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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고 음모론, 노란리본의 금기는 끝났다

2017-01-15 10:40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세월호 사고 당일을 똑똑히 기억한다. 나는 당시 중국에 있었다. 뉴스를 접하고 떨리는 손으로 스마트폰을 부여 쥔 채 아무것도 못 하고 하루 종일 뉴스만 봤다. 한 사람이라도 더 구조하길 간절히 바라면서. 죽음의 순간이 전 국민에게 생중계 된 너무나 충격적인 참사였다. 많은 어린 학생들이 목숨을 잃은 가슴 아픈 참사였기에 때론 도를 넘는 일부 유가족들의 행동도 입을 다물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심정적으로 이해가 되기도 했다. 내 기억으로는, 당시만 해도 모든 국민이 한 마음이었다. 아니 꽤 오랫동안 그랬다. 다 같이 슬펐고, 가슴 아픈 유족을 진심으로 응원했다.
 
천 일이 지났고, 대부분의 사실이 법정에서 밝혀졌다. 세월호는 뱃사람들이 ‘생명수’라고 부른다는 평형수를 적게 넣는 대신 화물을 과적했다. 안전 규정을 위반한 탓에 복원력을 잃은 채 죽음의 질주를 했다. 선장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이준석 선장은 살인죄로 무기징역형을 받았다. 운이 좋게도, 아니 결과적으로는 재수 없게도, 그날따라 남쪽부터 순찰을 한 덕에 극적으로 172명의 승객을 구한 김경일 정장도 감옥살이를 하고 있다.
 
재판은 끝났으나 애도의 분위기는 끝나지 않았다. 노란리본은 점점 더 퍼졌다. 리본은 사람들의 가방에 옷에 차에 붙었다. 처음에는 그저 추모의 물결이 아주아주 오래 지속된다고 여겨졌다. 이것이 감히 노란리본을 비판하는 일이 지난 천일 동안 금기였던 이유다. “어린 아이들이 죽었는데 너는 슬프지도 않냐”는 말에, “자식을 잃은 슬픔 앞에서 감히 그따위 말을 할 수 있냐”는 말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노란리본이 나치를 상징하는 갈고리 십자가(하켄 크로이츠)와 뭐가 다를까./사진=미디어펜


 
하지만 노란리본은 점점 추모와는 거리가 멀어지더니 ‘진실을 밝히라’는 외침이 돼 있었다. (그들이 배포하는 보도자료를 자세히 읽어본 적이 있으나 도대체 무슨 진실을 더 밝히라는 건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제는 급기야 ‘이석기 석방’ ‘재벌 해체’ ‘혁명 정부’ 따위를 대표하는 상징물이 돼가고 있다. 시작은 광장이었고, 직접 나가보면 노란리본이 이들과 동의어처럼 나란히 쓰인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로써 세월호 노란리본의 금기는 완전히 깨졌다. 노란리본은 이제 슬픔이 아니라 분노의 상징이 됐다. 가족을 잃은 슬픔을 추모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갖고 싶은 것을 갖지 못한 분노를 드러내는 수단 말이다. 분노의 대상은 광범위하다. 가장 기본적인 것은 세월호 비극을 막지 못한 모든 대상에 대한 분노일 것이다. 그 분노는 나보다 행복해 보이는 다른 모든 사람들, 한국의 번영 그 자체로 번져갔다.
 
나는 이제 드디어 말할 수 있겠다. 노란리본이 나치를 상징하는 갈고리 십자가(하켄 크로이츠)와 뭐가 다르냐고. ‘절대 선(善)’의 절대권력을 휘두르는 한국판 갈고리 십자가 아니냐고. 어머니를 잃은 슬픔을 증오로 치환시켜버렸던 아돌프 히틀러, ‘내가 정의’라는 도취, 독일 민족은 우월하다는 마음을 울리는 선동, 세계평화라는 그럴듯한 유토피아적 목표, 유대인이라는 명백한 악(惡)의 설정, 유대인이 언론 자본을 장악하고 세계를 정복하려 한다는 식의 음모론. 이 모든 것이 닮지 않았나.
 
노란리본이 한국판 광기의 상징으로 남게 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이슬기 자유경제원 객원연구원

노란리본은 점점 추모와는 거리가 멀어지더니 진실을 밝히라는 정치적 외침이 돼 있었다./사진=미디어펜




(이 글은 자유경제원 젊은함성 게시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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