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리서치 기업인 ‘유니버섬(Universum)'이 전 세계 57개국에서 젊은 직장인 20만 명을 대상으로 직장인 행복지수를 조사한 결과 한국은 최하위권인 49위에 머물렀습니다."
어느 방송 기사에서 접한 내용이다. 한국 경제 규모는 세계 11위를 나타내고 있는데도 우리는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심리학자와 사회학자들은 이러한 사실에 대해서 많은 이유들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이것에 대하여 두 가지 이유를 제시한다.
첫 번째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체로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살지 않는다. 행복은 감사하는 삶, 만족하는 삶에서 나오는 것인데 감사하는 마음이 없으니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는 국가에 대하여, 국가에서 받고 있는 혜택에 대하여, 그리고 각자의 삶 자체에 대해서 만족하고 감사하는 마음이 없다.
우리가 가장 소중하게 간직하면서 사용하는 한국의 지폐에는 어떤 인물들이 그려져 있는지 살펴보자. 화폐는 경제활동의 기본이 되는 것으로 ‘화폐에 그려진 인물’들을 살펴보면, 그 나라 국민들의 가치관에 대해서 알 수 있다. 천 원 지폐는 퇴계 이황, 오천 원 지폐는 율곡 이이, 만 원 지폐는 세종대왕, 오만 원 지폐는 신사임당의 인물이 그려져 있다. 이상하게도 모두 조선시대 인물들이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제창했다는 것은 위대한 역사적인 사실이다. 그러나 위에 제시된 조선시대 인물들이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롭고 풍요로운 삶에 대해서 어떠한 기여를 했는지 의심스럽다. 이황과 이이는 이기론(理氣論)을 주장하고 성리학(性理學)을 체계화시켰다고 하는데, 필자와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기론과 성리학이라는 것이 고등학교 시절에 시험에 출제되는 것 정도로 기억하고 있을 뿐이고, 그것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모르고 살아간다.
조선시대는 노비(奴婢)의 시대로 노비(奴婢)의 숫자가 전체 인구의 35%가 넘는 노예제 사회였다. 노비가 된다는 것은 국가의 보호에서 벗어나 법적으로 주인의 소유물이고 매매의 대상도 되는 것이다. 조선시대는 전 세계에서 이례적으로 노비의 비율이 매우 높았다. 대부분의 나라들이 다른 민족을 노예로 삼은 것과 달리 같은 민족을 노예로 만든 것은 세계적으로 매우 희귀한 현상이다. 자유인들의 나라인 대한민국의 화폐에 노비들의 나라인 조선시대의 인물들을 그려 넣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건강하게 살면서, 직업을 갖고 있고, 자가용을 몰고 다니며 쌀밥을 아낌없이 먹으면서 따듯한 아파트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모습 자체가 바로 기적이다./사진=연합뉴스
미국의 경우에는 7가지 종류의 지폐들 중에서 $10와 $100의 지폐를 제외하고는 5개 종류의 지폐에 조지 워싱턴, 아브라함 링컨 등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로 채워져 있다. 아브라함 링컨은 같은 민족이 아닌 다른 민족인 흑인들까지도 노예로부터 해방시킨 대통령이다. 우리나라 지폐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에서 같은 민족의 노비를 해방시킨 위대한 인물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북한의 5000원 지폐는 김일성이 그려져 있다. 노비가 존재하지 않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대한민국을 건국한 이승만 대통령과, 우리나라의 산업화와 경제적 번영의 토대를 마련한 박정희 대통령은 이황과 이이보다 전혀 부족한 인물들이 아니고, 북한의 국민들을 혹사시키면서 평생 동안 호화 궁전에서 살았던 김일성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위대한 분들이다. 이것 하나만 보더라도 대한민국 국민들은 이승만 대통령, 박정희 대통령에 대하여 감사하는 마음이 전혀 없다.
감사하기는커녕 기회가 올 때마다 위대한 대통령들에 대해서 모욕적인 언사를 내뱉는다. 야당 국회의원들과 여러 단체들이 현재 역사교과서 국정화 작업에 반대를 하고 있는 것도 바로 국정 역사교과서에서 이승만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서 긍정적인 몇 마디 기술을 했다는 이유에서다. 대한민국의 국민들처럼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고 대통령을 무시하고 욕하는 국민들도 드물 것이다.
우리나라 지폐로선 최고액권인 5만 원 지폐에는 신사임당이 그려져 있다. 신사임당은 서예와 그림에 뛰어나고 현모양처(賢母良妻)의 귀감이 되기 때문에 최고액권의 인물이 되었다. 그러나 신사임당이 한국 역사상 그렇게 대단한 여성인지 이해할 수 없다. 신사임당은 진사 댁 양반집에서 태어나 양반집으로 시집을 가서 47년간 좋은 환경에서 살았다.
시장에서, 노동판에서, 식당에서, 혹은 건물 청소 등으로 힘들게 노동을 해야 하는 삶의 악조건에서도 자식들을 훌륭하고 자랑스럽게 길러낸 대한민국의 훌륭한 어머니들은 매우 많다. 그런 위대한 어머니들의 희생 덕분에 지금의 발전된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었다. 게다가 신사임당의 셋째 아들인 이이는 오천 원권의 인물로 기재되어 한 집안에서 두 사람이나 화폐의 인물로 그려져 있다. 이것은 대한민국의 다른 위대한 인물들을 등한시한 한심한 현실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총탄에 부모님을 잃고, 칠흑 같은 암흑 속에서 극심한 고독과 고통의 시간들을 견뎌내었다. 그 후 이 모든 시련을 극복하고 국민들에 의해서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당당하게 선출된 분이고, 북한 전체주의 정권의 붕괴를 촉진하고 자유통일의 초석을 마련하신 분이다. 그러므로 박근혜 대통령은 신사임당에 비해서 결코 뒤지지 않는 여성이다.
살아가면서 ‘아픈 설움’만큼 힘겨울 때는 없다. 이 ‘아픈 설움’을 해결해 주신 분이 박근혜 대통령의 부친이신 박정희 대통령이다. 한국의 의료보험의 역사는 1963년 12월 16일 의료보험법 제정에서 시작되었다. 1977년 7월에 생활보호대상자 등 저소득층에 의료보험이 적용되었고, 근로자가 500인 이상 사업장 480여 곳을 대상으로 보험에 적용되었다. 그 후 의료보험의 적용 범위는 점점 늘어 1979년 공무원과 사립학교 교직원, 또 300인 이상의 근로자가 일하는 사업장에도 해당이 되었다. 현재는 전 국민이 건강보험의 혜택을 받게 되었고, 중증환자에게는 진료비의 5%만 부담되는 세계 최고 복지국가 수순의 건강보험으로 정착하게 되었다.
선진국인 미국의 경우에는 대부분의 의료보험을 사설 기관이 제공하고, 적어도 인구의 15%는 전혀 보장이 되지 않고 있다. 그 외 상당수의 인구도 의료 혜택을 알맞게 받지 못하고 있고, 의료 채무는 미국인들이 파산하는 주요인이 되고 있다. 이런 상황인데도 의료보험의 성공적인 시작을 주도했던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서는 우리 대부분의 국민들이 전혀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지 않다. 이와 같이 우리 국민은 위대한 대통령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본인들이 누리고 있는 개인적인 삶의 풍요로움에 대해서도 감사하는 마음이 없고 온갖 불평불만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니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국민들 다수는 이승만 대통령, 박정희 대통령에 대하여 감사하는 마음이 전혀 없다. 감사하기는커녕 기회가 올 때마다 위대한 대통령들에 대해서 모욕적인 언사를 내뱉는다.
두 번째로, 우리는 가정과 학교에서 행복한 사람이 되기보다는 훌륭한 사람, 편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되도록 교육을 받아 왔다. 본인이 하고 싶은 일, 본인의 적성에 맞는 일, 삶의 의미와 보람을 갖고 살아갈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로부터 성공한 사람이라는 인정을 받기 위해서 노력해 왔다. 한 가지 예(例)로 지금 아파트, 주택, 도로에 있는 자가용들의 모습을 살펴보자. 우리나라의 경제가 발전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전국 어디에서나 소형차보다는 중형차들과 외제차들로 가득하다. 그러나 우리보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영국과 독일의 주택 도로변에서는 소형차들로 가득하다.
물론 큰 자가용이 필요한 경우에는 중형차를 구입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출퇴근용으로 주로 혼자만 타고 다니는 자가용들이 점점 대형화되어 가고 있는 실정이며, 자가용 한 대 있는 집은 두 대를 갖게 되어서 전국 아파트 주차장뿐만 아니라 시골길에서도 대낮에 자가용들로 가득차서 좁은 땅 면적 때문에 주차전쟁이 일어나고 있다. 더구나 석유 한 방울 안 나오는 나라에서 대형 외제차는 점점 더 늘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것은 바로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성공한 사람, 훌륭한 사람으로 인정받으려 하는, ‘나’보다는 ‘남’을 의식하는 체면문화와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 실용성을 우선시하면서 ‘나’를 당당히 표현하려고 하는 선진국과는 달리 조선시대의 허례허식 문화가 지금도 우리를 감싸고 있는 중이다. 그러니 남들과 비교해 볼 때 초라함을 느끼는 우리는 항상 불만족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에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병든 사람들, 일자리가 없는 사람들, 어려움을 당해서 힘든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행복감을 갖기는 참으로 힘들다. 그러나 광화문의 촛불시위에 참가해서 밤늦게까지 행진을 하고 청와대 앞에서 소리를 지르는 시민들은 건강하고, 직업이 있고, 대통령에 대해서 자유롭게 비판할 수 있는 국가에서 얼마나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는지 고마움을 느끼지 못한다. 평생 교사생활을 한 필자보다 더 많은 연봉을 받으면서도 국가 경제와 기업 상황의 어려움은 등한시하고 봉급을 더 올려 달라며 매년 파업을 하는 노조원들도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고 청와대를 향해서 ‘대통령 사퇴’, ‘대통령 체포’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그래, 박근혜 대통령이 물러가고 촛불시위에 함께 참가한 대선 주자들이 정권을 잡으면 낙원과 같은 이상적인 사회가 기적처럼 나타날 것 같은가! 그러나 지금의 대한민국의 발전 자체가 기적이다. 아울러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건강하게 살면서, 직업을 갖고 있고, 자가용을 몰고 다니며 쌀밥을 아낌없이 먹으면서 따듯한 아파트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당신들의 모습 자체가 바로 기적이다. 단지 당신들은 그 기적 같은 삶에 대해서 감사하는 마음이 없을 뿐이다. /이명호 시인
(이 글은 자유경제원 세상일침 게시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명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