598억 원을 걷었다.
그러나 1988년 5공 비리 청문회에서 정권 실세가 재단 출연을 강제했다는 기업인들의 증언이 이어졌고, 재단의 실제 목적이 전 전 대통령의 퇴임 이후를 보장하기 위해서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각종 사업에 대기업 기부와 출연이 이어졌다. 기업들은 미르·K스포츠 재단에 출연한 774억 원 외에 청년희망펀드 880억 원, 지능정보기술연구원 210억 원, 한국인터넷광고재단 200억 원, 중소상공인희망재단 100억 원 등을 내놨다.
특히 청년희망펀드는 박 대통령이 1호 기부자로 나선 뒤 기업과 재벌 총수들의 기부가 줄지었다.
또 창조경제의 핵심 사업인 창조경제혁신센터 17곳 중 15곳에 대기업이 전담기업으로 참여해 투자금을 부담하면서 '할당' 논란이 일었다.
결과적으로 기업이 청와대 등 권력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자'라는 점에서 이번 재단 설립과 관련해서는 피해자로 봐야 한다는 시각이 보편적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상 재단 설립을 먼저 제안한 쪽이 안종범 전 수석이나 이승철 전경련 상근부회장이고, 청와대에 밉보이길 두려워한 기업들이 서둘러 기금을 끌어다 낸 모양새였다는 점에서 기업을 피해자로 보는 시각은 어찌보면 당연해 보인다.
한국 경제를 떠받치는 기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삼성전자, 현대차 등 대기업의 수익성이 크게 악화되는 상황에서 최근 검찰의 무리한 수사는 경제 전반에 걸쳐 위기감을 조성하고 있다.
기업경제가 위태로운 상황에서 최순실 게이트의 파장이 대기업을 더 심각한 위기에 빠트리고, 다른 기업들의 성장동력마저도 약화시키지 않기 위해서는 수사당국이 이번 사태의 본질에 충실해야한다.
[미디어펜=김세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