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넘게 진행되는 최순실 게이트에서 우리가 참담한 마음으로 지켜보는 건 국가리더십의 공백만이 아니다. 대한민국이 송두리째 떠내려가고 있는 듯한 모습에 우리는 소스라친다. 국가수반인 대통령과, 실질적인 권력기관인 검찰조작이 치고받는 게 우선 그렇다.
그와 별도로 같은 헌법기관인 대통령과 국회가 탄핵을 둘러싸고 최악의 관계에 빠져든 것도 우려스럽지만, 진짜 걱정은 언론 쪽이다. 매일, 아니 실시간으로 악다구니를 치는 그들은 냉정한 관찰자이자 판관(判官)이기 이전에 정치권-검찰에 못지않게 최순실 게이트의 핵심 플레이어의 하나로 뛰고 있다.
그게 8년 전과 사뭇 다른 양상이다. 8년 전 광우병 때는 그래도 조중동이 버텨줬고, 종편이 탄생하기 이전 상황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언론의 에덴시대였다. 당시와 썩 달라진 지금 조중동은 부패기득권 세력(조선일보)으로 변질된 채 대국민 선동에 앞장서고 있지 않은가.
정말 역겨운 것은 중앙일보 지면인데, 최순실 게이트를 촉발시킨 손석희의 jtbc 이후 또 차례 바뀌었다. 초(超)법적인 대통령 권력 탈취 음모를 두고 명예혁명이 어떻고 하는 허튼 수작과 함께 그들은 지난 한 달 매일같이 날뛰는 지면 제작에 몰두한다. 그나마 균형을 잡는 건 KBS와 MBC 지상파 두 곳, 일간지로는 한국경제 정도가 꼽힐 뿐이다.
선동언론 원조는 조선시대의 삼사(三司)
여기에 종편 4개사가 실시간으로 난리법석이고, 노영(勞營)언론 소리를 피할 수 없는 연합뉴스와 YTN까지 깨춤을 추니 상황은 정말 안 좋다. 그래서 필자인 나는 일찌감치 최순실 게이트를 '언론의 난(亂)'이라고 규정했는데, 지금도 판단에 전혀 변함없다.
세상이 다 알 듯 역대 정권 아래서 측근 비리가 있었고, 최순실 건도 그 중 하나다. 그걸 밝히는 건 언론의 의무인 것도 자명하다. 하지만 균형 감각이 중요하며, 전체를 보는 시야가 핵심이다. 지금처럼 헌법기관인 대통령을 능멸 내지 조롱하며 마녀사냥을 반복하는 나머지 최악의 혁명전야 상황을 연출한 건 언론의 정도(正道)에서 크게 멀다.
그런 모습을 선동언론을 넘어 망국언론이라고 나는 몇해 전부터 주장해왔는데, 최소한 조중동 정도는 메이저답게 언론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오길 새삼 촉구한다. 그게 큰 언론이고, 이 나라 대한민국 역사에 책임지는 매체 활동이라는 건 두 말할 필요도 없다.
북핵 위기에 따른 엄중한 안보환경을 감안하면 더욱 그러하다. 또 추락하는 경제상황도 다른 곳에 에너지를 낭비할 수 없게 만드는 요인이다. 이 와중에 제대로 된 국가의제-사회의제를 제시해야 할 언론의 엉뚱한 짓은 실로 끔찍할 뿐이다. 안타깝게도 망국언론의 몰골은 어디서 많이 보아온 모습이라는 점도 기회에 지적하려 한다. 건강한 실시구시의 접근 대신 도덕적 명분을 앞세워 정치판을 몰아가는 못난 DNA는 조선조에는 삼사(三司)로 나타났다.
최순실 데이트를 놓고 헌법기관인 대통령과 국회가 탄핵을 둘러싸고 최악의 관계에 빠져들었다. 문제는 팩트 전달보다 언론이 스스로 자기 덫에 빠져 여론을 호도하고 선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언론 현주소가 위태롭고 위험하고 수상하다. /사진=연합뉴스
삼사, 즉 사간원(언론), 사헌부(검찰), 홍문관 유생(지식인)이 정국을 흔들다가 끝내 시들어간 게 조선조의 운명이 아니었던가? 지금 날뛰는 언론, 무책임한 지식인 그룹 그리고 분노하는 민심이 무섭다며 임명권자에 대드는 못난‘혁명 검찰’의 등장이란 과연 우연뿐일까?
맞다. 한국사회 언론이 저지른 가장 큰 문제점은 밑도 끝도 없이 분노하는 민심을 만들어낸 죄라고 나는 감히 판단한다. 검찰총장 김수남의 그 거대조직은 지난 주말 박근혜 대통령을 입건하면서, 변호사 유영하의 지적처럼 현직 여성대통령을 향해 무참한 인격살인을 반복했다. 그 앞뒤 배경은 우리가 다 안다.
제대로 된 수사와 사법정의를 세우는 것만큼 분노하는 민심에 묻어가는 게 안전하겠다는 판단을 저들은 했을 것이다. 임기 말의 대통령을 밟고 넘어가는 게 조직의 안전에도 좋겠다고 머리를 굴렀을 것이다. 어쨌거나 지금 한국사회를 휩쓸고 있는 분노하는 민심을 만들어낸 진앙지가 언론이란 사실엔 변함이 없다.
"언론에 의해 선동된 민심"판단에 변함없다
그래서 나는 지금의 여론, 그리고 광화문 총궐기에 쏟아져 나오는 인파를 두고 "(언론에 의해) 선동되거나 조작된 민심"으로 치부하면서, 그런 종류의 "비이성적인 광기의 히스테리"를 경계했다. 그런 글을 보름 전에 미디어펜 이 지면에 발표한 건 책임있는 언론인으로서 너무도 당연한 행위였다. 조금도 후회 없다.
그건 표현의 자유 차원을 넘어 실은 다급한 경고음이었다. 세상이 무책임한 광기로 넘쳐나고, 아찔한 안보 환경에 처해있는 조국의 현실을 놓고 누군가는 소수의견이라도 밝혀야 하지 않을까? 놀랍게도 나의 이런 글과 말을 두고 적지 않은 이들이 극우의 목소리라고 매도했다.
혹자는 일방적인 박근혜 옹호의 목소리 따위는 듣기도 싫다며 손사래를 치기도 했으며, 공개적으로 규탄하기도 했다. 기회에 상식을 재확인하자. 민주주의는 다수결과 법치라는 두 개의 바퀴로 굴러간다.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법적 절차 따위를 완전히 무시한 채 ‘분노하는 민심’이란, 언론과 우리가 함께 만들어낸 괴물에 압도된 채 현직 대통령을 끌어내 그 앞에 대령하는 것이 정의롭고 민주주의답다고 외친다.
그거야말로 거대한 실수다. 누군들 현직 대통령의 일부 사려 깊지 못한 행동에 놀라고 당혹하지 않았을까? 나 또한 마찬가지다. 또 대통령도 죄가 있다면 규명돼야 하고, 벌을 받아 마땅하다는 것도 분명하다. 하지만 적법절차가 핵심이다. 국민 모두와 마찬가지로 그도 법의 보호를 받는다.
그걸 송두리째 무시하려 하는 건 세상에 없는 폭민(暴民)정치에 다름 아니며, 동시에 분노하는 민심이란 괴물을 만들어낸 선동언론 앞에 굴복하는 비이성적 태도라는 경고가 내 글의 취지다. 이 글을 시작하며 나는 "대한민국이 송두리째 떠내려가고 있는 듯한 모습에 소스라친다"고 했지만, 그렇게 만든 건 제3자가 아니다.
어리석은데다가 미욱하기까지 한 우리가 그런 바보짓을 반복하고 있다는 걸 새삼 지적하려 한다. 누구나 그랬겠지만, 지난 한 달 내내 정말 앞이 안 보였고 고통스러웠다. 새벽이 오기 전 가장 어둡다는 것, 이제 어둠이 서서히 거치면서 참과 거짓, 진실과 선동이 가려지길 새삼 고대한다. 그리고 그 판명 작업에서 뒤로 물러서지 않을 것임을 다짐한다. /조우석 주필
[조우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