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에 난생 처음으로 올 기회가 생겼다. 저 영화 속의 판타지처럼 느껴졌던 곳이 이렇게 엄중히 내 앞에 다가왔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이 나라에서 40년이 넘게 살았는데 대한민국 분단을 상징하는 이곳에 난생 처음 왔다는 사실이 참 신기하다. 우리 지금 뭐하고 있나. 이 땅의 5천만 국민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떻게 살고 있나. 내가 누리고 일상을 보내는 이 나라가 어디에서 왔고 누가 지키고 있나. 왜 우리는 이 분단의 현장을 이렇게도 외면하며 살고 있나 복잡한 심정이 든다.
수 십년 판문점을 외롭게 두는 동안 많은 것이 달라졌다
안보를 말하면 꼰대가 되고 적의 존재를 말하면 종북몰이꾼 되는 나라가 됐다. 저 이상한 나라 북한에 대해 조금이라도 나쁘게 이야기하면 70년대 반공시절의 똘이장군이 되어 매도를 당한다. 요즘 세상에 빨갱이가 어딨냐 간첩이 어딨냐, 몸으로는 자유시장경제의 단물을 누리면서 입으로는 모두가 똑같이 나누는 사회주의 공산주의성 발언들을 해야 개념인이 되는 세상이 됐다.
이 대세에 반하는 사람들은 사회적인 '반동'으로 낙인 찍힌다. 대중들에게 만화로 사회주의 이론의 허구성, 자유주의 시장경제의 당위성을 이야기하며 사는 난 당연히 극우수꼴 딱지가 붙은 채 매일 악플과 욕이 달리며 살고 있다.
자유시장경제 나라에서 자유시장경제가 맞다는 생각을 갖는 순간부터 마치 일제 치하에서 독립운동을 하듯 자신의 성향을 숨기며 살아야 하는 분위기가 됐다. 표현의 자유를 탄압하는 현상은 과거 군사독재 시절보다 더 심해졌고, 창작자들은 대중의 눈치를 보기에 급급한 실정이며 거의 모든 문화예술은 민중(?)의 눈치를 보며 한쪽으로만 흐른다.
최근의 광화문 광장 시위를 보면 위와 같은 현상이 얼마나 우리 곁에 다가와 있는지 느껴진다. 물론 이번 사태는 대통령이 원인 제공을 한 것이 맞다. 그러나 그 후에 펼쳐지는 현상은 이미 이 사건의 본질을 넘어 민중독재의 광풍 속으로 온 나라가 휩쓸려 가는 느낌이다.
그녀의 10만큼의 잘못이 100이 되고 1,000이 되면서 온갖 입에 담지도 못할 추문이 의혹이라는 이름으로 오명이 덧씌워지며 아님말고식 인민재판이 벌어진다. 이제는 목을 매단 대통령의 형상이 등장했고, 체제를 바꾸자, 사회주의가 답이다, 이석기를 석방하라는 구호가 버젓이 붙고 급기야는 야당 지도자가 나서서 이땅의 보수들을 다 불태워버리자는 말을 하며 선동을 한다.
판문점이 세워지던 당시, 우리나라는 더 암울했다. 지금보다 더 캄캄하고 앞이 안보이던 시기였다. 가난과 이념투쟁, 북의 도발과 위협 속에서도 꿋꿋하게 이 나라를 만들어냈다./사진=미디어펜
이 모든 것의 원인을 난 우리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적당히 타협하고 적당히 양보하며 좋은게 좋은거라고 물러서다가 이 나라가 이렇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최소한 지켜야 할 선마저 한발 두발 물러서다 통제 불능의 민중독재 세력들, 사회주의 망령들, 언더도그마에 기댄 좌성향 기득권들이 싹트고 자라고 자라 이제는 대한민국의 근간을 흔들고 있는 실정이다.
혼란의 시대, 답답하고 무섭고 안타까운 시대. 미래가 점점 암울해지는 대한민국. 이 나라를 떠나 나와 내 가족이 살 길을 찾아야 할지 하루에도 열번씩 고민이 되지만 그래도 여길 떠나지는 않으련다. 아직은 쿨하게 받아들이고 준비할 수 있고 생각한다. 지금 세상이 이렇다는 걸 직시하고 이에 잘 대처할 생각을 해야 한다. 도망치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라고 판문점은 나에게 요구 하고 있다.
판문점이 세워지던 당시, 우리나라는 더 암울했다. 지금보다 더 캄캄하고 앞이 안보이던 시기였다. 가난과 이념투쟁, 북의 도발과 위협 속에서도 꿋꿋하게 이 나라를 만들어냈다. 그때라고 비겁한 사람들이 없었을까. 그때라고 혼란이 없었을까.
판문점이 등장하기 전에도 마찬가지다. 해방 후 온 나라가 뒤숭숭하던 시기와 끔찍한 전쟁의 시기도 우리는 견뎠다. 지금보다 훨씬 암울하고 캄캄하던 터널도 다 지나온 우리인데 지금의 혼란 정도야 충분히 극복해야 하지 않을까. 여기서도 희망을 찾고, 동지들을 모아서 또 준비해서 실행해야 하지 않을까. 난 다 알고 다 보이는데 어찌 외면하고 도망갈 수 있을까.
지난 수천년의 힘든 시기를 넘어 세계 속에 반짝 빛났던 한반도가 이제 다시 시험대에 섰다. 판문점이 상징하는 현실을 직시하는 사람들이 이제는 소수가 됐다. 난 소수라서 좋다. 내가 할거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내가 할 수 있는 걸 할거다. 대세에 휩쓸리지 않을 것이고, 비겁하지 않을 것이며, 현실과 타협하지 않을 것이다. 최소한의 지킬 것을 지키면서 이제부터 하나씩 만들어 나갈 거다. 판문점이 없어지는 자유통일 그날까지 희망을 잃지 말자. /윤서인 만화가
최근의 광화문 광장 시위를 보면 대통령이 원인 제공을 했으나 그 후에 펼쳐지는 현상은 사건의 본질을 넘어 민중독재의 광풍 속으로 온 나라가 휩쓸려 가는 느낌이다. 의혹이라는 이름으로 오명이 덧씌워지며 아님말고식 인민재판이 벌어진다./사진=연합뉴스
(이 글은 29일 자유경제원이 DMZ 생태관광지원센터 교육장에서 개최한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 이념전쟁에서 지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패널로 나선 윤서인 만화가가 발표한 발제문 전문이다.)
[윤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