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지호 기자] 지난 1987년 상장된 범현대가 기업 한국프랜지가 3세 경영권 승계를 위한 ‘발판’으로 활용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비슷한 비상장 계열사인 서한산업을 만든 뒤 이 회사 지분을 넘기는 일종의 편법을 통해 3세로의 경영권 승계를 마무리했다는 지적이다. 한국프랜지의 주가와 실적은 3세로 경영권이 넘어가면서 쪼그라들었다.
한국프랜지는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매제인 전남 함평 출신 고 김영주 전 한국프랜지 명예회장이 지난 1974년 창업한 회사다. 현재는 그 아들인 김윤수 회장(23.49%)이 최대주주다. 김 회장은 김용석, 김용범, 김용준 등 자녀 3남을 두고 있다.
그런데 한국프랜지는 김 회장의 호인 ‘서한’을 따서 1996년 느닷없이 서한산업이라는 회사를 세운다. 이 회사는 현대·기아자동차 및 GM, 포드 등 완성차 업체에 액슬, 하프 샤프트 등 주요 자동차 부품을 공급하는 한국프랜지와 큰 차이가 없는 회사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한국프랜지의 자회사인 서한ENP, 서한NTN베어링, 서한글로비즈, 서한Warner, 엠테스, 서한오토 USA, 서한NTN USA, 서한NTN북경, ubc울산방송 등을 모아 서한그룹도 만들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지주사 역할을 하던 한국프랜지를 중심으로 경영권 승계가 이뤄질 것이라는 데 이견이 없었다. 하지만 상황은 변했다.
2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4월말 기준 서한산업의 최대주주는 김 회장의 장남인 김용석(58.33%) 대표다. 김 대표의 동생인 김용범, 김용준 두 형제가 각각 13.89%씩 갖고 있다. 이들 3형제의 지분율을 합치면 86.11%에 달한다. 설립 당시 94%나 됐던 한국프랜지의 지분율은 13.89%로 급감했다.
서한산업은 풍력발전부품을 제조하는 계열사인 서한ENP(29.80%), 서한NTN베어링(35.00%) 등의 서한그룹 주요 계열사 최대주주다. 사실상 한국프랜지를 밀어내고 서한그룹의 지주회사로 등극했다. 즉, 별다른 상속세 부담 없이 별도의 비상장 회사를 통해 그룹의 경영권은 김 회장에서 사실상 장남 김용석 대표를 비롯한 3형제로 양도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프랜지와 주주들은 갖은 수모를 다 겪으면서 희생을 치렀다. 한 때 액면가 5000원 대비 10%대의 고배당주로 이름을 떨쳤지만 지난 2013년(2012년말 주주기준)에서는 무배당을 선언해 주주들의 원성을 샀다.
한국프랜지의 지원사에 대한 ‘살신성인’은 실적을 통해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지난 2012년 한국프랜지는 연결 기준 9542억원의 매출액과 128억원의 순이익을 올렸지만 개별로는 매출액 6466억원에 순이익은 2억원에 그쳤다. 당시 회사 측이 밝힌 사유는 서한ENP 등 자회사 합병 과정에서 손실이 났다는 것이었다.
지난해 역시 한국프랜지의 연결 기준 매출액은 1조1324억원, 순이익은 142억원에 달했지만 개별 기준으로는 매출액 8333억원에 순이익은 절반인 68억원 수준에 그쳤다. 한국프랜지가 서한그룹의 주력회사에서 밀려나고 있는 것이다. 반면 서한산업은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액 5084억원 순이익 33억원을 기록했다.
이처럼 한국프랜지가 서한그룹의 중심에서 서서히 멀어지면서 주가 역시 부진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2014년 7월 29일 장중 2만6400원까지 치솟았던 주가는 전일 종가가 반토막 수준인 1만3400원에 그치고 있다.
전문가들은 비상장 계열사를 통한 경영권 편법 승계에 대해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
조명현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원장은 “상속세를 전부 부담하고서는 자식에 경영권을 온전하게 물려주기 어렵기 때문에 이 같은 편법을 사용하는 것”이라며 “외국에 비해 우리나라 상속세가 높은 편이기는 하지만 자식에게만 기업 경영권을 물려주려고 하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채이배 국민의당 의원실 관계자는 “비상장 계열사를 이용한 편법 상속은 현재는 개정 상법과 공정거래법으로 규제를 받아 예전 만큼 쉽지는 않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민사상 해결은 한계가 있는 만큼 형사 처벌을 포함한 보다 적극적인 방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김우찬 고려대 경영대 교수(경제개혁연구소장)은 “현재 일감몰아주기에 대한 규제는 있지만 비상장회사 설립을 통한 지분 편법 승계에 대한 처벌 조항은 없다”며 “민사소송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형법에 처벌 조항을 마련하거나 배임·횡령죄를 적용하는 것을 고려해야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민사적으로도 주주대표소송 등에서 손해에 대한 입증책임을 회사 쪽으로 넘기는 등의 조치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미디어펜=김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