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3대세습 체제의 안정을 위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극도의 공포정치를 구사하고 있다. 급기야 해외 언론 인터뷰에서 3대세습을 정면 비판한 적이 있는 이복형 김정남을 살해했다. 김정은이 ‘2인자’로 불리던 장성택을 쳐내더니 김일성과 건국공신인 ‘빨치산혈통’에 이어 ‘백두혈통’ 제거에 나선 모습이다.
말레이시아 경찰이 18일 북한 여권을 소지한 40대 남성 리정철을 체포함으로써 김정은이 이 사건을 직접 지시했을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 결국 김정은은 자신의 부친 김정일의 75회 생일 기념일에 장남의 죽음을 바쳤다.
북한에서는 김일성과 김정일의 생일이 최대 명절이고, 이런 날 즈음해서는 대개 ‘축포’ 삼아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시험발사와 같은 도발을 일삼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해외에서만 떠돌던 김정남의 목숨을 거두는 일을 벌이면서 그 배경이 주목된다.
집권 5년차인 김정은이 북한 내부에서 아직까지 권력 안정화에 ‘올인’하고 있는 것은 그만큼 조직지도부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물론 조직지도부가 백두혈통까지 제거할 필요성을 제기했고, 이를 김정은이 수용했을 것이다.
이런 배경에는 최근 들어 빨치산혈통이든 백두혈통이든 탈북과 망명이 잇따르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고위층 탈북과 김정은의 공포통치는 무엇이 먼저랄 것도 없이 흔들리는 북한 지도부의 실상을 보여주고 있다.
북한 외교관 출신으로 황장엽씨 이후 최고위층 탈북자로 꼽히는 태영호 전 주영 공사의 아내는 김일성 빨치산 동료 오백룡 일가이다. 지난해 5월에 열린 7차 당대회 때 오백룡의 장남 오금철 총참모부 부총참모부장이 당 중앙위원에서 후보위원으로 밀렸다. 해군사령부 정치위원을 지낸 차남 오철산은 당 후보위원에서도 탈락해 오씨 일가의 몰락을 예고했다.
말레이시아 일간 뉴스트레이츠타임스 18일 자 1면에 실린 김정남의 피살 직후 모습이 담긴 신문이 가판대 상단을 차지하고 있다. 사진 속 김정남은 청색 상의에 청바지 차림으로 1인용 안락의자에 축 늘어진 상태다. 오른쪽 손목에는 염주로 추정되는 물건이 감겨 있고, 왼손에는 시계와 반지가 끼워져 있다./연합뉴스
또 김정남 피살사건과 함께 백두혈통의 망명설이 돌고 있다. 김정남 김정은과 5촌 이내의 가까운 친척으로 알려진 50대 김모씨와 그의 아내, 아들, 딸까지 베이징을 거쳐 제3국에서 한국행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김정남에 대한 암살이 벌어지면서 김정남의 아들 김한솔은 물론 김정은의 숙부 김평일과 친형 김정철도 불안해졌다.
김정은은 김일성과 함께 건국 공신이랄 수 있는 빨치산 후손들을 과감하게 숙청하면서 아버지와 다른 길을 걸어왔다. 북한에서 ‘김씨 다음에 오씨’라는 말을 만들어낸 빨치산 오진우 전 인민무력부장의 아들 오일정 전 당 민방위부장도 17개월정도 자취를 감춰 혁명화교육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오일정은 7차 당대회에서 상장(중장)에서 소장(준장)으로 두계급 강등됐고, 노동당 중앙위원 명단에서도 이름이 빠졌다가 1년 넘게 안보였지만 이번 김정일 75회 생일 보고대회와 참배에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황병서 군총정치국장을 포함한 수행원 13명 명단을 발표하면서 오일정을 언급하지 않아 구체적인 직함은 확인되지 않았다.
오진우와 최룡해의 부친 최현은 대표적인 빨치산이다. 최룡해도 혁명화교육을 3번씩이나 받은 전력이 있는데다 이번 김정일 생일 참배에 불참해 또다시 혁명화교육을 받게 된 것이 아닌지 의혹을 낳았다.
빨치산 2세인 오극렬 전 국방위 부위원장도 지난 7차 당대회를 계기로 사실상 은퇴했다. 이와 함께 빨치산 시절 김일성을 위해 혀를 끊을 정도로 충신 마동희의 가문에서도 탈북자가 생겼다는 말이 돌고 있다. 여기에 대표 빨치산으로 6.25전쟁 때 서울에 처음 진입한 탱크사단에 이름을 붙일 정도로 공적이 컸던 류경수의 집안에서도 아들과 그 아내, 딸까지 온 일가가 숙청됐다는 전언도 있다.
빨치산혈통은 물론 백두혈통까지 조직지도부의 검열망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기구를 총 지휘하는 조직지도부장은 아직 공석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역대 조직지도부장은 김일성 시대에 친동생 김영주에 이어 아들 김정일이 맡았고, 김정일 시대 여동생 김경희가 맡아온 전례로 볼 때 김씨 일가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정통한 대북소식통의 전언으로 미디어펜은 김정은의 이복누나이자 김정일의 둘째 부인 김영숙의 딸인 김설송이 조직지도부장을 맡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하지만 김설송은 북한 간부들 사이에서도 그 존재가 철저히 가려져 있는 데다 최근 감금설까지 돌고 있어 좀 더 확인이 필요해보인다.
하지만 김씨 가문 못지않게 조직지도부 자체가 좀처럼 북한 매체에 등장하는 일이 없이 늘 베일에 가려져 있다. 김정은 정권 들어 종종 공식행사에 모습을 드러내는 조연준 부부장은 간부 1부부장을 맡고 있다. 이외에 군사 1부부장에 김병철, 당생활지도 1부부장에 민병철, 당생활지도 부부장을 조용원이 맡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태영호 전 공사는 귀국한 뒤 언론과의 기자회견에서 2013년 장성택 처형에 절망했다고 말한 바 있다. 김정은의 잔인한 공포통치에 탈북을 결심했다고 심경을 털어놓은 것이다.
태 공사처럼 김정은 정권에서 엘리트층 탈북이 이어지고 있는 것은 이례적인 현상이다. 장성택 처형 이후에만 북한을 등진 핵심권력층 인사가 10명 안팎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외교관과 외화벌이 일꾼, 노동당 39호실 출신, 보위성과 보건성 간부, 군 간부 출신 등 핵심층을 거의 망라하고 있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