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한기호 기자]'최순실 국정농단 의혹' 폭로 보도를 이어온 JTBC가 8일 일명 '최순실 국정조사특위' 제2차 청문회에서 고영태 전 더블루케이 이사의 진술로 논란이 된 '태블릿PC' 입수 경위를 공개했지만 핵심 쟁점은 피해간 모양새다. 고영태 전 이사와의 '진실공방' 양상을 띠기도 해 청문 대상이 되길 자초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전날 국조 청문회에서 고 전 이사는 "최순실씨는 태블릿PC를 (잘) 사용 못하는 사람이라고 안다"며 "JTBC에서 독일 쓰레기통에서 뒤져 찾았다고 해서 처음엔 (젊은) 정유라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차은택 광고감독과 장시호씨도 같은 취지의 진술을 내놓아 파장이 일었다.
또 고 전 이사가 최씨로부터 받았지만 사용한 적이 없는 또다른 태블릿PC를 검찰에 제출한 상태(총 2개)라고 밝히자 새누리당 일부 의원들은 'USB파일 제보' 의혹 등을 제기하며 검찰의 증거물 보유 현황과 입수 경위를 명확히 해야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은 '뉴스룸' 보도를 담당한 손석희 JTBC 사장의 청문회 증인채택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에 JTBC는 이날 오후 뉴스룸에서 이같은 의혹제기를 "일부 극우사이트 이용자들과 일부 정치인의 주장"이라고 치부하며 태블릿PC(이하 태블릿)를 자체 취재를 통해 입수했다고 주장했다.
지난 11월3일자 JTBC '뉴스룸' 방송엔 이른바 '최순실 태블릿'의 제품·모델명이 갤럭시 탭 8.9 LTE(모델명 SHV-E140S)인 것으로 드러난 바 있다./사진=JTBC '뉴스룸'
삼성전자가 배포 중인 갤럭시 탭 8.9 LTE(모델명 SHV-E140S) 제품 매뉴얼 일부 발췌.
그러나 JTBC는 ▲최초 폭로(10월24일) 보도에서 태블릿PC를 데스크탑을 연상케 하는 'PC'라고만 언급한 것 ▲지난달 3일 보도에서 모델명(SHV-E140S)이 드러난 이 태블릿이 '통화 불능'인데도 이달 7일 익명의 제보를 근거로 "사진촬영뿐만 아니라 전화통화 용도로도 썼다"고 주장한 것 ▲동 모델 기본사양으로 MS오피스 문서파일만 열 수 있고 한글(HWP) 파일을 열 수 없음에도 HWP 문서화면을 보이며 보도한 것 ▲검찰의 태블릿PC 2대 보유 여부 등에 대해 설명하지 않았다.
이 중 특히 7일자 보도[최순실, 태블릿PC 못쓴다?…"그걸로 사진 찍고 통화도"]는 해당 제보자가 "사진이나 동영상 찍는 거면 다른 제조사 제품(아이패드)을 써보라고 (최씨에게) 추천했더니 '그건 전화를 쓸 수 없어 별로다'라는 말도 했다"고 언급했다고 전해 의문을 자아냈다. 통화 기능이 없는 제품을 사용하면서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JTBC는 지난 9월부터 취재를 시작했으며 10월18일 강남구 신사동 더블루케이 사무실의 주인을 특정할 수 없는 원목 책상에서 최씨와 고 전 이사가 놓고 간 여타 집기와 문서 등과 함께 태블릿PC를 찾아냈다고 설명했다.
또한 취재 과정에서 10월5일 취재기자가 각각 '비선모임 녹취파일'과 '옷 고르기 영상' 제보자인 이성한 미르재단 전 사무총장, 고 전 이사와 동석해 식사하던 도중 고 전 이사가 "최씨가 탭을 끼고 다니면서 수시로 대통령의 연설문을 읽고 수정한다"고 말했고 이성한 전 사무총장이 이를 부연했다고 했다.
"그 말만 듣고선 사실 기사를 쓰는 게 정말 불가능했는데 태블릿을 발견하면서 보도하게 됐다"는 게 해당 기자의 입장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청문회나 검찰수사 수준의 검증을 거치지 않는다면 입수 경위도, 두 사람의 태블릿 관련 대화도 진실공방이 불가피해 보인다.
고 전 이사가 파문이 일기 전 취재진을 만난 사실이 없다고 부인하며 "만약 그 태블릿이 제것이었다면 제가 거기에 놓고 올 바보는 아니다. 태블릿을 처음 받게 된 기자분이 진실을 밝혀달라"고 진술한 것에도, 이 기자는 "검찰조사에선 저를 만난 부분과 최씨의 연설문 수정 부분을 인정했다"고 대응했지만 검찰은 아직 같은 내용의 발표를 하지 않았다.
또한 "(검찰은) 저희의 설명에 문제가 없고 태블릿 역시 최순실의 것이 맞다고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으나 고 전 이사가 제출했다고 밝힌 또다른 태블릿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없었다.
입수 경위를 증명하겠다며 JTBC는 "본인께서 음성변조만 하면 상관이 없다고 저희들한테 흔쾌하게 동의해주셨다"면서 더블루케이 건물 관리인의 음성을 변조한 진술을 소개하기도 했다.
방송에 따르면 관리인은 "(최씨 등이) 3개를 뭘 놔두고 갔다. 쓰레기 수거하는 거치대 하나와 철판 하나, 사무실 안에 책상을 하나 놔두고 갔다"며 "책상도 비어있는 줄 알았는데 기자님이 아무래도 기자정신이 있으니까 저랑 같이 가서 봤다. 그래서 제가 협조를 한 것"이라고 JTBC에 우호적인 태도로 진술을 했다.
그러나 이 대목은 최초 폭로 후 사흘 뒤인 10월27일 KBS가 같은 건물의 관리인에게 태블릿을 보관한 경위를 물은 뒤 얻어낸 답변과 상반된다.
당시 KBS 기자의 질문에 관리인은 음성 변조 하에 "짐은 최씨 것이 아니다. 그리고 보도된 PC, 그런 것도 지하에서 나왔는지도 솔직히 모른다"고 태블릿 관련 보도는 인지하면서도, JTBC에 협조해 태블릿을 제공한 사람이라고 보기 어려운 진술을 했다. 음성 변조를 통해 두 번 등장한 관리인이 '동일인물'인지 의심을 자아내게 한다.
JTBC는 '태블릿을 독일의 최씨 소유 집 쓰레기통에서 주웠다'는 설에 대해서도 "검찰의 오해에서 비롯됐다"고 해명했다. 독일로 출장간 소속 기자에게 검찰이 전화를 걸어오자 "기자가 긍정도 부정도 안했고, 파급력 큰 기사라서 그랬는데 검찰이 그걸 긍정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다만 한달이 넘는 기간 동안 검찰발(發) 언론보도에서 공공연하게 거론되며 독일에서 입수했다는 게 '정설'처럼 받아들여졌을 동안에도 침묵한 사유는 밝히지 않았다.
태블릿에 문서 수정 기능이 없어 최씨는 연설문을 수정할 수 없었다는 지적에도 JTBC는 모순된 해명을 내놨다. 소속 기자는 "수정된 연설문은 태블릿이 아닌 다른 경로로도 전달할 수 있다"며 데스크탑 등 외부에서 수정한 문서파일을 태블릿으로 옮겼을 거라는 취지로 해명했다.
그러면서 고 전 이사가 "최씨가 PC의 팩스와 스캔이 잘 안된다고 해서 사무실에 들어가 컴퓨터를 얼핏 봤는데 그것(연설문)이 있었다"고 진술한 점을 들어 이 기자는 "다른 PC로 수정할 수 있다는 의미"라고 부연했다.
하지만 앞서 태블릿을 직접 입수했다는 기자는 "고 전 이사는 (10월5일) 분명히 저와 있었던 자리에서 최씨가 태블릿 (문서) 수정과 관련 말을 하면서 '최씨가 하도 많이 고쳐서 화면이 빨갛게 보일 지경'이라는 표현도 했다"고 말했다.
최씨가 문서 수정도 할 수 없는 태블릿에서 수정된 연설문을 굳이 열어 노출시키고 있었단 것으로 해석되나, 타 PC로 연설문을 대폭 수정했다면 작업을 마친 문서를 굳이 태블릿으로 옮긴 뒤 열어봤다는 건 부자연스럽다.
특히 고 전 이사는 7일 밤 무렵 최씨가 데스크탑PC를 통해 카카오톡과 이메일 로그인 정도의 기본기능은 쓸 줄 안다고 기존 발언을 정정하며 "다른 컴퓨터에서 데이터를 USB로 다시 태블릿에 옮긴다든지 그런 작업들을 아예 못하는 걸로 알고 있다고 말씀드린거였다"고 설명한 바 있다.
한편 이날 최씨 변호인인 이경재 변호사는 기자회견을 열어 "태블릿은 최씨의 것이 아니라고 (국조) 증인이 명백히 얘기했다"며 이때까지 태블릿의 정확한 주인을 발표하지 않은 검찰에 철저한 조사를 촉구했다.
그러자 공교롭게도 당일 오후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는 최씨가 2012년부터 독일과 제주도 등지를 오갔고 그때마다의 태블릿의 위치정보가 최씨와 상당부분 일치한다는 분석을 냈다는 JTBC와 연합뉴스 보도가 가장 앞서서 나왔다.
[미디어펜=한기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