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세헌·신진주 기자] 오는 6일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가 진행딜 예정인 가운데 이날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해 9개 그룹 총수들이 한꺼번에 청문회에 불려가게 되면서 재계가 참담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있다.
가장 고민 깊은 곳은 삼성이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시 국민연금이 찬성표를 던진 것과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삼성-국민연금 간에 대가성 여부에 대한 질문이 쏟아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삼성, SK, 롯데 등 주요그룹들은 검찰 조사 때 모든 것을 밝혔기 때문에 별도의 국정조사 청문회는 불필요하다는 의견을 피력했지만 결국 국회의 결정에 따르게 됐다.
1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그룹은 미래전략실 산하 법무팀 등을 중심으로 청문회를 준비 중이다. 총수의 발언 한마디 한마디가 중요하기에 실수하지 않도록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예상 질문을 미리 만들어 답안지를 만든 뒤 여러 차례 반복 연습을 할 것으로 추측된다.
조사실에서 변호인의 조력을 받으면서 검사의 질문에 답하는 검찰 수사와 달리, 국정조사 청문회는 전 과정이 TV로 생중계되기 때문에 총수와 기업의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특히 이번 청문회는 온 국민들의 눈과 귀가 집중된 사안인 만큼 준비에 만전을 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그룹은 "기본 방침이 국정조사에 적극 협조해서 의혹이 남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라고 강조하며 이재용 부회장의 청문회 준비에 힘쓰고 있음을 시사했다.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이 승마협회 지원 프로그램 형식으로 최순실 씨 측에 35억원을 보낸 이유 등 최씨 모녀 지원과 관련된 의혹에 대한 답변을 준비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삼성은 승마협회 회장사인 삼성전자가 승마 지원을 위해 건넨 돈이며, 최씨 쪽에 80억원 상당을 지원한 것은 최씨 등의 압박에 의한 것이라고 해명해 왔다. 또 검찰이 지난해 7월 삼성의 3세 승계구도 완성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 관련한 대가 관계를 의심하고 있기에 이에 대한 반박도 할 것으로 예측된다.
현대차그룹은 79세 고령의 정몽구 회장이 장시간 증인석에 앉아 있어야 한다는 점에 깊은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정 회장은 재단 출연 배경 외에 안종범 전 청와대 수석의 강요로 흡착제 제조사인 KD코퍼레이션으로부터 11억원 상당의 납품을 받게 된 과정, 최순실 씨가 실소유주로 있는 광고회사 플레이그라운드에 62억원 어치의 광고 일감을 몰아준 의혹 등에 대한 답변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오는 6일 ‘최순실 국정논단’ 사태와 관련해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가 진행된다. 이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해 9개 그룹 총수들이 한꺼번에 청문회에 불려가게 되면서 재계가 참담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있다./연합
SK그룹은 최태원 회장의 출석에 대비해 법률 자문 등을 받아가며 예상 질의에 대한 답변을 마련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두 재단에 대한 출연이 최 회장 본인이나 동생 최재원 부회장의 사면과 연관성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고, 검찰도 뇌물죄 적용과 관련해 '대가성 여부'를 계속 수사한다고 밝힌 만큼 이런 의혹에 대한 답변 마련에 힘쓰고 있다.
롯데그룹도 신동빈 회장의 청문회 출석 준비를 본격화했다. 이미 K스포츠재단과 접촉한 임원들과 신동빈 회장이 모두 검찰 조사를 받고 나온 관계로 새로 국정조사에서 밝힌 만한 내용은 많지 않을 것이란 입장이다.
한진그룹은 국정조사에서 미르재단 출연뿐 아니라 조양호 회장의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 사임, 한진해운 법정관리 등 여러 질문에 대한 답변을 준비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르·K스포츠재단의 출연과 이재현 회장의 사면과의 관련성, 이미경 부회장에 대한 청와대의 퇴진 압력 등의 의혹에 휩싸인 CJ그룹의 손경식 회장, 전경련 회장을 겸하고 있는 허창수 GS그룹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도 앞으로 열릴 청문회에 대비해 준비 작업에 돌입할 것으로 전해졌다.
이같은 기업들의 만반의 준비에도 우려는 크기만 하다. 이번 청문회가 진상규명을 위한 자리가 아닌 총수들을 카메라 앞에 세워 둔 채 의원들이 일방적으로 호통 치는 청문회가 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기업 총수들은 국정 조사 청문회에 참석해야 하는 상황에서 전반적인 의사결정이 어렵다. 그래서 정기인사는 물론 적기에 이뤄져야 하는 투자 사업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기업의 경제활동을 더 이상 위축시키지 않는 선에서 효율적으로 이뤄져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검찰의 칼날을 가장 정면에서 받고 있는 삼성그룹의 경우 내년 경영계획이나 투자계획 수립 등이 사실상 멈춘 상태다.
매년 12월 초에 하던 삼성 그룹 사장단·임원 인사를 12월 중순 이후로 늦춰졌다. 투자도 제대로 집행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올해 총 27조원의 설비투자를 계획했는데 이 중 3분기까지 집행된 게 14조7000억원 밖에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글로벌 기업들의 대외적인 평판이 훼손된 것도 타격이 크다는 지적이다.
[미디어펜=김세헌·신진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