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세헌 기자]최순실 게이트 사건을 수사중인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가 29일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대기업들의 미르·K스포츠 재단 출연금에 대해 ‘제3자 뇌물공여’ 혐의를 적용하지 않은 것에 대해 재계는 일단 안도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일부 기업이 연루된 의혹에 대한 검찰수사가 계속 진행 중인 데다 앞으로 국회 국정조사와 특검수사가 예정돼 있는 만큼 여전히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있다.
검찰은 이날 발표에서 53개 기업이 미르·K스포츠 재단에 제공한 774억원을 대가성이 있는 뇌물이 아니라 강압에 의한 출연금으로 판단했다. 롯데, 현대차, 포스코, KT, GKL 등 5개 기업명을 언급하면서 최순실씨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혐의를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강요, 강요미수로 발표한 것과 관련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독대한 9개 기업 총수는 물론 대다수 기업이 뇌물공여 혐의에 대한 부담을 덜게 된 것이다.
검찰은 각종 인허·가 등 행정처분이나 세무조사를 비롯한 사정권 발동 등에 광범위한 권한을 지닌 행정부 수반이자 국가원수 박근혜 대통령의 지위,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경우 뒤따를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 등이 기업들로 하여금 출연의무를 강제하게 했다고 판단했다.
앞으로 검찰은 재단 출연금으로 흘러든 자금을 노린 진범이 누구인지 보강수사를 통해 밝혀낼 방침이다. 박 대통령과 최씨의 관계, 권력과 재계의 뒷거래가 드러날 때 대가성을 문제삼아 ‘뇌물죄’ 적용이 가능하다.
최순실 게이트 사건을 수사중인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이 29일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대기업들의 미르·K스포츠 재단 출연금에 대해 ‘제3자 뇌물공여’ 혐의를 적용하지 않은 것에 대해 재계는 일단 안도하는 모습이다./연합뉴스
지금까지 검찰은 재계로부터 486억원을 출연받은 미르재단의 기금 90%가 당초 기본재산으로 묶여 있다가 이후 80%가 자유롭게 유용될 수 있는 운영재산으로 변경된 사실을 밝혀냈다. 최씨가 개인회사 더블루K를 통해 재단 자금을 빼내려다 수포로 돌아간 정황도 포착했다. 다만 아직까지 재계의 부정한 청탁 등을 입증할 단서 확보는 부족한 상황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삼성의 최씨 딸 정유라씨 승마 관련 지원 등 대다수 의혹이 계속 수사 중인데다, 향후 특검 수사에서 출연금의 대가성에 대한 조사가 다시 진행될 수도 있기 때문에 대다수 기업 측에서는 “한동안은 긴장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상황을 주시하겠다는 반응이 나왔다.
특히 최씨 회사인 비덱에 승마 지원과 관련해 35억원을 송금한 것으로 알려진 삼성 측에서는 당초 중간 수사결과에 승마와 관련된 내용이 포함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예상했다는 반응이다. 따라서 향후 수사 방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재계에서는 최순실 사태가 터지자마자 역대 정권마다 이어져온 대로 정부가 대기업 위에 군림하며 압박을 되풀이하는 구태적 악순환이 낳은 결과라고 지적해왔다. 삼성그룹의 경우 전체 매출이 지난해 270조원 이상으로 국가 예산의 70%와 맞먹는 규모로 성장했는데도 이 같은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한 것은 정권마다 반복되어온 정경유착의 악습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번에도 한국을 대표하는 19개 그룹의 53개 기업이 참여해 두 재단에 774억원을 냈다. 그룹당 적게는 수억 원에서 많게는 200억 원이 넘는 돈이 순식간에 걷혔다. 권력의 힘이 작용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결과적으로 기업이 청와대 등 권력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자라는 점에서 이번 재단 설립과 관련해서는 피해자로 봐야 한다는 시각이 보편적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을 보면 안종범 청와대 수석을 앞세워 정권차원에서 재단 설립을 먼저 제안했고, 이를 기업들이 외면한다는 것은 사실상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재계에서는 다음 달 초순으로 예상되는 특별검찰수사가 활동을 개시하기 전까지 검찰이 2~3주 정도 더 수사를 진행할 것으로 예상하면서 향후 추이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또 국회에서 국정조사가 진행되면 이미 검찰에서 조사를 받고 돌아온 기업인들이 국조특위에 또 다시 증인으로 줄줄이 불려 나가야 할 사태가 초래될 수 있어 우려하고 있다.
따라서 대기업의 기금 출연과 관련한 의혹은 이번 검찰 수사에서 어느정도 드러난 만큼 추가로 진행될 기업에 대한 특검 수사나 국정 조사는 최소한의 확인 절차 수준에 그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특히 국정조사에서 대기업의 총수나 CEO 등을 무차별적으로 증인으로 채택해 '망신주기식' 심문을 하는 것은 최대한 자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글로벌 경쟁 시장에서 이들 기업인들의 신인도 하락은 국가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엄청난 타격으로 이어질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편, 대기업들의 재단 출연모금 과정에 관여한 전경련은 중간 수사결과 발표에 대해 공식 코멘트를 하지 않은 채 상황을 계속 지켜보겠다는 입장만 보였다.
[미디어펜=김세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