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문상진 기자]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에 세계가 경기를 일으키고 있다. 국내 상황은 트럼프의 불확실성에 국정 마비까지 겹쳐 그야말로 진퇴양난이다. 우울한 설 연휴에 날아든 대림산업과 SK건설, 삼성전자와 LG전자의 희소식은 그래서 더욱 반갑다.
하나는 '터키 현수교 대첩'으로 불리는 한·일수주전에서 대림산업과 SK건설의 승전보요. 또 하나는 미국 가전 시장을 제패했다는 삼성전자의 낭보다. 터키 현수교는 3.7km에 달하는 세계 최장으로 완공되면 또 하나의 세계적 랜드마크가 된다.
대림산업과 SK건설 컨소시엄은 터키 다르다넬스 해협을 가로지르는 3.7㎞ 교량과 진입도로 건설 공사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공사비만 3조5000억 원이 투입되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이번 수주 성공의 의미가 큰 것은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시점에서 올린 개가란 점이다.
일본은 아베 총리까지 나서는 전력전을 펼쳤다. 터키와 정상회담은 물론 입찰 1주일 전에는 국토교통상을 현지에 파견했다. 한국도 지난해 일찌감치 대림산업에 예비 타당성 조사비용 4억 원을 지원하는가 하면 연말에는 김형렬 국토부 건설정책국장이 터키를 방문해 측면 지원에 나섰다. 한·일 양국의 국가 자존심이 걸린 수주전쟁이었다.
업계 관계자들은 "'팀 이순신'이 터키 해협에서 일본 연합군에 승리한 셈"이라고 비유할 만큼 큰 의미를 뒀다. 3년 전 일본에 당했던 터키 원전 수주 패배를 설욕, 자신감을 회복했다는 것도 성과다. 그러나 무엇보다 터키 대첩이 반가운 것은 침체된 해외건설의 물꼬를 텄다는 점이다.
차기 대선주자인 문재인 ,이재명, 안철수 등 누구를 막론하고 재벌의 목에 칼을 겨누고 있다. 기업이 일궈놓은 공든탑에 숟가락 얻는 것도 모자라 아예 재를 뿌리는 우를 범해선 안된다. /사진=연합뉴스
한국 경제성장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해외건설은 최근 연이은 수주 실패의 악몽에 시달렸다. 2009년 아랍에미리트 원전 수주 이후 대규모 수주전에서 일본 등 경쟁국에 번번이 밀렸다. 지난해 수주 실적은 282억 달러로 2015년의 461억 달러보다 39% 급감했다. 오랜 가문 끝에 내린 단비요, 새로운 희망의 사다리다. 한국 건설의 저력을 다시금 확인한 쾌거다.
일본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정상회담을 활용해 직접 지원에 나섰고, 입찰 1주일 전에는 국토교통상을 현지에 파견했음을 고려하면, 2013년 터키 제2원전 수주전의 고배를 되돌려주면서 한국 건설의 저력도 확인한 쾌거다.
서로 다른 강점을 가진 대림산업과 SK건설이 결합한 것도 도움이 됐다. 대림산업은 교량 건설에 강하고, SK건설은 이미 현지에서 유라시아 터널 공사 등을 성공시켜 현지 네트워크에 강점이 있다. 두 회사는 국내 최장 현수교 이순신대교 건설에 함께 참여한 인연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팀(team) 이순신'이 터키 해협에서 일본 연합군에 승리한 셈"이라고 비유했다.
저가 입찰논란도 불식시켰다. 대림산업은 2013년 국내 최장의 이순신대교로 세계 여섯 번째 현수교 기술 자립국 반열에 올려놓았다. SK건설은 지난해 말 ‘유라시아 해저터널’ 공사를 성공리에 마치면서 터키 현지의 탄탄한 네트워크 의 경쟁력을 자랑한다. 두 회사의 컨소시엄은 그야말로 황금조합이었다. 여기에 수출입은행과 무역보험공사가 저금리 자금지원도 큰 몫을 했다. 민관이 손잡고 이룬 승리다.
삼성전자가 미국 가전시장 점유율 부동의 1위 월풀을 처음으로 제친 것도 낭보다. 지난 30일 시장조사 기관 트랙라인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해 미국 생활가전 시장에서 17.3%의 점유율로 16.6%에 그친 월풀을 제쳤다. LG전자도 시장점유율 15.7%로 2위 월풀을 바짝 추격하고 있다.
삼성과 LG는 가전시장의 알짜배기로 꼽히는 미국의 프리미엄 시장을 완전히 장악했다. 106년 역사의 월풀이 한국의 삼성전자와 LG전자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된 것이다. 업계관계자는 삼성과 LG의 쾌거는 기술력과 속도 덕분이라고 말한다.
삼성전자와 LG전자의 미국 생활가전시장 접수, 터키 현수교를 수주한 대림산업과 SK건설의 승전보는 경제계뿐만 아니라 정치권에 던지는 메시지도 명확하다. 국정 마비와 대선놀음에 빠진 혼돈의 대한민국에 묵직한 울림이다. 경제민주화를 부르짖으며 대기업 발목잡기에만 몰두하는 대한민국의 대선주자나 정치인들에 되물음이다.
이건희 삼성 회장이 1995년에 베이징에서 “우리나라는 경제는 이류, 관료는 삼류, 정치는 사류”라고 했던 말은 아직도 유효하다.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에 대기업 총수들이 청문회에 불려나와 모욕과 망신을 당했다. 특검은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기각 당했다. 분이 안 풀렸는지 다시 재청구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지난 18일 김영배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이 "뭘 안 주면 안 줬다고 패고, 주면 줬다고 패고 기업이 중간에서 어떻게 할 수 없는 이런 상황이 참담하기 그지없다"고 개탄한 것이 지금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다.
사류정치에서 일류기업이 나온 건 그야말로 기적이다. 차기 대선주자인 문재인 ,이재명, 안철수 등 누구를 막론하고 재벌의 목에 칼을 겨누고 있다. 그들이 말하는 건 합법적인 ‘삥’ 뜯기다. 그러나 세상에 합법적인 ‘삥’ 뜯기는 없다. 사류에 머물고 있는 자신들을 먼저 돌아봐야 한다. 기업이 일궈놓은 공든탑에 숟가락 얻는 것도 모자라 아예 재를 뿌리는 우를 범해선 안된다.
[미디어펜=문상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