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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잡아먹는 '민족주의'라는 유령

2016-12-28 09:30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6.25전쟁을 한 마디로 정의하라면 어떻게 설명할까. 남과 북 모두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동족상잔의 비극. 어렸을 때 학교에서 이렇게 배웠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엄연히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는 전쟁을 두고 이렇게 말한다니 정말 이상하다. 만약 누군가 당신을 먼저 때려서 서로 다쳤다고 해 보자. 누군가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으면 ‘우리 모두 많이 다친 싸움’이라며 이해심 넘치는 설명을 할 텐가. 아니, ‘쟤가 먼저 나를 쳤다고!’하며 화를 내는 게 정상적인 반응이다. 

‘자유’를 가르친, 6.25전쟁의 진정한 의미 

6.25전쟁은 명백한 불법 남침으로 발발한 전쟁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양 쪽 모두가 상처를 입었다는 설명을 쉽게 받아들인다. 이는 아마 이 전쟁이 ‘우리민족끼리’의 전쟁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6.25전쟁은 한국인들에게 여전히 아픔이고 슬픔이고 애통한 그 무엇이다. 이는 6.25전쟁을 민족주의적 시각으로 바라봤기 때문인데, 고지전 같은 영화가 대표적이다. 동부전선 최전방 애록고지에서 국군과 인민군은 서로 우정을 나눈다. ‘우리끼리’ 싸워야 할 이유를 상실했음에도 계속해서 싸우는 상황을 묘사하면서, 이 전쟁은 누군가의 이간질로 인한 것일 뿐이라는 뉘앙스를 계속해서 풍긴다. 

하지만 한국에게 6.25전쟁은 단순한 민족끼리의 전쟁이 아니었다. 6.25전쟁은 “비극을 가장한 축복”이었다. 이 전쟁을 통해 소련-중국-북한의 한반도 공산화를 막아내고 자유 대한민국을 건설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6.25전쟁은 한국인들에게 자유의 가치를 처음으로 깨닫게 해주기도 했다. 6.25전쟁은 세계사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UN군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연합군을 결성해 내전에 개입했다. 한국 전쟁이 자유의 확장을 위해 그만큼 중요한 전쟁이었기 때문이다. 이 전쟁의 의미를 우리는 현재 북한과 대한민국 생활수준의 차이를 통해 직접 느끼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6.25전쟁이라 하면 자유, 공화국의 가치보다 ‘민족’을 먼저 떠올린다. 

민족주의의 뿌리에는 김구가 있다. 김구에게 민족은 너무나도 중요해서 국민국가 자체의 해체도 불사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는 대한민국의 성립을 극렬하게 반대했음에도 오늘날 민족의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대한민국 위협하는 민족주의 유령

새삼스레 6.25전쟁의 의미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최근 들어 민족주의의 유령이 대한민국을 잡아먹고 있다는 위협이 느껴져서다. 우리가 북한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얘기다. 최근 한 언론의 북한 관련 보도를 보고 너무나 화가 나고 놀랐는데, 그 기사의 일부 내용을 보면 이렇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김정은 집권 5년 성적표는 일단 나쁘지 않은 편이다. 북한체제에 매우 심각하거나 임박했다고 볼 만한 불안정 요인은 없다는 것이 국내외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다소 인색할 수밖에 없는 한·미 정보 당국의 공식 견해도 “예상보다는 안정적으로 통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일성·김정일 시기를 거치며 축적된 통치 노하우와 폭압적 통치기관의 작동은 물론 수령 독재, 주체사상 같은 이론적·실천적 틀이 든든한 힘이 되고 있다는 진단이다. 또 유엔의 대북제재에 동참하겠다는 선언 등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든든한 후견국 역할을 하고 있는 중국의 존재도 김정은 체제의 안정을 뒷받침하는 핵심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기사를 읽는 내내 북한을 우리의 주적이 아니라 같은 민족이 어쩔 수 없이 북쪽에 세우게 된 나라로 인식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런 민족주의적 인식은 매우 위험하다. 연평도 포격 같은 일들도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게 만들고, 천안함 폭침을 두고는 정부의 조작이라는 유언비어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결국엔 우리의 번영과 자유의 바탕을 마련한 공화국을 위협한다. 실제로 전쟁이 난다면 대체 누가 이 공화국을 위해 목숨을 바쳐 싸우겠나. 공화국보다 민족이 더 중요한데. 

이런 사고의 뿌리에는 김구라는 인물이 있다. 김구에게 민족은 너무나도 중요해서 국민국가 자체의 해체도 불사해야 하는 것이었다. 김구는 대한민국의 성립을 극렬하게 반대했음에도 오늘날 민족의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다. 반면 대한민국을 세워 번영의 바탕을 마련한 이승만 건국 대통령은 독재자라는 누명을 쓰고 욕만 먹는다. 

북한 김정은 정권은 인권이라고는 없는 전체주의 독재국가를 이어가고 있다. 이에 대한 민족주의적 인식은 매우 위험하다./사진=연합뉴스



근대의 가치 = ‘민족’ < ‘공화국’

하지만 근대의 가치는 민족이 아닌 공화국에 있다. 우리는 ‘개인’이라는 위대한 발견을 통해 근대시대로 들어섰다. 그리고 근대 시민은 개인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공화국이라는 국가 형태를 채택했다. 공화국은 민주주의 원리를 수용해 개인의 신체 자유와 행복의 추구, 사유재산권 등을 보호하는 국가라는 의미를 갖는다. 한국도 이런 근대의 가치를 품고 공화국으로서 출발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을 건국하면서 “이 새로운 국가는 개인의 근본적인 자유를 보호하는 민주정체다”고 선언한 바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직도 민족주의 속에서 허우적대느라 우리가 진정으로 지켜야하는 공화국의 가치는 내팽겨 쳐두고 있다. 민족주의가 공화국을 잡아먹고 있는 것이다. 자유와 번영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가 지켜야 하는 것은 민족이 아니라 공화국, 바로 이 대한민국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을 지켜야 저 북쪽 땅에서 폭압 정치에 고통 받는 한민족을 구원해내는 일도 가능해진다. 정신을 차리자. /이슬기 자유경제원 객원연구원


(이 글은 자유경제원 젊은함성 게시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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