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한기호 기자]최순실 국조특위 3차 청문회가 열린 지난 14일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최순실 통화 녹취' 자막은 실제 음성과 다르다는 전문가의 지적이 나온 바 있다.
게다가 이 통화 상대이자 제보자인 노승일 전 K스포츠재단(이하 K재단) 부장을 박영선 의원이 수차례 사전 접촉한 사실이 확인되면서 조작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JTBC 태블릿PC 논란을 파고들던 중 위증 모의 논란에 휩싸인 두명의 친박 의원에 비해 핵심 증인을 수차례 따로 만난 점에서 박영선 의원을 향하는 의혹의 눈길도 만만치 않다.
'미디어펜'은 지난 19일 박 의원 측과의 통화에서 "고영태(전 더블루K 이사)씨와 노승일씨를 8일과 12일 두차례 함께 만난 사실이 있다"고 확인한 바 있다. 본보는 21일 서울 마포와 여의도 모 식당에서 이들이 3차 청문회에 앞서 적어도 2회 이상 장시간 회동한 사실을 추가로 확인했다.
앞서 3차 청문회에서 노승일씨가 제보한 녹취 음성은 박 의원이 최씨의 음성보다 자막을 '근소한 시차로 먼저' 내보내는 방식으로 회의장에서 울려퍼졌다.
자막은 ▲"큰일 났네" ▲"그러니까 고(고영태)한테 정신 바짝 차리고, 걔네들이 이게 완전히 조작품이고 얘네들이 이거를 저기 훔쳐가지고 이렇게 했다는 걸로 몰아야 되고" ▲"이성한(전 미르재단 사무총장)이도 아주 계획적으로 하고 돈도 요구하고 이렇게 했던 저걸로 해서 이거를 하지 않으면…분리를 안 시키면 다 죽어"라고 표기됐다.
독일에서 귀국 전 최씨가 노씨에게 청문회 및 각종 수사에서 거짓 진술로 입을 맞춰야한다고 지시, 외압을 가하는 것으로 읽힌다. 그러나 각종 예능·방송에 출연해 소리분석 전문가로 정평이 난 배명진 숭실대학교 전자정보공학부 교수(소리공학연구소 대표)는 "박 의원의 녹취록은 수정돼야 한다"고 바로 다음날 이의를 제기했다.
최순실 국정농단 파문에 분개하는 입장이지만, 국회가 잘못 표기한 정보로 국민의 알 권리가 오도돼선 안 된다는 취지다. 배명진 교수가 수정한 녹취록에 따르면 같은 순대로 ▲"일 났네" ▲"네가 고한테~~했다는 거를 불어야 되고" ▲"~~이거를 파지 않으면…대의를 안 지키면 다 죽겠어" 등의 차이가 있다.
특히 '불어야 되고' 대목은 'ㅁ(미음)' 소리를 낼 때 발생하는 비음(콧소리)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배 교수는 설명했다. '몰아야 되고'로 바뀔 경우 사실대로 말한다는 것에서 거짓을 꾸민다는 것으로 의미 해석마저 180도 달라진다. 박 의원이 만약 이같은 차이를 알고도 녹취록을 작성했다면 조작에 다름없다는 지적이다.
이같은 전문가 분석과 관련 박 의원 등 야권이나, 국정농단 의혹 보도를 주도해온 JTBC, JTBC 태블릿PC 관련 논란 제기를 사실상 방어해온 검찰까지 박근혜 대통령에 공세를 취하고 있는 주체들은 엿새 넘게 침묵 중이다.
그 사이 야권과 JTBC를 비롯한 언론계는 이만희·이완영 의원과 접촉한 제보자들이 미르·K재단 직원으로 일한 점만을 부각해 '최순실 최측근-친박 위증 공모' 프레임을 완성시켜 의혹을 확대재생산·기정사실화하고 있다.
반면 최씨의 가장 긴밀한 관계였던 고씨는 의혹 당사자가 아닌 폭로자로 둔갑하고, 5·18 유공자 아버지를 뒀으며 불운한 가정사를 갖고 있다는 보도가 잇따르며 포털 주요 검색어로 떠오르는 등 '동정표'를 얻는 양상이다.
최씨 통화 상대였던 노씨는 새누리당 친박계 이완영 의원이 4차 청문회(15일) 사전에 정동춘 전 K재단 이사장을 만나 박헌영 전 K재단 과장에게 'JTBC가 입수 보도한 태블릿PC를 고씨가 사용하는 걸 봤다. 고씨가 충전기를 사오라고 하기도 했다'는 등 내용으로 위증할 것을 지시했다는 제보 당사자이기도 하다.
JTBC 모회사인 '중앙일보'는 노씨와의 이같은 취지의 18일 통화 내용을 19일 보도했으며, 이완영 의원은 이만희 의원에 이어 즉각 위증교사 논란에 휩싸여 야권의 일방적인 사퇴요구와 두 차례의 특위 전체회의 무산 등 소명 기회 박탈이라는 곤욕을 치르고 있다.
이만희 의원은 고씨가 13일 '월간중앙'과의 통화에서 '한 여당 의원과 박헌영씨가 위증 스토리를 짤 것'이라고 예견했다는 17일 중앙일보 보도로 위증 논란에 처음 직면했었다. 청문회 초기 태블릿PC 소유주와 출처 확인차 질의를 해온 두 의원은 3차 청문 사전에 박씨와 고씨 관계자들이 찾아와 접촉한 사실이 있다는 것 외 '스모킹건' 없이 위증교사범으로 내몰렸다.
두 의원은 문제의 관계자들이 제보자로서 찾아와 박씨의 3차 청문회 진술과 같은 내용의 언급을 전달했다고 공통적으로 해명했다. 이완영 의원은 위증 논란이 집중되자 청문위원과 증·참고인의 사전 접촉은 통상적인 국조 작업의 일환이라고도 밝혔다.
그 과정에서 이완영 의원은 더민주 안민석 의원이 미국 텍사스에 체류 중이던 전직 청와대 간호장교 조모 대위를 직접 만나러 간 일, 박 의원이 고씨 등과 두차례 장시간 회동한 사실을 언급했다. 박 의원측은 "국조특위 위원으로서 제보자를 만나는 일은 당연하다"고 사실상 이완영 의원과 같은 논리를 폈다. 노씨로부터 제보받은 녹취가 사실인지 확인할 목적이었다고도 했다.
그러나 구체적 대화내용은 밝히지 않았으며, 정작 22일로 예정된 5차 청문회에 앞서 증·참고인으로서 출석한 바 없는 노씨를 수차례 사석에서 만난 점이 의문을 자아낸다. 의원실 확인을 거쳤다는 녹취록이 틀렸다는 백 교수의 즉각적인 지적에 대해 이렇다할 반박조차 나온 적이 없다.
거짓 증언·증거물 논란에 연루됐고 논란을 촉발시킨 인물 관계자와 사전 접촉이 있었다는 잣대만 들이대도 박 의원은 이만희·이완영 의원들과 같은 수준의 물의를 빚어도 이상할 게 없다. 고씨·노씨와의 접촉 빈도가 2회를 넘어간다는 정치권 제보도 있다.
그러나 박 의원 본인은 19일 페이스북에 "이완영 의원이 매우 급했던 모양"이라며 "(나를) 끌고 들어간다고 사전모의 의혹이 사라지겠나. 비교할 걸 비교하라"면서 "공작정치 냄새가 난다"고 치부했다. 당시 나흘 지난 녹취록 조작 논란에는 침묵했다. 의혹 제기자 입장에 서면서 여론의 소나기를 피해가려는 시도로 보인다.
[미디어펜=한기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