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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동·음모·여론재판…마리 앙투아네트와 박근혜 대통령

2016-11-24 16:00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한 여자를 "희대의 악녀"로 만들어버린 사건이 있었다. 귀하게 자랐지만 비슷한 환경의 다른 사람들에 비해 검소했을 뿐만 아니라, 베풀 줄도 알았던 그녀를 천하의 사치녀이자, 갑질녀로, 심지어 색정광으로 만들었다. 그녀는 자신의 아들과 근친상간했다는 죄명과 더불어 갖가지 날조된 혐의로 처형당했다. 그녀의 8살짜리 아들은 독방에 갇혀 강제로 술을 먹어가며 세뇌 당했고, 결국 그러한 진술을 했다.

수많은 악행으로도 모자라 8살짜리 아들과 간통했다는 혐의를 쓴 그녀는 삭발당한 채 마차에 실려 도시를 한 바퀴 돌며 모욕을 당한 후 목이 잘려 죽었다. 그녀가 처형되고 나자 쓸모가 없어진 아들은 독방에 버려졌다. 결국 몇 년 후 고작 10살의 나이로 폐렴과 영양실조로 인해 독방에서 사망한다.

누구 이야기냐고? 마리 앙투아네트의 이야기다. 사치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여자이지만, 수많은 학자들이 기록에 따르면 사실 그녀는 다른 왕비들에 비해 검소했음을 지적한다. 그녀의 "빵이 없다고요? 그럼 케이크(브리오슈)를 먹으라 하세요!"라는 유명한 발언도 꾸며낸 이야기다. 도대체 왜 이런 거짓 날조로 한 여자를 철저히 파괴한 걸까.

지금 한국의 언론은 자유로운 견제를 넘어 방종에 가까운 수준으로 활보하고 있다. 언론만 있나? 당장 ‘공모’라는 민감한 표현까지 쓰며 대통령을 피의자로 접근하고 있는 게 수사기관인데도 국민여론이 야단을 치고 있다./사진=(좌)연합뉴스, (우)청와대 홈페이지



혁명의 정당성 때문이다. 프랑스 혁명은 평민들의 인권, 그들의 정의에 대한 갈망 때문에 발생했고 귀족을 깨부수며 자유와 평등, 박애를 성취한 것처럼 꾸며졌지만, 혁명의 실상은 그들이 말하는 이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는 프랑스 혁명을 관찰하며 개탄한 에드먼드 버크의 글에서 잘 드러난다. 그들이 외치는 '정의'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혁명군들. 그 군중심리의 한복판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도덕적 타락의 민낯을 지적했다.

실제로 프랑스 혁명은 잔혹한 학살과 부당한 범죄의 온상이었다. 혁명군들은 혁명의 적으로 간주된 성직자와 귀족들을 갖가지 잔혹한 방법으로 살해했고, 강간했으며, 약탈했다. 광장은 광기의 공간이었다. 분명 결과론적으로 보면 프랑스 혁명 덕에 봉건제도가 사라지기는 했지만, 귀족, 성직자, 권력자라는 이유만으로 죄를 따져보지도 않고 사람을 처참하게 살육하고 사냥했던 그 시기는 절대 정의롭지 않았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근대 민주주의를 정착시킨 영국의 마그나 카르타에 비하면 더더욱.

2016년 대한민국. 청와대에서 난교파티가 있었다며, 굿판 설, 인신공양 설에 이어 또 황당한 이야기가 돌고 있다.

프랑스 혁명의 그것과 참 닮아있지 않나? 박근혜 대통령을 오래된 이야기에서나 나올 법한 절대악으로 만들기 위한 연극적 요소들이다. '분노한 군중들'. 그것이 혁명의 전제조건이기 때문이다. 

싸울 대상을 악마화 함으로써 분노를 일으키고, 거짓과 날조로 자신들의 행동을 선이라 포장하는 혁명의 논리. 그래서 혁명은 구시대적이고, 폭력적이고, 미개하며, 힘과 피와 머릿수의 논리로 모든 걸 해결하려 하는 지극히 비인간적인 행위다.

오히려 엄정해야 할 사법체계가 그 '민의'라는 것에 흔들리게 되는 것이 걱정이다. 없는 죄까지 부풀려서 단죄를 하려는 순간 나에게도 그 죄가 스며들게 된다. 그런 것은 정의가 아니다. 그래서 나는 혁명을 거부한다./사진=연합뉴스



오해하지 마라. 나 역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실망감과 배신감에 분노하고 있다. 박 대통령을 믿고 내 표를 줬고, 박근혜 정권을 지지했다. 그런데 배후에서 웬 민간인이 국정을 농단한 혐의가 드러났다. 그야말로 뒤통수다. 화가 안 나는 게 이상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기다리고 있다. 온갖 의혹과 추측이 난무한 가운데 하루빨리 검찰 수사결과가 나오기를. 법이 그 죄들을 낱낱이 드러내기를. 법의 엄정한 심판을 받기를. 그렇게 정의가 구현되기를.

제발 권력자라 사법기관이 제대로 움직이지 못할 거라는 말은 하지 말자. 권력에 의해 사법기관이 제 기능을 못할 때를 대비해 민주주의는 다양한 안전장치를 만들어 놨다. 대표적인 것이 언론의 견제다.

지금 한국의 언론은 자유로운 견제를 넘어 방종에 가까운 수준으로 활보하고 있다. 언론만 있나? 당장 ‘공모’라는 민감한 표현까지 쓰며 대통령을 피의자로 접근하고 있는 게 수사기관인데도 국민여론이 야단을 치고 있다. 나를 포함해 온 국민이 특검의 행보를 감시하고 있는 세상이다. 

오히려 엄정해야 할 사법체계가 그 '민의'라는 것에 흔들리게 되는 것이 걱정이다. 없는 죄까지 부풀려서 단죄를 하려는 순간 나에게도 그 죄가 스며들게 된다. 그런 것은 정의가 아니다. 그래서 나는 혁명을 거부한다. 거짓과 날조, 선동과 음모론을 비판한다. 나는 사법정의를 원한다. 혁명의 첫 희생양은 악이 아니다. 인간성이다. /우원재 리버티타임즈 대표

[우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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