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한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정도라면 정상적인 사회로 볼 수 없다. 요즘 떠들썩한 특검의 이른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수사 얘기인데, 왜 균형을 잡아주는 성찰과 견제의 목소리가 이토록 드문가? 왜 특검의 과잉수사에 대한 경고는 미디어펜을 포함한 극소수 매체에 국한되는가?
대부분 다른 매체들은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문화 지원의 낡은 명제, 그것도 우리 실정과 맞지 않는 헛소리를 반복할 뿐이다. 그건 더 없이 무책임한 태도인데, 결과적으로 박근혜 정부의 문화정책에 큰 문제가 있고, 그 정점에 대통령이 있다는 잘못된 통념을 심어준다.
이미 특검은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 공직자 5명을 구속시킨데 이어 블랙리스트의 윗선으로 지목된 대통령을 겨냥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본 칼럼은 좌편향된 문화계의 구조를 문답 형식으로 정리해봤다. 글의 초점은 명확하다. 체제파괴에 열중하는 한국 문화예술의 특수성에 완전 깜깜이인 특검이 지금 얼마나 위험한 짓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지적이다.
문체부의 23일 대국민 사과문은 섣부른 짓
-주무부처 문체부에서 이 문제와 관련해 대국민사과문을 23일 발표했다.
"한마디로 사과문은 불필요했으며 섣부른 것이었다. 사과문은 '잘못된 문화행정이 참담하고 부끄럽다'는 내용인데, 전 장관(김종덕)과 현 장관(조윤선)이 동시 구속됐으니 조직이 어수선하겠지만 그런 대응은 잘못이다. 블랙리스트 문제는 아직 특검의 수사 단계이고 의혹이 전부인데, 서두를 일이 아니었다. 결정적으로 반정부-반체제에 몰두하는 예술인들에게 국민 혈세를 지원할 순 없는 노릇 아닌가? 사과문 대신 당당하게 주무부처의 논리를 펴는 게 우선이었다.”
-요즘 그런 말 하는 사람은 없다. 너무 앞서 나가는 목소리가 아닐까?
"그래도 할 말은 해야 한다. 정말 유감은 문체부 사과문에 오해의 소지가 있는 점이다. 박근혜 정부 문화정책을 전면 무효화하고 좌파에 대한 지원을 무차별적으로 하겠다는 뜻으로 새겨지는 대목이 적지 않다. 일테면 '각계각층 의견을 받아들여 문화예술의 다양성을 확대하겠다', '문화예술 정책과 지원의 공정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대목 등이 그렇다.'
-문체부 국실장을 포함해 문제가 많다는 건 아는 이는 다 안다. 실은 특검의 수사 초기 김기춘 실장과 조윤선 장관부터 뭔가 수세적이고, 변명에 급급한다는 느낌이었다.
"맞다. '나는 모른다', '블랙리스트는 없다'는 식으로 피해가기 일쑤였다. 그런 소극적 대응 대신 반정부, 친북, 용공, 반대한민국, 반체제 예술에는 결단코 지원할 수 없다는 원칙 천명과 함께 정면대응을 했어야 옳았다. 체제파괴에 열중하는 이 나라 문화예술계의 특수성을 특검과 국민에게 소신있게 설명하는 게 먼저였다."
12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을 주도한 혐의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왼쪽)과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21일 구속됐다. /사진=연합뉴스
-특히 조윤선 장관이 전문성이 떨어지며, 무기력했다는 지적도 있다.
"무엇보다 이 나라 문화예술계의 특수한 성격을 지적했어야 했다. 이 나라 문화계는 정상적 문화예술 대신 '문화의 옷을 걸친 정치투쟁'이 주류라는 것, 그들은 반(反)대한민국 정서를 부추기고 그걸 문화라고 포장해왔다는 점을 당당히 밝히며 국민 이해를 구해야 했다."
-그게 어디 쉽겠나? 지금 특검이 여론을 앞세워 요란한 칼춤을 추고, 대부분 언론이 환호를 하는 상황에서 대립각을 세우긴 어려웠을 것이다.
"인정한다. 지금 이 나라는 거의 혁명 전야의 분위기다. 그래도 그렇지 책임 있는 공직자라면, 그 따위의 반정부 무대를 올리면서 감히 국고지원까지 받겠다며 손을 내미는 좌파 예술인들의 요구가 얼마나 부끄럽고 저열한 행위인지를 딱 부러지게 지적했어야 했다."
-조중동을 포함한 주류 언론이 이 문제에 대한 접근이 실로 가관이던데….
"가관이다. 그중 형편없는 게 중앙일보다. 1월23일자 사설을 보니 블랙리스트 소동을 보며 '권위주의 시절로 되돌아간 참담함을 느낀다'라고 썼다. 문화예술이 무언지도 모르고, 이 니라 문화의 특수성엔 완전히 눈을 감고 있으니 이 따위 말을 쉽게 한다. 가소롭다. 요즘 혁명놀음에 여념 없는 중앙일보답다고나 할까."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달부터 그런 과격한 논조였다.
"지난달 12월29일자 사설 '문화계 블랙리스트, 한 점 의혹 없이 철저히 규명하라'에서도 그들은 선동을 했다. '블랙리스트 의혹이 사실이라면 국가가 사전검열이나 예산지원 배제를 넘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중대범죄다. …초법적, 탈법적 국가폭력이나 다름없다.'는 식이다. 이 정도면 거의 제정신이 아닌 논조인데, 황당할 뿐이다."
-조선일보도 그런 식이던데….
"그렇다. 날뛰는 신문 중앙일보보다는 좀 덜하지만, 오십보백보다. 그들은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문화 지원의 낡은 명제를 무슨 거룩한 원칙인양 떠받든다. 한국적 특수성에 대한 성찰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문열 "문인(文人) 열 중 아홉이 좌파"
-문화예술계 전체가 반체제 활동을 하는 건 아니지 않나?
"좋은 지적이다. 문화의 옷을 걸친 채 반(反)대한민국 정서를 불어넣고, 진지전(陣地戰)이란 이름 아래 문화예술을 혁명투쟁의 장소로 삼아왔던 영역이 지금의 문화계인데, 그런 움직임을 주도하는 건 소수세력이다. 하지만 문화예술인 대부분이 그런 분위기에 휩쓸린다는 점이다. 그 결과 좌파정서가 손을 써볼 여지가 없을 정도로 보편화됐다. 한마디로 병든 것이다."
-소설가 이문열이 "대한민국 문인은 열의 아홉, 아니면 열에 열 모두가 좌파"라고 지적하지 않았던가?
"그거 맞는 말이다. 그의 말 그대로 '한국문학에서 대한민국의 가치와 발전을 말하면 보수반동으로 찍히고, 빈부격차를 강조하고 재벌을 욕해야 의식 있는 작가로 보인다.' 문학만 그런 게 아니고 영화-연극-미술 등 다른 장르도 사정은 거의 비슷하다."
-실은 박영수 특검팀에게 문화란 관심 밖이다. 다만 박근혜 대통령을 엮기 위해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활용하려했을 것이다.
"특검팀의 관심은 오로지 박 대통령이다. 이 정부의 2인자를 구속시켰으니 이제는 대통령의 차례라는 식이다. 이런 상황에서 블랙리스트의 진실 규명은 특검 수사의 성패뿐 아니라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에도 중요한 변수다. 특검 수사의 세 갈래 방향 중 '뇌물수수'와 '세월호 7시간'의 파괴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져 가고 있어 특검으로서도 블랙리스트 수사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그럼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까?
"특검은 여론을 등에 업고 높은 사람 잡아 들이는 등 분위기를 만드는 데는 큰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대통령은 또 다르다. 박 대통령은 블랙리스트 작성을 어느 누구에게도 지시한 일이 없다고 지난 1월 초 밝힌 바 있다. 물론 김기춘 전 실장 등에 대한 재판과정은 또 분위기가 또 다를 것이고, 사실 관계가 뒤집힐 가능성이 높다. 즉 믿는 건 시간이고, 사람들의 이성이 되돌아오길 기다려야 한다." /조우석 주필
[조우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