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의 광풍(狂風)에 맞춰 칼춤 추는 언론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재판은 중요한 역사 기록이 될 것이다. 언론은 이 재판을 기록함과 동시에 주요 내용을 뽑아 국민들에게 알리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국민 대부분이 언론 매체의 보도를 통해서만 탄핵 심판 진행상황을 보고 듣고 있다. 재판은 한 번 열리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8시간 이상 지속된다. 생업에 집중해야 할 국민들은 재판 과정을 일일이 확인할 여력이 없다. 광장에서는 성난 민심이 국회의 탄핵 가결을 두고 축제의 장을 벌이더라도, 재판을 보도하는 언론까지 그래서는 안 되는 이유다. 하지만 언론조차 광풍(狂風)이 부는 광장의 장단에 맞춰 칼춤을 추고 있다.
'차명폰 논란’으로 이슈 만들기, 이게 최선입니까
정호성 전 비서관이 증인으로 참석했던 7차 변론기일 이후 쏟아진 기사만 봐도 그렇다. 언론에서는 일제히 박 대통령의 차명 휴대폰 사용을 핫이슈로 만들었다. 한국경제신문 <“박 대통령, 차명 휴대폰 썼다”>, 연합뉴스 <정호성 "박 대통령도 차명폰 있고 사용하는 경우 있었다">, 뉴스1 <헌재 출석 정호성 "朴대통령, 차명폰 갖고 있다" 진술>, 한국일보 <“朴 차명폰 사용했다”… 정호성 시인에 논란 확산> 등 누가 먼저랄 것도 없었다. 일부 언론에서는 정호성 전 비서관이 차명폰 사용을 '폭로’했다며 대단한 부정행위가 밝혀지기라도 한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기사개요>
● 매체 : 한국경제신문, 연합뉴스, 뉴스1, 한국일보 등
● 기사명 : “박 대통령, 차명 휴대폰 썼다” 外
● 기자: 매체 순으로 고윤상, 방현덕, 안대용, 박지연기자
● 보도일자 : 2017년 1월 20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재판은 중요한 역사 기록이 될 것이다. 언론은 이 재판을 기록함과 동시에 주요 내용을 뽑아 국민들에게 알리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사진=미디어펜
언론 매체와 기자들에게 묻고 싶다. 정말 이게 최선인가. 헌재는 정호성 증인이 참석한 7차 변론기일에 국정농단 의혹과 관련해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가 실제로 국정에 개입했는지, 정호성 전 비서관은 어떤 문건을 최서원에게 전달했고 어떻게 돌려받았는지 등을 다뤘다. 중요한 증언도 많이 나왔다. 대통령과 최순실이 오랫동안 어떤 관계를 맺어왔는지, 대통령이 얼마나 꼼꼼하게 국정을 챙겼는지, 또 그간 언론에 사실처럼 보도된 내용들 중에 어떤 내용이 맞고 틀린지 등에 대해서도 자세한 증언이 있었다.
그런데도 기자들이 보기에는 이 날 정호성 비서관의 증언 중에 가장 중요한 내용이 차명폰 사용이었나. 국민들이 가장 궁금해 할 내용이 차명폰일 거라고 판단한 것이 누구인가.
국민들 눈귀를 가리는 것이 보도의 목적인가
대통령이 보안을 위해 사용했다는 차명폰이 탄핵 심판의 핵심이 아니라는 사실을 국민들은 알고 있다. 차명폰 사용이 불법 사찰이 난무한 정치권의 오랜 악습 때문이라는 설명은 충분히 납득이 된다. 또 “북한 관련 문제도 있다”는 정호성의 설명대로 대통령은 북한의 도청 문제로부터 최대한 자유로워야 한다. 다른 보안 방법도 있는데 왜 굳이 차명폰을 사용하느냐는 반론은 적절하지 않다. 이는 우리나라 국민들이 '휴전’ 상태에 살고 있음에도 안보의식이 부족하다는 반증일 뿐이다. 박 대통령 본인의 명의로 된 휴대폰에 보안 조치를 하는 것보다 대통령이 누구의 휴대폰을 쓰는지 알 수 없도록 하는 것이 더 안전한 조치라는 것이 합리적인 추론이다.
대통령의 탄핵을 손꼽아 기다리는 사람들이야 정호성의 증언을 사실로 믿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언론은 공정해야 한다. 기자 개인은 정호성이 진실을 말하는지 거짓말을 하는지 판단할 능력도 없다. 그러니 가치판단을 최대한 배제하고 가장 핵심적인 내용을 그저 담담하게 전달하는 역할만을 맡아야 한다. 정호성의 자기방어적인 증언 또한 핵심적인 내용이라면 보도돼야 한다. 그런 내용을 보도한다고 누구의 편을 드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판단하는 것은 헌법재판관들이 몫이다. 또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독자들의 판단이다.
헌재는 정호성 증인이 참석한 7차 변론기일에 국정농단 의혹과 관련해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가 실제로 국정에 개입했는지, 정호성 전 비서관은 어떤 문건을 최서원에게 전달했고 어떻게 돌려받았는지 등을 다뤘다./사진=연합뉴스
국민들은 바보가 아니다
조금 복잡하고 어렵더라도 중요한 내용을 전달받을 권리가 있다. 당장 이슈가 된다고 쉽고 자극적인 내용만 꼽아서 보도하는 것은 언론으로서의 책임과 신뢰를 모두 저버리는 일이다. '차명폰’을 이슈화 시키느라 정작 중요한 내용은 빠뜨린 보도는 객곽적이지도 중립적이지도 않다. 이런 보도 행태가 바뀌지 않는다면, 머지않아 국민들이 언론을 보이콧하는 날이 올 것이다.
국민들도 명확히 알아야 한다. 아직 대한민국 사회 언론의 수준이라는 게 고작 이 정도다. 중요한 재판인 만큼, 공정한 재판이 이뤄지고 있는지 직접 챙겨 보는 수밖에 없겠다. 현재 진행 중인 탄핵 심판은 8시간 정도로 매우 길다. 그래도 한번쯤은 독자들도 언론이 마음대로 조각조각 편집한 내용만은 아니라 직접 동영상을 보고 판단해야 한다. 헌법재판소 홈페이지(http://www.ccourt.go.kr/cckhome/kor/info/selectDiscussionVideoList.do)에는 전체 변론 영상이 올라와 있다. /이슬기 자유경제원 객원연구원
(이 글은 자유경제원 자유북소리 언론고발 게시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