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리스트 의혹 논란은 탄핵정국의 중심부로 진입했다. 급기야는 지난 21일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문화예술인 지원 배제 명단, 소위 '블랙리스트'와 관련하여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및 위증(국회에서의 증언·감정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동시 구속됐다.
이날 구속 소식에 이어 박 대통령이 블랙리스트 작성을 지시했다는 의혹제기 보도가 나왔고, 대통령 측 변호인단은 허위보도에 대한 민형사상 법적 대응에 나서기로 했다. 조윤선 장관은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민변과 참여연대는 지난달 박영수 특검팀에 김기춘 전 비서실장 등을 고발한 데 이어, 김 전 실장과 조 전 장관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한다고 밝혔다.
“내가 이승만 정권부터 지금까지 대통령을 다 겪었는데, 그 사이 우리 영화계에도 좌파 우파가 생겨납디다. 좌파, 좋지요. 비판할 수 있어. 그런데 극좌는 안 돼요. 이게 선배고 뭐고가 없어. 저희끼리 똘똘 뭉쳐서 영화진흥기금 다 해먹고, 자기네 반대하는 사람들은 영화도 못 하게 해요. 그 돈 가지고 전부 좌파 영화 만들었잖아요? 수익금으로 정치자금 만들고. '바다이야기' 총책이 누구예요? 예술가는 그렇게 살면 안 돼요. 타협하면 안 된다고. 열흘 보는 꽃이 없고 3대 가는 부자 없어요. 영화는 커피 팔듯 하는 산업이 아니에요. 정신 산업이라고.” - 영화배우 이대근 씨, 조선일보 인터뷰 내용 중.
블랙리스트 의혹 논란의 본질은 블랙리스트 작성 여부, 명단의 실체가 아니다. 문체부 입장에서는 지원금 수령명단이나 후보명단 등을 언제 어디서나 만들 수 있고 만들어야 한다. 국민 세금을 허투루 쓸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정부 예산을 문화예술계에 써야 한다면 문화융성에 기여할 수 있는 자들에게 선별적으로 쓰여야 한다. 반정부 투쟁이나 일삼고 대한민국 헌법가치인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에 반하는 문화예술인들에게 왜 국민 혈세가 들어가야 하나. 우리나라에서 문화예술계에 들어가는 연 예산은 6조 9000억 원에 달한다.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는 이들 중 박근혜 정부에서 누가 얼마나 무엇을 이유로 지원 받았는지 공개하자. 블랙리스트 인사라면 어느 누구도 현 정부로부터 지원받지 못했을 것 아닌가./사진=연합뉴스
이와 관련, 이용남 청주대 영화학과 객원교수는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도종환 의원이 주장한 블랙리스트와 조윤선 전 장관이 언급한 블랙리스트는 전혀 다른 것”이라며 “언론과 좌파 문화권력은 이것을 같은 리스트로 둔갑시켜 국민을 선동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블랙리스트 논란이 일종의 중상모략이라는 지적이다.
이용남 교수는 “블랙리스트와 문화안보리스트는 다르다”며 “도 의원이 의혹제기의 근거로 제시한 블랙리스트는 인터넷에 공개되어 떠돌고 있는 시국선언이나 지지선언의 리스트지만 조 장관이 밝힌 블랙리스트는 대한민국 정통성과 정체성 수호를 위한 문화안보리스트”라고 설명했다.
작금의 사태는 소위 블랙리스트에 포함되었다는 이유로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한 자들이 들고 일어났다고들 하지만, 급기야는 정부가 문화지원을 하지 않았다고 정부 고위 담당자를 상대로 손해배상까지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정치권력으로부터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부르짖는 자들이 정부지원금을 받지 못했다며 손해배상을 한다? 지난 몇 달 간 일어난 일련의 블랙리스트 사태는 문화예술계의 거지 근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만고의 진리다. 블랙리스트에 광분하는 자들은 자활-자생력을 키울 각오는 없는지 반문한다. 공짜 밥그릇에 익숙해지면 노숙자나 다름없다. 자기 앞가림을 못하면서 남의 돈을 뜯어먹고 산다면 독립된 개인이라 할 수 없다.
특검은 문화예술 관련 예산 및 정책에 대한 이중 잣대를 버리고, 공정하며 객관적인 수사를 이어나가야 한다./사진=연합뉴스
자, 그렇다면 블랙리스트든 뭐든 지난 김대중 정부-노무현 정부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지원 받은 문화예술계 인사들 전원의 정치 편향을 모두 확인해보자. 이들 정치 성향에 문화의 다양성이 과연 있었는지 말이다. 또한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는 이들 중 박근혜 정부에서 누가 얼마나 무엇을 이유로 지원 받았는지 공개하자. 블랙리스트 인사라면 어느 누구도 현 정부로부터 지원받지 못했을 것 아닌가. 이미 국정감사에서도 이를 다룬 바 있다. 블랙리스트와 정부의 문화예술지원사업 선정 리스트를 대조하면 손쉽게 정확한 답이 나온다.
실체가 불분명했던 블랙리스트 하나로 특검이 청와대 전 비서실장과 문체부장관을 구속할 정도이니 이번 박영수 특검팀은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이어져온 문화예술계의 적폐를 모조리 도려낼 역량을 충분히(?) 갖추었다고 판단된다. 다만 특검의 수사범위를 벗어난 직권남용은 큰 우려를 낳고 있다.
정부의 문화정책을 샅샅이 뒤지고 담당자였던 수석과 장차관들을 구속하는 것은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를 해체시킬 지경에 이르고 있다. 정상적인 국정수행과 정책 집행은 불가능할 정도다. 특검은 문화예술 관련 예산 및 정책에 대한 이중 잣대를 버리고, 공정하며 객관적인 수사를 이어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특검은 스스로 정치적이며 결론을 정해놓고 근거를 짜 맞추는 과잉수사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김규태 재산권센터 연구위원
[김규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