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최주영 기자]“1000명 중 1~2명만 여자입니다. 조종사는 남성 지원자 비중이 압도적으로 많은 편이고, 군 경력을 보유한 경우 우대를 하기 때문입니다.”
국내 한 대형항공사에 근무하는 A씨의 말이다. 항공업계에서 여성 조종사가 되는 것은 그야말로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 어렵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2012년부터 2016년까지 5년간 국내에서 항공기 조종사 자격증을 취득한 8734명 가운데 여성은 전체 중 352명에 불과하다. 비율로 치면 고작 4%다.
실제 지난해 조종사 자격을 취득한 여성은 107명으로 지난 10년 이래 최고 수치를 기록했지만 조종사로 투입되는 여성은 10명 중 1~2명꼴 밖에 되지 않는다. 항공사들이 여성 조종사보다 남성 조종사를 더욱 선호하기 때문이다.
대형항공사에 비해 기장직을 일찍 달 수 있는 저비용항공사(LCC)도 여성 조종사 인력이 5명 미만이다. LCC 업체 중 가장 많은 11명의 여성 조종사 인력을 보유한 B사 관계자는 “여성 조종사 수가 두 자릿수로 성장했지만 그마저도 300여명에 가까운 인원의 3%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왜 항공사는 여성 조종사를 선호하지 않을까. 곱씹어 보면 아직 우리 사회는 남성과 여성이 할 일, 즉 편견이 강하게 뿌리내리고 있는 듯하다.
그도 그럴것이 민항기 조종사라고 하면 으레 '남성의 직업'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비행기라는 대상을 대한민국 사회라고 가정하면 남성이 비행기를 몰고 여성이 기내에서 음료를 서비스해야 한다는 고질적 인식이 존재하는 셈이다.
업계에서는 여성 조종사를 기피하는 이유로 그들을 채용한 이후 임신과 출산을 이유로 휴직이 불가피하다는 점이 가장 먼저 꼽힌다. 여성 직원들이 업무 복직후 재교육을 거치는 등 투자해야 하는 시간과 비용이 발생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기피 대상 1순위'라는 것이다.
여성 조종사들이 금녀의 벽을 허물기란 사실상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여성들이 추구하는 일과 가정을 양립을 위한 사회적 지원은 상대적으로 빈약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항공사들이 여성 전문인력을 적게 채용하는 것에 대해 '남녀 성비율을 고정해 여성을 의도적으로 적게 뽑는 것이 아니냐'는 소문도 흘러나온다.
2008년 국내 최초 민간 항공사에 여성 기장이 탄생했다는 소식이 알려진 후 여성 조종 인력은 종종 언론을 통해 사회에 비춰지거나 지속적으로 그 비중이 늘어나는 듯 보였다. 하지만 8년여가 흐른 현재도 여전히 항공업계에서 조종사의 성비 불균형 문제가 회자되고 있다.
항공사들은 조종사 성비를 맞춰야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세계적으로도 항공 조종사의 성비 불균형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리즈 제닝스 국제여성조종사협회 회장은 얼마전 인터뷰에서 "세계 항공기 조종사 가운데 겨우 5%가 여성"이라며 "이들 중 파일럿(기장)은 극소수에 불과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최근 국토부가 집계한 항공여객 규모는 1억명을 처음으로 넘기며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항공여행이 급증하면서 파일럿 기근 현상이 더욱 극심해지는 현재 조종사 성비 불균형 해소가 더욱 절실한 이유다.
[미디어펜=최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