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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증오·부자에 대한 분노…시민의식도 교양도 없는 나라

2017-01-17 10:30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남정욱 대한민국문화예술인 공동대표

마르크스가 산업혁명 초기 당시의 영국을 모델로 사회발전 5 단계 설을 주장하는 바람에 후발 혁명가들은 세상을 이론에 꿰맞추느라 골머리를 썩여야 했다. 즉 원시 공산 사회(무계급), 고대 노예 사회(토지 : 노예와 주인), 중세 봉건 사회(장원 : 영주와 농노), 근세 자본주의(공장 : 자본가와 노동자), 공산주의(무계급)가 그 발전 단계인데 딱 맞아 떨어지는 나라가 별로 없었던 것이다.

덕분에 중국은 농민혁명이라는 변종을 개발해야 했고 몽골은 원시공산사회에서 사회주의로 바로 이행을 해야만 했다(이 부분에 대해 마르크스는 아시아가 고대노예제 생산양식의 변종인 ‘아시아적 생산양식’에 정체되어 있어 봉건적 생산양식을 경험하지 못한 아시아에서의 자본주의 발전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조선을 흔히 봉건제 국가라고 말한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조선에는 영주가 없었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봉건적 신분 질서’같은 개념은 허구에 불과하다. 관료제 노예 계급사회, 이것이 조선이라는 나라의 정체다.
   
고대 그리스의 시민사회를 부를 때의 ‘시민’에 적합한 개념은 부르주아이기보다는 공민이다. 이처럼 공민은 공동체 내에서 자유와 평등이라는 공공적 가치를 보장받으며 정치영역에 권리와 의무를 가지고 참여하는 주체를 말한다. 따라서 공민의 이념은 역사적이기 보다는 논리적이며, 그것은 하나의 이념형 모델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에 비해 부르주아는 보다 역사적인 개념이며, 역사의 구체적인 한 시기에 산업자본의 형성에 힘입어 등장한 경제적 계급의 의미로 자주 쓰인다. 맑스는 프랑스 혁명을 이러한 사적개인으로서의 시민들에 의한 역사적 과정으로 보았고, 따라서 그것을 부르주아 혁명으로 칭하였다.

당연히 조선에는 시민도 없었다. 시민이라고 부를만한 것이 탄생한 것은 최소한 1948년 이후다. 형식적으로나마 ‘공동체 내에서 자유와 평등이라는 공공적 가치’를 법적으로 부여받았다. 이후의 역사는 이 자유와 평등이라는 미리 온 역사를 현실에서 구현해 나가는 과정이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등장해야 할 부르주아라는 개념의 실종이다. 부르주아라는 개념 역시 나라마다 생성과 성격이 각기 다르다. 

한국에 남는 것은 부에 대한 경멸과 부자에 대한 분오 혹은 증오다. 경제는 압축성장이 가능하지만 민도民度와 역사 발전은 그게 불가능하다./사진=연합뉴스



근대사회의 도래와 함께 역사에 등장하는 시민계급은 기본적으로 전근대적 지배엘리트의 신분지배질서에 대항하는 세력이라는 성격을 지닌다. 또한 이들 시민계급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산업 자본주의적 방식에 의한 자본의 축적, 즉 기존의 토지귀족들과는 다른 재산보유 및 증식방식에 의하여 경제적 실력을 행사하는 집단이 형성되어야 하며, 이러한 경제적 동질성에 기초한 계급(class) 내부에서 자신들을 봉건지주나 노동자와는 상이한 사회적 존재로 인식하는 정체성이 형성되어야만 한다.

아울러 이들의 자기주장과 자기실현을 지지하고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이데올로기적 투쟁수단, 즉 계몽에 의한 자유주의 이념이 그들에게서 발달해야만 하는데(그들이 사회경제적으로 기반하고 있는 자본주의란 즉 개인적 자유주의에 다름 아니므로) 전형적인 서구의 시민계급은 이러한 여러 조건을 두루 충족시킨 바탕 하에서 비로소 성장할 수 있었다. 

독일에서는 영국ㆍ프랑스와는 매우 다른 성격의 시민계급이 형성되고 있었다. 독일이 정치적으로 파편화되고 신성로마제국은 단지 관념적 역할밖에 할 수 없는 존재로 전락하자 각각의 도시는 위로부터의 정치영역에 대항할만한 시민사회의 형성에 있어서 필수적 조건인 자율성을 상실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각각의 도시에서는 영국ㆍ프랑스에 비해 현격하게 완고한 신분적 위계질서가 아직도 사회를 지배하고 있어서 상공업에 종사하던 경제적 중간계층이 활동할만한 정치 사회 경제적 공간이 부족했다. 그 결과 독일에서는 서구적 의미의 시민계급, 즉 전근대적 지배엘리트의 신분지배 질서에 대항하고 평등을 전제한 자유로운 관계형성에 바탕 하여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는 시민계급의 형성이 이루어질 수 없었던 것이다. 

독일의 이 시민 계급을 교양시민이라고 한다. 교양시민이란 대학에서 전문지식을 이수하여 그 지식과 교양을 바탕으로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하는 이들을 말한다. 이때 ‘학식에 의해’ 사회적 신분상승을 추구하던 이들이 자신을 실현하는 주요한 방식은 바로 관직에 진출하는 것이었다. 즉 독일에서의 시민계급은 영국ㆍ프랑스에서처럼 정치영역(국가)과 분리된, 혹은 그에 대항하는 자율적 관계의 체계로서 ‘시민사회’를 구성함으로써 발달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국가의 ‘내부에서’ 국가에 봉사하며 자라났던 것이다.

그 결과 독일에서의 교양시민은 서구적 의미에서의 시민계급에 비하면 보다 ‘체제 편향적’이었다. 정치ㆍ사회 제 영역에 대한 실천적 비판, 체제 비판적 태도를 전제하는 전통적 계몽 이해에 비추어 볼 때, 교양시민은 시민계급으로서는 일종의 ‘미숙아’였던 것이다. 즉 그들의 교양이란 사회비판 및 사회적 실력행사를 위해 소용될 수 없고 오히려 신분상승을 위해 도구적 역할을 다하는 하나의 방편으로 기능했다. 

이 부분에서 ‘독일’을 ‘남한’으로 바꿔도 문맥에 전혀 어색함이 없다. 게다가 조선은 유구한 성리학적 전통과 사농공상의 질서가 골수에 박힌 나라다. 오히려 독일의 교양시민보다 더 교양시민일 수 있는 것이 우리의 교양시민이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의 교양은 독일의 교양과 약간 성분이 다르다. 독일의 교양이 ‘체제 편향적’이라면 우리의 교양은 신분 상승을 위한 도구이면서도 ‘체제 적대적’이다. 하여 우리는 영국ㆍ프랑스와도 다르고 독일과도 결이 틀린 아주 이상한 형태의 시민을 가지게 되었다. 이 이상한 시민 계급이 들고 일어나 성립시킨 것이 이른바 87년 체제다. 국가에 적대적인 시민들(이건 누가 봐도 완벽한 코미디다)이 반체제적인 지향을 하고 있는 나라 대한민국이 2017년 우리가 살고 있는 기괴한 현실이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87년 체제다. 국가에 적대적인 시민들이 반체제적인 지향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그래도 마르크스보다는 과학적이었던 막스 베버는 왜 유럽에서만 유독 진보와 근대화가 가능했는지를 모색하면서 종교, 봉건제, 도시, 관료제, 법제도, 국가형태, 자본주의 등 온갖 주제를 통해 이를 증명하려 노력했다. 이때 베버가 가져온 것이 ‘합리성’이라는 개념이다. 베버는 유럽의 ‘합리성’과 비유럽의 ‘비합리성’을 대비시켜 유럽 세계의 선진성과 비유럽 세계의 후진성을 설명했다.

특히 자본주의 탄생을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연결 지었는데 열심히 일하면서 낭비하지 않고 돈을 모으려는 프로테스탄트들의 합리적인 태도에 의해 자본 축적이 가능했고 이 축적된 자본을 다시 건전하고 윤리적인 사업에 투자함으로써 자본주의가 발전할 수 있었다는 주장이다.

우리에게는 이 전통 조차도 미비하다. 6.25 전쟁을 통해 모두가 평등을 경험하는 가운데 급격한 경제발전이 이루어지면서 이 프로테스탄트 정신과 태도에 대한 존중이 실종된 것이다. 그래서 남는 것은 부에 대한 경멸과 부자에 대한 분노 혹은 증오다. 경제는 압축성장이 가능하지만 민도民度와 역사 발전은 그게 불가능하다. 시민도 없고 시민 의식도 없고 교양시민도 없고 교양도 없는 나라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남정욱 대한민국문화예술인 공동대표


(이 글은 16일 자유경제원이 주최한 ‘반자본주의 정서의 뿌리를 찾는다: 부르주아는 탐욕스러운 존재인가’ 세미나에서 남정욱 대문예인 대표가 발표한 토론문 전문이다.)

[남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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