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은 2017년으로 넘어왔지만 대한민국 시계는 아직 2014년 4월 16일에 멈춰있다. 헌법재판소의 박 대통령 탄핵 심판과 관련, 세월호 7시간 의혹을 거론하고 문제 삼는 것부터 그렇다. 청해진해운 세월호 사고에 대한 법적 판단은 대법원 판결까지 끝났으나 상당수 국민의 심정은 세월호라는 과거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물론 세월호 사고로 죽은 단원고 아이들 250명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 승객 54명을 포함한 사고 사망자 304명 모두 그렇다.
하지만 사고는 어디에서나 일어나고 누구나 죽는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 등 안전불감증에 의한 사고는 끊이지 않았다. 대구지하철 화재 사고에서는 192명이 사망하고 21명이 실종됐다. 삼풍백화점가 붕괴해서 501명이 죽었다. 실종사 6명에 부상자만 1000명 가까이 나온 최악의 참사였다.
그런데 당시에는 삼풍백화점을 잊지 말자는 목소리가 없었다. 대구지하철 화재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광화문 광장 촛불집회에 중학생도 나와 세월호와 관련해 성명서를 발표하는 시대다. 혹자는 중고교생의 성명서 발표 동영상을 보면서 멋있다며 나도 아이를 저렇게 키울 거라고 확언한다.
모든 죽음은 안타깝다. 그러나 이미 뒤집힌 세월호에 갇혀 있는 사람들을 구조할 수 있었는데(?) 구조를 못했다는 주장은 가정에 불과하다.
대구지하철 화재 사고에서는 1080호 기관사가 출입문을 열었지만 마스터 컨트롤 키를 뽑고 탈출하여 출입문이 자동으로 닫혀 희생이 컸다. 참사의 발단은 운행중지 조치를 취하지 않은 지하철 사령의 오판으로 화재 사고 없이 정상운행 중이던 1080호가 대구 중앙로역 반대편 선로에 정차했던 것이었다. 화재가 난 1079호에서는 대부분의 승객이 열려 있던 출입문을 통해 대피했으나 1080호 승객들은 대피할 수 없었다. 여기서 희생자가 속출했다.
'대통령 혼자 나라를 움직이는 게 아니고 국민이 주인'이라며 울부짖는 촛불 민심은 "세월호 사고에서는 대통령이 컨트롤타워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며 이에 책임을 지라 말한다./사진=연합뉴스
대구지하철은 세월호처럼 배가 뒤집혀 물리적으로 탈출이나 구조가 불가능한 상황도 아니었다. 문제는 비상시 문을 수동으로 열 줄 아는 승객이 거의 없었고 방화 셔터가 일찍 닫혀 나오려던 사람도 나오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는 점이다. 희생자 대부분은 유독가스에 의한 질식사였다. 그들이 계단으로 올라가지 않고 선로로 내려와 화재 반대 방향으로 이동하기만 했어도 살 수 있었다. 모두 다 가정에 근거한 희망고문이다.
14년 전 일이고 김대중 정부 당시의 사고다.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하기 일주일 전이었다. 세월호 사고가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 때문이라는 주장을 그대로 답습한다면 대구지하철 참사는 김대중 대통령의 책임이다. 대구지하철은 지하철 사령의 오판과 기관사의 명백한 과실로 192명의 희생자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세월호는 해상교통사고…명확한 원인과 책임
세월호는 해상교통사고다. 누군가 의도를 갖고 계획적인 살인극을 벌인 것이 아니라 선장과 선원의 운행 미숙과 안전 조치 미비로 어처구니없게 304명의 승객이 유명을 달리한 사고다. 이미 배가 뒤집혀 기울어져 가는데 물리적으로 안에 있는 이들을 구할 방법은 없었다.
사고는 선장과 선원들이 냈고 대응은 진도 VTS와 목포 해경이 그렇게 했다. 시스템의 미비다. 선장과 선원은 승객 목숨을 구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자신들만 탈출했다. 배는 기울었고 점차 뒤집혀 가고 있었다. 구할 수 있었던 골든타임에 선장과 선원은 밖으로 탈출하라는 지시를 내리지 않았고 먼저 빠져나왔다. 강철로 된 격벽이 없는 이상 에어포켓은 존재할 리 만무했지만 하루 이틀 삼일…국민들은 헛된 희망에 빠져있기도 했다. 세월호의 끝은 청해진해운의 무리한 증축과 과적, 이준석 선장 등의 살인죄로 결론 났다.
혹자는 세월호 사고가 났는데 박 대통령이 자리를 비우고 제대로 조치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들에게 반문한다. 김대중 대통령은 연평해전이 벌어진 바로 다음날 일본으로 건너가 일왕 부부와 축구 경기를 관람했다. 일왕 부부와 함께 김 대통령은 TV 카메라 앞에서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자국에서 전쟁이 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는데도. 하나 더. 운행자 측의 과실이 명백한 대구지하철 화재에서 192명이 죽었으나 김대중-노무현 정부 교체기 당시 어느 누구 하나 대통령에게 책임을 묻는 사람은 없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사고 당일 뭐했냐며 울부짖었던 이 하나 없었다.
어느 집에 불이 났다고 하자. 대통령이 와서 꺼야 하나. 달리던 KTX가 선로를 이탈해 몇 백 명이 죽었고 중상자 등이 또 얼마나 죽을지 모른다고 가정하자. 이 또한 대통령이 헬기를 타고 달려와 죽어가는 환자 손을 붙잡고 울어야 하나. 대통령이 무엇이든 직접 조치를 취해야 하고 모든 사고에 책임져야 한다면 119 긴급구조대와 소방대, 경찰과 해경은 왜 있어야 할까. 삼풍백화점 붕괴와 대구지하철 화재의 경우 당시 대통령들이 잘해서(?) 사람들이 죽은 것인가.
안타깝지 않은 죽음은 없어
세월호 사고로 죽은 사람들이 불쌍하다? 사람들이 의미 없이 시간을 보내고 술을 마시며 웃고 떠드는 순간 누군가는 이런저런 사고로 계속 죽어나간다. 그 모든 죽음에 대해 1분 1초 매일 기도하는 사람은 없다. 세상에 슬프지 않은 죽음은 없다. 안타깝지 않은 사고도 없다. 단원고 아이들의 죽음을 이용한 알량한 동정심 과시는 사절이다.
그런데 '대통령 혼자 나라를 움직이는 게 아니고 국민이 주인'이라며 울부짖는 촛불 민심은 "세월호 사고에서는 대통령이 컨트롤타워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며 이에 책임을 지라 말한다. 국민이 주인이라는데 책임은 모두 대통령이 져야 한다는 이중 잣대다.
세월호 사고는 선장과 선원들이 냈고 대응은 진도 VTS와 목포 해경이 그렇게 했다. 시스템의 미비다. 선장과 선원은 승객 목숨을 구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자신들만 탈출했다./사진=연합뉴스
박 대통령이 늦장대응을 했다며 비판할 수 있다. 허나 근본적인 문제는 구조신호에 대응을 엉성하게 한 구조체계다. 어선이 해경보다 사람을 더 많이 구했다. 왜 진도 VTS나 목포 해경에 관해 아무도 말하지 않을까. 박 대통령은 그 책임을 직시하고 해경을 해체하라고 까지 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온통 대통령이 7시간동안 나타나지 않았다는 소리만 내뱉고 있다.
대통령에게 책임전가하고 희생양으로 만든다고 죽은 희생자들이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 세월호라는 비극을 통해 배우며 반성하고, 다시는 같은 사고가 반복되지 않도록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데 온힘을 쏟아도 바뀔까 말까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건 대통령이 아니라 정치적 책임을 씌우기 급급한 자들이다.
세상에 안타깝지 않은 죽음은 없다. 과거에만 매달려 정치적 희생양을 찾는 것은 세월호 희생자들의 죽음을 분풀이에 이용하는 것이다. 청해진해운이 원인 제공한 가운데 사고는 선장과 선원이 냈고 줄행랑쳤다. 배는 이미 뒤집혀 물리적으로 돌이키기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이에 해경은 구조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런데 책임은 박 대통령이 지라? 세월호를 언급하며 탄핵과 하야를 부르짖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는 이유다. /김규태 재산권센터 연구위원
[김규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