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한기호 기자]최순실씨가 청와대 파일 200여건을 직접 태블릿PC로 받아보며 국정농단을 해왔다는 의혹과 관련, 고영태씨가 지난달 7일 '최순실 국조특위' 제2차 청문회에서 "(최씨가 태블릿PC를) 사용하는 걸 한번도 보지 못했다"고 'JTBC 태블릿PC 거짓보도' 의혹 규명에 결정적 진술을 남겼으나 이후 잠적하는 등 수상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특히 고영태씨는 2차 청문회 다음날인 8일과 12일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 또 '최순실 전화 녹취' 등을 박 의원에게 제공한 노승일 전 K스포츠재단 부장과 장시간 동반 접선한 뒤로 '친박 국조위원 위증교사 논란'에 불을 지폈으며 더민주로부터 '의인'이라는 칭송까지 받게 됐다.
더구나 최씨로부터 받아 사실상 공기계 상태로 검찰에 제출했다고 밝혔고, 이로 인해 검찰도 보유 사실을 시인한 '제2의 태블릿PC'에 대해서도 더 이상 입을 열지 않고 있다.
최씨가 설립한 K스포츠재단 자회사 더블루K 이사였던 고씨는 지난달 7일 제2차 청문회에서 JTBC의 태블릿 입수 경위 보도 관련 "태블릿을 처음 받게 된 기자분이 진실을 밝혀야 한다. 자꾸 말을 바꾸는 기자가 직접 이 자리에 나와 명확하게 설명해달라"고 억울함을 호소한 바 있다.
청와대 문건 200여건이 유출됐다는 '최순실 태블릿PC'는 폭로 보도를 주도해온 JTBC가 국정농단 의혹의 '스모킹건'으로 자평한 바 있다. 그러나 2016년 12월7일 최순실 국조특위 제2차 청문회에서 최씨 최측근이었던 고영태 전 더블루K 이사가 최씨가 태블릿을 사용한 모습을 본 적이 없고, 쓸 줄도 모르는 것으로 안다고 진술해 보도의 근간이 흔들렸다. JTBC는 고씨의 진술 이후 잇단 반박 해명보도를 냈지만 사실관계와 맞지 않은 부분이 많아 의혹만 키웠다는 비판을 낳고 있다./사진=JTBC, YTN 보도화면 캡처.
또한 자신이 '어느 사무실 책상에 누군가 보낸 태블릿이 한대 있을 것'이라고 전화로 제보했다는 JTBC 보도에도 "태블릿이 제 것이었다면 제가 바보처럼 거기(책상)에 놓았겠느냐"며 "연락받았다는 기자도 나와서 정확하게 제 전화인지, 제 음성이 맞는지 확인해달라"고 정면 반박했다.
이밖에 고씨의 진술 요지는 ▲최씨가 태블릿을 사용하는 것을 목격한 적 없고 자신도 사용한 적 없다 ▲JTBC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최씨가 연설문 고치는 건 잘하는 것 같다'고만 했다 ▲최씨가 '사용할 줄 모른다'며 준 제2의 태블릿(아이패드)을 공기계 상태로 검찰에 제츨했다 ▲태블릿 충전기 활용 문제를 겪은 사실이 없다 등이었다.
이는 태블릿 사용자를 최씨로 단정해온 JTBC 보도의 근간을 뒤흔드는데다, 그동안 태블릿 1개만을 보유한 것처럼 언론에 수사내용을 발표했던 검찰에도 타격을 주는 내용이다.
고씨의 진술이 나온 당일 JTBC는 앞서 자사 보도화면으로 드러난 삼성 갤럭시탭8.9LTE(모델명 SHV-E140S)이라는 '통화 불가' 기종을 최씨가 항상 끼고다니며 전화통화를 한 데다가 타사 제품(아이패드)을 추천해주자 '통화 기능이 없어서 별로'라며 거절했다는 자기모순적 보도를 내놓았다.
JTBC의 보도화면을 통해 드러난 이른바 '최순실 태블릿PC'의 기종은 삼성 갤럭시탭8.9LTE(모델명 SHV-E140S)로, 음성 통화가 불가능한 제품이지만 JTBC는 고영태씨의 '최순실 국조특위' 제2차 청문회 진술 이후 최씨가 해당 태블릿PC를 수시로 끼고 다니며 전화통화를 했고, 타사 제품을 추천해주자 '통화기능이 없어서 별로'라고 품평하며 거절했다는 익명의 지인 제보를 소개해 스스로 엇박자를 냈다./사진=JTBC 보도화면, 삼성전자 제품 매뉴얼 캡처
다음날(8일)엔 태블릿 입수경위 해명 보도를 냈지만 더블루K 사무실 위치를 강남구 청담동이 아닌 신사동이라고 잘못 언급하거나, 10월18일 타 매체 기자들은 거의 하루종일 잠겨 있던 더블루K 사무실의 출입문이 '열려 있어' 기자가 들어갔다는 등 납득하기 어려운 내용 일색이었다.
검찰도 언론에 고씨로부터 받은 태블릿이 존재한다고 시인하면서도 "아무 내용이 없는 것으로 증거 가치가 없는 기기"라고 무마를 시도했다.
검찰은 당시 태블릿 위치와 2012년 무렵 최씨의 해외 동선이 일치한다는 자체 분석 결과만을 강조했으나 최씨의 지문 등 '물증'은 물론 태블릿 실물마저도 해를 넘긴 현 시점까지 공개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JTBC 기자와의 대질까지 요청했던 고씨는 이처럼 자신의 진술을 무마하려는 시도에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8일과 12일 박영선 의원과 노승일씨를 함께 적어도 두차례 이상 만난 뒤, 13일 JTBC와 같이 중앙미디어그룹에 속하는 '월간중앙'과 인터뷰를 갖는다.
최씨와 자신을 배신한 인사들이 새누리당 의원과 '위증 스토리'를 사전 모의할 것이라는 추상적인 예견을 한 것이 나흘 뒤(17일) 중앙일보 단독보도로 타전되면서, 15일 4차 청문회에서 박헌영 전 K스포츠재단 과장과 태블릿 관련 질답을 주고받은 이만희 새누리당 의원이 위증교사 논란에 휩싸였다.
위증 논란이 일기 전, 박헌영씨는 15일 청문회장에서 고씨가 위증을 했다며 ▲고씨가 태블릿을 사용하는 모습을 봤지만 최씨의 것이다 ▲고씨가 태블릿 충전기 잭을 사오라고 시켰지만 구하지 못해 핀잔을 들었다 ▲더블루K 사무실을 비우기 전 고씨의 책상에서 태블릿을 봤고, 최씨가 책상을 건드리지 말라고 지시했다 등 사실상 JTBC와 검찰의 입장을 비호하는 진술을 했다.
이처럼 박씨가 자신을 위증범으로 몰았을 때도 고씨는 침묵했다.
게다가 앞서 14일 3차 청문회에서 박 의원의 녹취록 공개로 최씨가 노씨와 자신 등 측근들에게 태블릿이 본인 것이 아니라고 위증할 것을 지시했다는 의혹이 불거졌을 때도 대응을 하지 않았다.
"불어야 된다"를 "몰아야 된다"로 표기하는 등 '녹취와 녹취록이 다르다'는 국내 최고 소리전문가 박명진 숭실대 교수의 지적이 곧바로 나왔고 박 의원측이 별다른 반박을 하지 못했지만, 고씨는 위증 누명을 벗을 기회를 잡지 않았다.
이만희 의원에 이어 이완영 의원마저 19일 '정동춘 K스포츠재단 이사장을 통해 박씨에게 태블릿 관련 위증을 지시했다'는 노씨의 일방적 진술을 중앙일보가 보도하면서 박씨가 친박 의원들과 위증 혐의에 연루됐을 때에도 무반응으로 일관했다.
자신에게 태블릿 입수경위 관련 질의를 했다가 박씨를 공통분모로 위증범으로 몰린 이만희·이완영 의원이 야권의 일방적 포화를 맞을 때도 침묵함으로써 야권을 도운 셈이 됐다.
이런 가운데 20일 중앙일보는 고은 시인의 시집 '만인보'에 5·18 유공자 아버지를 둔 고씨의 가족사가 실린 점을 보도해 고씨에 대한 우호 여론을 조성하기 시작해 분위기 전환이 감지됐다.
또한 21일 진보좌파매체 '시사인'은 박씨가 두 친박 의원과 4차 청문회 사전에 접촉·연락하거나 위증 교사를 받은 일이 없다며 고씨를 위증범으로 재차 몰아세운 단독 인터뷰를 보도했다.
그러나 고씨는 위증 모의 의혹과 관련 출석 의무가 주어진 22일 제5차 청문회에 별다른 이유 없이 나타나지 않았고 오히려 이틀 전 20일 특위 전체회의에서 참고인 채택된 박씨·노씨·정씨가 청문회에 출석했다.
박씨가 전날 보도와 같은 진술을 하면서 이만희·이완영 의원의 위증 모의 의혹이 불식되는 듯했지만, 고씨와 참고인 3자간의 대질은 물론 이만희·이완영 의원과의 대면은 이뤄지지 않았다.
당초 고씨를 5차 청문회 증인으로 채택하는 것을 꺼렸던 더민주·국민의당·정의당 위원들은 고씨의 불출석에 아무런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우병우·조여옥 청문회'에만 집중하라고 여당 위원들을 노골적으로 압박하거나 질의를 방해하기도 했다.
이완영 의원은 의혹 제기가 집중됐다는 이유만으로 당일 오후 질의권을 박탈당했고, 이만희 의원은 박씨의 위증교사 의혹 부인에만 천착해 '고씨가 태블릿을 사용했다'는 등 증언 일체를 진실이라고 간주하면서 고씨의 7일 진술에 대한 '물타기'를 허용했다.
'최순실 국조특위' 제5차 청문회 바로 다음날인 지난달 23일 국조위원인 손혜원 더불어민주당 의원(맨 오른쪽)은 고영태 더블루K 전 이사(가운데)와 노승일 전 K스포츠재단 부장과 다정한 모습으로 찍은 단체사진을 페이스북에 게재했다. 고영태씨는 전날 청문회에 출석 의무가 있었음에도 불출석하면서 '위증 모의 의혹'과 관련 참고인 출석한 노승일씨는 물론 K스포츠재단 박헌영 전 과장, 정동춘 이사장과의 대질을 무산시켰다./사진=손혜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페이스북 캡처
게다가 5차 청문회에선 노씨가 자신이 최씨의 노트북에서 대통령 연설문을 1건, 최씨가 사용한 적 있는 자신의 컴퓨터에서 청와대 문건을 1건 복사해 검찰에 제출했다며, 일명 '최순실 태블릿' 존재와 무관하게 광범위한 국정농단 혐의를 입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노씨와 박씨는 참고인에서 증인으로의 신분 전환에도 순순히 응한 뒤 태블릿 관련 야권과 JTBC에 유리한 진술로 일관했다.
다만 검찰이 실제 노씨로부터 자료를 입수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고, 백승주 새누리당 의원과의 질의에서 그는 최씨의 파일 절취 사실을 인정하고 "처벌받겠다"고 말해 증거능력 인정 여부는 논란의 소지로 남아있다. 태블릿 실물은 커녕 최씨 지문 등 물증조차 제시한 적 없는 검찰은 법정에서도 태블릿이 최씨 소유라고 입증하지 못하고 있다.
5차 청문회 불출석으로 고씨는 신변상 문제가 있었는지 등 의문을 자아냈지만, 다음날인 23일 국조위원인 손혜원 더민주 의원 및 노씨와 다정한 모습으로 단체사진을 찍은 것이 손 의원 페이스북에 게재됐다.
특히 손 의원은 한때 '최순실 부역자'로 불리던 고씨와 노씨를 가리켜 "의인들을 보호하라!"는 메시지를 남겨 이젠 야권과 해당 증인들이 철저한 협력 관계에 있음을 시사했다. 이후 시사인 주진우 기자가 최근 고씨와 노씨가 미행당하고 있다는 전언을 내놓는 등 철저한 '최순실과 거리두기' 작업이 감지되고 있다.
한편 또다른 최씨 측근이었던 박씨 역시 26일 공개된 한국일보와 단독 인터뷰에서 '최씨가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을 이용했다'라거나,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박 대통령이 퇴임 뒤 K스포츠재단 이사장을 맡는 걸로 고씨와 노씨 등 임원진은 알고 있었다"며 국조 청문회를 통해 증명된 바 없는 '야권 맞춤형' 폭로전을 벌였다.
[미디어펜=한기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