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을 위해 열심히 했는데, 조직위원장 사퇴 통보받았다."
조양호 한진그룹회장. 6일 국회 최순실국정농단 특조에서 담담하게 말했다. 이만희 새누리당의원은 "조회장께서 평창올림픽 성공을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하지 않았나"라고 질문했다. 이의원은 이어 "김종덕 전 문체부장관으로부터 사퇴압력을 받았느냐"고 했다.
조회장은 2018년 2월 열리는 평창동계올림픽을 위해 열과 성을 다했다. 그룹의 조직과 인력까지 차출했다. 한진그룹 경영으로 바쁜 상황에서도 국가를 위한 봉사에도 소홀하지 않았다. 2011년 7월 남아공 더반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서 평창이 동계올림픽개최지로 선정되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 이건희 삼성회장과 함께 각국 IOC위원및 국제스포츠단체회장들과 만나 한표를 당부했다.
평창올림픽은 공교롭게 박근혜대통령이 물러나는 시기와 겹쳐질 예정이었다. 개막일인 2018년 2월9일엔 박대통령이 임기를 채웠다면 개막식을 주관하고, 폐막일(25일)은 차기대통령이 주빈으로 참석해야 한다.
운명은 극적으로 바뀐다. 박대통령은 이제 최순실사건으로 탄핵을 당하거나, 조기하야하는 비운의 신세가 됐다. 4월 퇴진, 6월 조기대선 스케줄이 나오고 있다. 평창성공을 위해 분투한 조회장이나 박대통령이나 평창개폐막식과는 인연이 멀어졌다.
조회장은 졸지에 평창조직위원장을 내놓았다. 김종덕 전장관이 조찬하자고 제안해서 갔더니, "그만두셔야겠다"고 했다고 한다. 이유도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고 한다. 김 전장관은 국무조정실장으로부터 모종의 메시지를 받고 총대를 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회장 퇴진 메시지를 전달한 실세는 안종범 전 경제수석이라는 주장이 언론에서 제기되고 있다.
조회장은 미련없이 물러났다. 높은 분의 뜻이려니 하고 마음을 비웠다.
10대그룹 총수이자 평창올림픽조직위원장에 대해 별다른 설명이나 양해도 없이 갑자기 그만두라고 통보한 것은 너무나 후진적이다. 권력의 안하무인적인 오만함이 묻어난다. 국가경제와 국가적 대사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온 재계총수에 대해 최소한의 예의도 표하지 않았다.
조회장이 평창조직위원장에서 전격 퇴진한 이유에 대해선 여러 가지 이유가 나돌고 있다. 미르재단에 10억원만 내고, K-스포츠재단엔 내지 않아 박대통령 비선실세 최순실로부터 괘씸죄에 걸렸다는 루머가 대표적이다. 조회장은 이 과정에서 평창올림픽을 위해 그룹차원에서 지원하고 있는데, K-스포츠재단에 또 내야 하는가 라는 시각을 가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평소 할 말은 하는 조회장 특유의 소신발언이 화근이 됐다는 설도 있다. 조회장은 이날 특조에서 "최순실을 만난 적이 전혀 없다"고 해명했다.
진돗개를 평창마스코트로 하라는 박대통령의 지시시항에 적극 협조하지 않았다는 미확인 이야기도 있다. IOC는 한국이 여전히 보신탕국가라는 부정적 시각을 갖고 있다. 유럽의 IOC국가들은 한국에 대해 후진적 동물학대국라는 불신감을 갖고 있다. 김종덕 전장관은 스위스로 급거 날아가 토마스 바흐 IOC위원장과 진돗개담판을 벌였다.
바흐위원장은 진돗개를 고수하는 김전장관의 주장에 강한 불신감을 보였다는 후문이다. 바흐는 김전장관에게 오찬도 취소하겠다는 강경입장을 보였다고 한다. 문체부는 IOC의 완강한 분위기를 청와대에 전달해서 마스코트를 다른 것으로 바꿨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조양호회장은 박근혜정부와 악연의 연속이었다. 땅콩회항 딸구속, 한진해운 공중분해, 평창올림픽 조직위원장 돌연 경질 등...6일 국회 특위에 소환된 9명의 총수 중 최대 피해자라는 동정론이 일고 있다. 국회 최순실특위에 참석한 조회장(앞줄 오른쪽에서 두번째)이 앉아 있다. /연합뉴스
조회장은 IOC의 분위기를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진돗개마스코트론에 부정적인 시각을 가졌다. 대통령이 원하면 무조건 관철해야 한다는 청와대참모의 맹목적 충성론에 조회장의 유연한 주장과 현실론은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평창올림픽의 부족한 재원과 관련해 조회장이 재계에 적극적으로 부탁하지 않은 게 걸림돌이 됐다는 이야기도 있다. 진실은 언젠가 밝혀질 것이다. 아직은 설만 무성하다.
조회장은 총수 중 최순실사건 최대 피해자로 분류된다. 평창조직위원장 돌연 사퇴도 그렇지만, 한진해운도 잃었다. 한진해운을 어떻게든 살리기위해 2조원을 쏟아부었는데 허사였다. 에쓰오일의 2대지분을 매각한 돈 1조원과 그룹가용자원 1조원을 날렸다.
조회장은 국회특조에서 정부 지원을 받는 해외 경쟁사들의 혈투에서 도저히 버틸 수 없다고 했다. 중국 일본 유럽 정부는 자국선사에 대해 3조원에서 30조원에 달하는 재정지원을 해서 살려냈다고 했다. 한진은 정부의 지원이 없이 힘겨운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더 이상 승부를 해볼 수 없다고 했다.
조회장은 정부와 금융당국에 진한 아쉬움도 표시했다. 한진해운이 법정관리로 들어가면 물류대란이 일어난다고 간곡하게 설득했다고 했다. 금융위와 산업은행은 금융논리만을 들이대며 한진해운을 공중분해시켰다. 한진의 자구안 2000억원에다 채권단이 3000억원만 추가지원하면 살릴 수 있었다.
금융당국과 채권단은 대우조선에 대해선 수조원을 투입해 살리면서 한진해운에 대해선 살생부명단에 올렸다. 세계 7대 해운강국 유지와 한반도 유사시 자국선박 확보 필요성 때문이라도 한진해운은 정부가 한진과 함께 꼭 살려야 했다. 해운산업의 특성을 이해못하는 청와대 경제수석, 금융당국자, 산업은행 등 3자가 빚어낸 참사였다.
한진과 박근혜정부와의 악연은 또 있다. 소위 땅콩회항사건. 2014년말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사건으로 한진그룹은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언론은 마녀사냥을 했다. 금수저 재벌2세가 흑수저 박모사무관에게 폭언과 기내퇴실을 강요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졌다. 2세들의 부도덕한 행태가 도마에 올랐다. 정부와 정치권 언론은 흥분했다. 검찰은 신속하게 조전 부사장 등 관련자들을 구속 수사했다. 조전부사장은 분노한 여론의 희생양이 됐다.
조전부사장이 구속된 데는 청와대 십상시가 연루된 정윤회 문건파동직후여서 권력이 스캔들을 돌리기위한 것이라는 이야기마저 나돌았다.
조회장은 최순실 특위에 불려나온 9명의 총수 중 스트레스가 가장 덜 할 것같다. 박근혜정부에서 잇따라 수난을 당했기에 동정론마저 일고 있다. 재계총수로는 비교적 바른 말과 소신발언을 하는 조회장이기에 정권과 갈등을 빚었을 것으로 보인다.
총수들이 줄줄이 국회에 불려나와 의원들의 호통치기 망신주기 질문에 진땀을 흘리는 것은 무척 안타깝다. 제왕적 대통령제하에서 청와대의 국정과제 공익사업에 재벌들이 관행적으로 출연하는 것은 최순실파동으로 끝내야 한다. 정경유착의 잘못된 사슬을 끊어내야 한다. 글로벌스탠더드에 맞지 않는다.
국회특조에 나온 삼성 현대차 SK총수들은 전경련에서 탈퇴하겠다고 했다. 야당과 좌파시민단체에선 전경련이 최순실 사건에서 드러났듯이 정경유착 창구가 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전경련을 해체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재계총수들의 모임이자 임의단체인 전경련을 정치권과 시민단체들이 해체하라고 하는 주장은 포퓰리즘적 주장이다.
총수들은 여야의원들의 집요한 추궁에 전경련 탈퇴를 약속했다. 이제 재계는 탈정경유착, 기업본연의 경영활동에 전념해야 한다. 권력과 정부, 정치권은 재계가 국정과제나 준조세등에 시달리지 않고, 성장 투자 일자리창출 국가경제를 위해 기여하도록 도와줘야 한다. /이의춘 미디어펜대표
[미디어펜=이의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